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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박연이 피리를 배우게 된 동기
대제학(大提學) 박연(朴堧)은 영동(永同)의 유생이다. 젊었을 때에 향교(鄕校)에서 학업을 닦고 있었는데 이웃에 피리 부는 사람이 있었다. 제학은 독서하는 여가에 겸하여 피리도 배웠다. 온 고을이 그를 피리의 명수(名手)로 추중(推重)하였다.
[2] : 배움에 대한 박연의 성실한 태도
제학이 서울에 과거보러 왔다가 이원(梨園)의 피리 잘 부는 광대를 보고 피리를 불어 그 교정(校正)을 청하니, 광대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소리와 가락이 상스럽고 절주(節奏)에도 맞지 않으며, 옛 버릇이 이미 굳어져서 고치기가 어렵겠습니다.”고 하였다. 제학이 말하기를, “비록 그러하더라도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고 하고, 날마다 다니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일 후에 듣고는 말하기를, “규범(規範, 법도)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장차 대성할 수 있겠습니다.”고 하였다. 또 수일 후에는 광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릎을 끓고 말하기를, “제가 따라갈 수 없습니다.”고 하였다.
[3] : 음악에 대한 뛰어난 감수성과 감식력(鑑識力)
그 뒤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또 거문고와
비파의 여러 악기를 익혀서 정묘(精妙)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세종(世宗)에게 지우(知遇)를 얻어 드디어 발탁 등용(拔擢登用)되었다.
관습도감제조(慣習都監提調)가 되어서 음악에 관계되는 일을 전담(專擔)하였다.
세종이 일찍이 석경(石磬)을 만들고 제학을 불러 교정하게 하였더니, 제학이 말하기를, “어느 음률(音律)이 일분(一分) 높고, 어느 음률이 일분 낮습니다.”고 하였다. 다시 보니 음률이 높다고 한 곳에는 찌꺼기가 붙어 있었다. 세종이 찌꺼기의 일분을 떼어내라고 명령하였다. 또 음률이 낮다고 한 곳에는 다시 찌꺼기 일분을 붙였다. 제학이 아뢰기를, “이제 음률이 바르게 되었습니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다 그의 신묘(神妙)함을 탄복하였다.
[4] : 피리를 벗삼아 표연히 떠나는 모습
그의 아들이 계유의 난(亂)에 관여하여 제학도 또한 이 때문에 벼슬이 파면되고 시골로 돌아가게 되었다. 친한 벗들이 한강 위에서 전별하였는데 제학은 필마(匹馬)에 하인 한 사람을 거느린 쓸쓸한 행장이었다. 함께 배 안에 앉아서 술잔을 주고받다가 소매를 잡고 장차 이별하려 할 즈음에 제학이 전대에서 피리를 꺼내어 세 번 불었다. 그리고 떠났다. 듣는 이가 모두 쓸쓸한 느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
# 제학(提學) : 박연이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음
# 대제학 : 조선시대 홍문관, 예문관의 으뜸 벼슬. 정이품에 해당.
# 추중(推重) : 추앙하여 존중히 여김
# 이원(梨園) : 조선조 장악원(掌樂院)의 별칭. 교방(敎坊)의 딴 이름.
# 절주(節奏) : 음(音)의 강약 관계가 주기적으로 되풀이 되는 요소
# 지우(知遇) : 남이 자신의 인격과 학식을 얻어서 후히 대우함
# 관습도감제조(慣習都監提調) : 관습도감은 향악과 당악(唐樂)을 가르치는 일을 맡은 관아이며 관습도감제조는 그 관아의 일을 다스리던 사람을 말함
# 석경(石磬) : 아악기의 한 가지, 돌로 된 타악기(경쇠)
# 계유의 난 : 계유정난. 계유년에 수양대군이 여러 고명 대신을 없애고 정권을 탈취한 사건
# 필마(匹馬) : 한 필의 말. 여기서는 벼슬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간 박연의 처지를 나타내기도 하는 말임.
# 전대 : 돈이나 물건을 넣고 허리나 어깨에 매게 만든 폭이 좁고 긴 자루
# 제학이 서울에 - 청하니, : 광대 앞에서 자신이 피리를 불어 보고는 광대에게 잘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부탁하니. 자신의 피리 소리를 비천한 광대 앞에서 불어 보고 고쳐 달라고 청하는 모습에서, 박연의 배움에 대한 성실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 세종(世宗)에게 - 되었다. : 세종이 박연의 인격과 학식을 인정해서 관습도감제라는 중책을 맡기게 되었다.
# 친한 벗들이 - 행장이었다. : 친한 벗들이 잔치를 베풀고 박연과 이별을 고하는데, 그는 벼슬해서 물러난 야인(野人)의 차림에 하인 한 사람밖에 거느리지 않은 쓸쓸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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