|
국성(맑은
술을 의인화한 표현)의
자는 중지니, 주천(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주나라에 있던 땅 이름)
고을 사람이다. 국성이란 맑은 술을 말하는 것이요, 중지란 곤드레만드레를 뜻한다. 어려서 서막(중국 진나라 사람으로 지독한 애주가임)에게 사랑을 받아, 그가 이름과
자를 지어 주었다.
그의
먼 조상은 원래 온(溫)이라는 땅에서 살았다(누룩은 따뜻한 온도에서 익혀야 한다는 뜻을 내포함). 농사를 지어서
넉넉하게 먹고 살았는데 정나라가 주나라를 칠 때 포로가
되었다가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그 자손들은 간혹
정나라에 흩어져 살기도 한다. 국성의 증조부는 그 이름이
역사에 실려 있지도 않다가, 조부모가 주천으로 이사하여
눌러 살면서 드디어 주천 고을 사람이 되었다. 아비 차(흰
술을 의인화한 말)에
이르러 비로소 벼슬을 하였다. 차는 평원 독우(격상(명치 위)에 머물러 숨이 막히게 하는 좋지 않은 술)가 되어 사농경(농사에
관한 일을 맡아 보는 벼슬)
곡씨(곡식을 의인화한 말)의 딸과 결혼해서 성을 낳았다.
* 국성의 가계 소개
성은
어려서부터 도량이 넓었다. 손님들이 그 아비를 보러 왔다가도
성을 눈여겨보고 사랑스러워서 말하기를,
"이
아이의 마음과 도량이 출렁출렁 넘실넘실 마치 만경(수면이
끝없이 넓음)의
물결과도 같아서, 더 맑게 하려 해도 맑아지지 않고, 흔들어도
흐려지지 않으니(더할
수 없이 맑으니)
성과 함께 즐기는 것이 좋겠네." / 하였다.
성은
자라서 중산의 유영(중국
위진 시대의 문인으로, 죽림 칠현의 한 사람으로 '주덕송'을
지음), 심양의
도잠(도연명, 애주가)과
더불어 벗이 되었다. 이 두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하루라도
이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마음 속에 비루하고(마음이
고상하지 못하고 더러움)
이상한 생각이 싹튼다." / 하며,
서로 만날 때마다 며칠 동안 모든 일들을 잊고 마음으로
취해야만 헤어졌다.
* 국성의 도량과 교우관계
나라에서
성에게 조구연(조구란
술지게미를 산처럼 쌓은 더미를 말하며, 연이란 하급 관리를
뜻함. 술지게미를 의인화한 말)을
시켰으나, 부임하지 않자 공경들이 계속하여 그를 청주종사(맛이
좋은 술을 의인화한 표현)로
천거했다. 그러자 임금은 조서를 내려 그를 불러 말하기를,
"이
사람이 바로 주천의 국생인가? 내 그대의 향기로운 이름을
들은 지 오래였노라." / 하였다.
이보다
앞서 태사가 임금께 아뢰기를,
"지금
주기성이 크게 빛을 냅니다." / 하더니,
얼마 안 되어 성이 도착한지라. 임금은 또한 이 때문에
더욱 기특하게 여겼다.
* 국성의 정계 진출
임금은 곧 성에게 주객 낭중(손님을
접대하는 관직)
벼슬을 주고, 얼마 안 되어 국자 좨주(국자학의
교장. '좨주'란 옛날에 잔치를 베풀 때 나이 많은 어른이
먼저 술을 땅에 따라 신에게 제사 지낸 데서 나온 말로,
고려와 조선초에는 종3품 벼슬을 일컫는 말로 쓰였음)로
올리어 예의사를 겸하게 하였다. 이 때부터 모든 조정의
잔치나 종묘의 제사, 천식(천신할
때 올리는 음식으로, '천신'이란 계절 따라 새로 난 과일이나
농산물을 신에게 바치는 일을 말함),
진작(임금께
나아가 술잔을 올림)의
예가 모두 임금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임금은
그가 믿음직하다 해서 승진시켜 승정원(국왕의
비서 기관으로 왕명의 출납을 맡았던 관아)
재상으로 있게 하고 융숭한 대접을 하였다. 출입할 때에도
가마에 탄 채 대궐에 오르도록 하고(술이 상에 차려져 황제의 연회에 올려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이름을 부르지 않고
국선생이라 일컬었다. 때때로 임금의 마음이 불쾌할 때라도
성이 들어와 뵈면 임금의 마음은 풀어져 웃곤 하였다(술을 마시면 임금이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임).
성질이
구수하고 아량이 있어, 날이 갈수록 사람들과 친근해졌고
임금과도 스스럼없이 가까워졌다. 이런 까닭에 더욱 임금의
사랑을 받게 되어 항상 따라다니면서 함부로 잔치 자리에서
놀았다.
* 국성에 대한 임금의 총애
성에게는
세 아들, 혹(酷, 독한
술을 의인화)과
폭(진한
술의 의인화)과
역(쓴
술의 의인화)이
있었다. 이들은 그 아비가 임금의 사랑을 받는 것을 믿고
방자하게 굴었다. 그러자 중서령 모영(붓의
의인화)이
임금에게 글을 올려 탄핵하기를,
"천하
사람들은 성이 폐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을 모두
병통(어떤
사물의 자체 안에 해가 되는 점)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성이 조그만 신임을 받고 요행히 벼슬
계급이 3품에 올라서, 많은 도둑을 궁중으로 끌어들이고
사람들을 휘감아서 해치기를 일삼고 있습니다(술의 폐해를 지적한 말). 이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분하게 여겨, 소리치고 반대하며 머리를
앓고 가슴 아파합니다. 성이야말로 나라의 병통을 바로잡는
충신이 아니고, 만백성에게 해독을 주는 도둑입니다. 더구나
성의 세 아들이 제 아비가 폐하께 총애받는 것을 믿고 방자하게
굴어 사람들이 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이들에게
모두 사형을 내리셔서 뭇사람들의 입을 막으소서."
하였다.
그러자 성의 아들 셋은 즉시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성도
죄를 받아 평민으로 폐해졌다.
한편
친한 벗인 치이자(말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로, 술을 넣는 데 쓰임)도
성과 친하게 지냈다 하여 수레에서 떨어져 자살하였다.
* 탄핵으로 서인이 된 국성과 자식들의 자살
처음에
치이자는 우스갯소리를 잘 해서 임금의 사랑을 받았다.
자연 국성과 친하게 되어, 임금이 출입할 때에는 항상 수레에
실려 다녔다. 어느 날 치이자가 몸이 곤해서 누워 있을
때 성이 희롱하며 말하기를,
"자네
배는 크지만 속이 텅 비었으니 그 속에 무엇이 있는가?" / 하니,
치이자가 말하기를,
"자네들
수백 명은 넉넉히 용납할 수가 있지." / 하였다.
이들은 이렇게 항상 서로 우스갯소리를 하며 지냈다.
* 국성의 친한 벗 치이자
성이 벼슬을 그만두자(술을 못 마시게 되자) 제(배꼽) 마을과 격(가슴) 마을 사이에 도둑들이 떼지어 일어났다(술이 없어지자 사람들 마음에 괴로움이 많이 생겨났다. 즉, 여러 가지 근심 걱정을 술로써 잊어 버리고 위안을 받던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자 근심 걱정을 풀지 못해 괴로워하게 되었다는 뜻임). 이에 임금은 이 고을의 도둑들을 토벌하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적임자가 쉽게 물색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성을 장수로 삼아 보내니, 부하를 몹시 엄하게
통솔하였고, 모든 고생을 군사들과 같이 하였다. 성은 수성(근심)에
물(술을
말함)을
대어 한 번에 함락시키고, 거기에 장락판(장락은
길이 즐거워 한다는 뜻)을
쌓고 돌아왔다. 임금은 그 공로로 성을 상동후로 봉하였다.
* 도둑을 평정하여 명예를 회복한 국성
그
후 2년이 지나 성이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청하며 아뢰기를,
"신은 본래 가난한 집 자식이었습니다. 어려서는 몸이 빈천해서 이곳 저곳으로 남에게 팔려다니는 신세였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폐하께서 마음을 터놓고 신을 받아들이셔서 할 수 없는 몸을 건져 주시고 강호의 모든 사람들과 같이 용납해 주셨습니다. 하오나 신은 일을 크게 하시는 데 더함이 없었고, 나라의 체면을 더 빛나게 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제 몸을 삼가지 못한 탓으로 시골로 물러가 편안히 있었을 때, 비록 엷은 이슬은 거의 다 말랐으나 그래도 남은 이슬 방울(충성심을 상징함)이 있어, 감히 해와 달(임금을 상징함)이 밝은 것을 기뻐하며 다시금 찌꺼기와 티가 덮인 것을 열어 젖히나이다(비록 보잘 것 없지만 충성심이 남아 있어 임금님이 계신 것을 기뻐하며 악을 물리칠 수 있었다는 뜻임). 젖히나이다(비록 보잘것 . 또한 그릇에 물이 차면 엎어지는 것은 모든
물건의 올바른 이치옵니다. 이제 신은 목이 말라 물을 자꾸
먹는 소갈의 병을 만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사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명을 내리시어 신으로 하여금 물러가
여생을 보내게 해 주옵소서."
하였다.
임금은 승낙하지 않고 신하에게 송계(松桂), 창포 등의
약물을 가지고 그 집에 가 병을 살피게 했다. 그러나 성은
여러 번 글을 올려 굳이 사양하자 임금이 부득이 허락하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려 보냈다. 성은 고향에 돌아와 천수(천성적으로
타고난 수명)를
다하고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우 현(막걸리)은
벼슬이 이천 석에 오르고, 아들 익(색주),
두(두
번 빚은 술),
앙(막걸리),
람(감을
우려 내어 만든 술)은
도화(복숭아꽃)
즙을 마셔 신선이 되는 법을 배웠다.
* 국성의 치사(致仕)와 죽음
사신은
말한다.
"국씨는
원래 대대로 농가 사람들이었다. 성이 넉넉한 덕과 맑은
재주가 있어서 임금의 심복이 되어 나라일에 참여하고,
임금의 마음을 깨우쳐 주어, 태평스럽고 큰 공을 이루었으니
장한 일이다. 그러나 임금의 사랑이 극도에 달하자 마침내
나라 기강을 어지럽히어 이런 일은 사실상 그에게는 유감이
되지 않는다. 그는 만절(나이가
들어 늙었을 때)이
넉넉함을 알고 스스로 물러나 마침내 천수를 다하였다.
<주역>에 '기미를 보아서 이루어 나간다[見機而作
: 낌새를 알아채고 미리 조처함. 순리를 알고 처신한다는 의미]' 하였으니, 성이야말로
거의 여기에 가깝도다."
* 국성에 대한 사신의 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