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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국전(安樂國傳 ) -미상-
과거 적에 석가 세존이 3천 제자를 거느리시고 상주(常主) 설법(說法)하옵시는 도량(道場)에 우담바라화(優曇破羅華)와 연화(蓮華)를 색색이 심어 두시고 즐기시더니, 이 때에 구년지수(九年之水)와 칠년대한(七年大旱)을 만나 아홉 해 비 오실 제는 우담바라화가 씩씩하여 나날이 화기(和氣) 있으매 세존님이 즐기시더니, 일곱 해 가뭄을 만나매, 그 꽃이 점점 이울어 가니 세존님이 스스로 슬퍼지더라. "내 얼굴이 저 꽃과 같이 늙으리라." "우리 3천 대중의 어진 사람을 갈해여 화주(化主)를 내어 인걸립(人施主)하여, 꽃밭 수레를 하여 스승님 마음을 안보하사이다." "저 상을 누구에게로 놓으리까." 세존님이 가라사대, "슬프도다." 승여래바라문(僧如來破羅門)이 놀라 고쳐 꿇어 아뢰되, "스승님하, 소승같이 미련하옵고 조그마하온 몸으로 어찌 중하온 화주(化主)를 맡기오사 성공을 하오면 좋삽거니와, 못하오면 스승님께 불효가 되올소이다." "3천 제자 중에 너밖에 감즉한 이 없으니, 잔말 말고 맡으라." 슬프도다. 서역국 꽃밭 수레 하올 인시주 걸립 화주 바라문이 나이 15세라. 행장을 차리니 사제 바랑의 권선(勸善)을 내어 메고 차탄하며, 세존님께 하직하삽고 3천 대중을 이별하매, 눈물을 흘리며, "15세 어린 화주 인걸립 가나이다." "대원국왕 사라수 대왕님과 원앙 부인께 가서 내 말을 하면 시행할 것이니 그리 가라." 바라문 화주 이때 심산궁곡으로 정처없이 찾아가다가 까막까치를 만나도 인사를 하고 절을 하며 가더니, 일일은 더동 바닷가에 다다르니, 바다가 하늘에 닿아 있고 넓이 수천 리라. 승여래바라문이 천지망극하여 슬피 울더니, 이윽하여 살펴보니 운무 자욱한 중에 사람의 소리 들리거늘, 하도 반가이 여겨 외어 이르되, "상아아 무상아 공아아 상공아 잠깐 들어 보소서. 나는 대원국으로 인걸립하러 가옵는 화주러니, 배를 잠깐 빌리심을 바라나이다." 문득 물 가운데서 백발 노옹이 연엽선(蓮葉船)을 타고 공중에서 대답하되,
"이 바다가 아홉 해 비 오실 제는 배가 다니더니, 일곱 해 가물기로 배를 없이 하였으니 어찌할꼬." 대원국을 찾아들어 가만히 성을 다다르니, 성문이 굳게 닫쳤거늘, 승여래바라문이 가사착복(袈娑着服)을 갖추고 육환장을 옳이 두루니 기화서기(奇花瑞氣) 지는 듯하더라. 그러한 성문이 일시에 열리거늘, 그제야 바라문 화주 들어가자 소졸(小卒)이 보하니, 대왕과 부인이 듣자오시고, “들어오라.” 하시고 청하신대, 승여래바라문이 궐하(闕下)에 가까이 머물더라. 이 때 왕과 부인이 백관에게 하조(下詔)하신대, 홀연히 천지 진동하시니 어찌한 변고인고 하신대, 백관이 아뢰오되, “서방으로서 인걸립하러 온 화주승이노라 하고 왔사온대 그러하오이다.” 대왕이 자세히 들으시고 크게 놀라시고 들어오라 하시니, 승여래바라문이 사제 바랑의 권선을 넣어 메고 길 넘는 육환장 둘러 집고 궐문 하에 들어가 십이문(十二門) 넘어서 사라수 대왕님 앞에 나아가 읍하고 뵈오니, 대왕님께옵서 맞으사 좌정하시옵고 화주더러 물으시되, “어디 계시며, 무삼 사로 다니시는 화주인다.” 하고 물으시니, 승여래 화주 고쳐 일어 절하시고 다시 여쭈오되, “소승은 서역국 석가 세존님께옵서 소승 같은 미련하온 인사를 화주로 정하여 보내오매, 오색꽃과 우담바라화꽃이 구년지수에는 씩씩하옵더니, 칠년대한이 되옵더니 점점 이울어 가오니 세존님 얼굴이 저 꽃과 같이 이울어 가오매, 슬프다 하옵셔 소승을 귀국에 들여 보내어 인걸립하여다가 꽃밭 수레 하라 하옵시매, 귀국에 왔사오니 대왕님이 시주하옵소서.” 하고 권선을 내어 대왕님 앞에 놓으니, 대왕이 보시고 말씀하시기 전, 공중으로서 크게 외어 이르시되, “사라수 대왕은 부인으로 하여금 꽃밭 수레 하라.” 하시거늘, 대왕이 권선을 보시다가 이 말을 들으시고 놀라 양구(良久)히 생각하시다가 가라사대, “문무 백관을 즉일로 모으라.” 하시고, 일변으로 화주를 대접하시더니, 만조백관이 다 모였거늘 대왕이 이루되, “저 화주가 서역국 세존님 도량(道場)에 우담바라만다라(優曇婆羅曼陀羅) 꽃밭 수레 하라 하고 인물 화주로 왔으되, 시방 공중으로서 외어 이르되, 아국 원앙 부인으로 꽃밭 수레 하라 하시니, 마지못하여 가게 하였으니 백관에게 하직을 하노라.” 하시니, 제신이 하조(下詔)를 듣고 모든 백관들이 망극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더니, 모두 생각하고 아뢰되, “그리 하오면 부인 대신으로 팔시녀(八侍女)를 보내사이다.” 하고 아뢰오니, 대왕이 화주에게 이르시되, “부인 대신에 팔시녀를 보내면 어떠하오리까.” 하시니, 화주 여쭈오되, “대왕님 처분대로 하소서.” 하오니, 팔시녀를 불러 이르시되, “너희들이 화주를 모시고 서역국 세존님 도량에 가서 오색 연화 꽃밭 수레 묻긷기를 부인 대신 하라.”하시니, 팔시녀 하조를 듣삽고 하직하고 바라문 화주를 모셔 가려 하매, 화주 대왕께 하직하고 길을 떠나 더동 바닷가에 다다르니 배가 없는지라. 갈잎을 베어 배를 만들어 팔시녀를 건네더니, 팔시녀 이르시되, “우리는 길을 모르니 어디로 가오리까.” 하니, 화주 이르되, “자연 갈 길이 있사오니 가사이다.” 하고, 여러 날 만에 득달하여 통천 바닷가의 수여 사공을 불러 배를 타고 서국역에 들어가니 불보살(佛菩薩)의 상주처(常住處)요, 성문연각(聲聞緣覺)의 도회처(都會處)로다. 바라문 화주 세존님 앞에 나아가 합장하삽고, “승여래 화주 다녀왔습니다.” 하고 아뢰오니, 세존님이 보시고 반겨 물으시되, “인물 화주 어찌하여 온다.” 하시니, 바라문 화주 삷사오되, “원앙 부인을 모셔 오려 하였삽더니, 그 나라 백관들이 원앙 부인을 모셔 가오면 대왕님도 가오실 것이오니, 그 나라가 타국이 되올 터이오니 공론하여 부인 대신에 팔시녀를 보내자 하시고, 대왕님이 소승더러 묻잡거늘, 소승이 대왕의 처분대로 하소서 하오니, 팔시녀를 보내시매 데려왔나이다.” 하고 아뢰오니, 세존님께옵서, “잘 하였다.” 하옵시고, 즉시 팔시녀를 부르사 각각 은동해 하나씩, 은또아리 하나씩, 금바가지 하나씩 주어 물 길어 꽃밭 수레 하라 하시고 분부하시되, 팔시녀 제각기 동이를 옆에 끼고 동방의 감로수(甘露水)와 남방의 청계수(淸溪水)와 서방의 옥계수(玉溪水)와 북방의 오동수(烏銅水)를 길어 쉴 새 없이 수레하니, 오색 연화꽃이 예로써 더욱 씩씩하여 황홀하더라. 세존님이 꽃밭 구경하시다가 칭찬하여 이르시되, 대원국 팔시녀를 명하사, “저 물을 저리 길으니, 원앙 부인 몫으로 긷느냐, 너희 몫으로 긷느냐.”하고 물으시니, 팔시녀 등이 대답하되, “염주도 목목이요, 쇠뿔도 각각이오니, 어찌 원앙 부인의 몫이오리까. 소인 등의 몫이로소이다.” 세존이 이르시대, “그리하면 대왕과 부인의 몫이 아니냐.” 하시니 팔시녀 왈, “그리하외다.” 하온대, 세존님이 할 수 없이 승여래바라문 화주에게 이르시되, “저 시녀 등의 말을 들으니 대왕과 부인의 공은 없다 하고 저희 공이라 하니, 네 다시 가서 대왕과 부인께 이 연유를 자세히 아뢰고, 아무리 하여도 대왕과 부인이 친히 와서 물을 길으셔야 그 공을 얻으리라 하고 모셔 오라.” 하시되, 바라문 화주 분부를 듣잡고 물러나와, 사제 바랑에 권선을 넣어 메고, 세대삿갓 숙여 쓰고 길 넘는 육환장을 외로 둘러 오로잡고 세존님께 하직하고 강남 대원국 사라수 대왕 성문에 다다르니, 만민창생(萬民蒼生)이 좌우에 벌려 섰거늘, 승여래바라문 화주 육환장을 메어 두르니, 대왕이 들으시고, “재미화주(齋米化主) 왔는가 보니 재미를 주라.” 하오시니, 원앙 부인이 친히 은바리에 재미를 가득 부어 들고, “재미 받으소서.” 하시되, 바라문 화주 돈수재배하옵고 사뢰되, “소승은 재미 화주 아니오라 대왕님과 부인 모시러온 화주올시다.” 원앙 부인이 대왕께 여쭈온데, 대왕이 사연을 들으시고, “어서 들어오라.”하오시니, 화주 대왕님 좌하오신 존상 앞에 나아가 합장하오되 대왕이 보시고, “오르소서.”하시니, 화주 여쭈어 아뢰되, “대왕님과 한자리로 동좌하오리까.” 하온대, 왕께오서, “염려 말고 오르소서.” 하시되, 바라문 화주 마지못하여 올라 재배하오니, 대왕이 물으시되, “화주 이번은 무슨 일로 오시니까.” 승여래 화주 다시 꿇어 아뢰되, “접때 팔시녀를 주오시매 데려다가 꽃밭 수레 하온즉 꽃밭이 전보다 더 악악 황홀하오매, 세존님이 찬하시고 꽃밭 구경하시다가 팔시녀에게 묻자오시되, ‘너희 공으로 세우고 저대도록 공부를 하는다.’하시니, 팔시녀 여쭈오되, ‘남의 공을 이루고자 만리 타국에 들어와 공부하오리까. 소인 등의 공이로소이다.’하고 아뢰오니, 세존님께옵서, ‘그리하면 대왕과 부인님께 자세히 여쭙고 모셔오라.’하시더니라.” 여쭈오되, 사라수 대왕님이 말씀을 들으시고 생각하시다가, 이윽고, 부인께 들어가서 승여래바라문 화주의 말을 자세히 이르시고, “아는 아무리 하여도 서역국 꽃밭 수레를 하러 가올소이다.” 하시니, 부인이 이 말슴을 들으시고 여쭈오되, “대왕이 가려 하시면 한가지로 가사이다.” 하고 행장을 차리더니, 이 때 만조백관들이 일시에 통곡하고 대왕께 아리되, “이런 망극한 말씀을 내리시오니 소신들과 만조백관과 만백성이 뉘게 의탁하라 하시나이까.” 하고 일시에 통곡하니, 산천초목이 다 슬퍼하는지라. 슬프다. 택일하여 길을 떠나니, 부인을 불러 이르시되, “부인은 몸두 편치 않고 만리 타국에 길도 험악한 즉 못 갈 것이니, 예서 궐중(闕中)이나 지키고 계시면 서로 만날 때 있사오리다.” 하시니, 부인이 통곡하사 이윽도록 말씀을 못 하시다가 다시 여쭈오되, “대왕님이 만리 타국에 가신 후 누구를 바라며 누구를 의탁하고 살라 하시나이까.” 하시고, “한가지로 가사이다.”하고 간청하오되, 대왕도 하릴없이 사부인과 화주를 데리도 떠나시니, 만조백관과 백성이 통곡하고 따라오다가 하직하고 이별하니, 산천초목․금수(禽獸)가 다 우는 듯하더라. 여러 날 길을 행하시니 부인이 수태(受胎) 칠삭(七朔)에 연연(軟軟) 약질(弱質)로 갈포 행하시니, 발도 부르텄고 만신이 다 아파 촌보를 다시 옮기지 못하시매, 부인이 바라문 화주에게, “갈 길이 얼마나 하오니까.”하고 물으시니, 화주 아뢰되, “삼분의 일은 왔나이다.” 부인이 이르시되, “아무리 하와도 발이 아파 못 가겠으니, 도처에 마을 집이 있는가 찾아 들어가 쉬어 가사이다.”하시니, 화주 여쭈오되, “이 길은 무인지경(無人之境)이로소이다.” 부인이 들으시고 발을 붙드시고 앉아 슬피 우시더니, 이윽하여 닭의 소리 들리거늘 화주더러 말씀하시되, “촌가 없는 곳에 닭의 소리 어디 나나이까.” 화주 대답하되, “이 넘어 장자의 집이 높기 하늘에 닿을 듯하기로, 하 높으니 닭의 소리 들리는가 싶소이다.”하고 아뢰오니, 대왕과 부인이 반가이 여기사, “그 집에나 들어가 쉬어 가사이다.” 하시되, 화주 대답하고 즉지 자현장자(子賢長者) 집을 찾아 들어가니 산수 거룩한데, 송백(松栢)은 낙락(落落)하고, 산수 잔잔하고 층암(層岩) 절벽(絶壁)간에 궁전이 있으되, 문 위의 큰 현판에 황금자 썼으되, ‘대원국(大元國) 금릉(金陵) 자현 장자 집’이라 썼더라. 그 집을 빌어 하룻밤을 머물고 이튿날 길을 행하려 하시나, 부인이 아파 촌보도 옮기지 못하되, 발을 붙드시고 슬피 우시며 사뢰되, “아무리 하여도 한가지로 못 가올 듯하오니, 나를 팔아다가 값을 받아 세존께 드리소서.”하시고 통곡하시니, 대왕이 이 말씀 들으시고 눈물을 흘리시고 이르시되, “부인님아, 내 말씀 들으소서. 칠보궁전(七寶宮殿) 좋은 집에 3천 궁녀 거느리고 만승황후(萬乘皇后) 되었다가 일종에 남의 종이 된단 말가.”하시며 묵묵(黙黙)하시니, 부인이 다시 이르시되, “낸들 어찌 아니 떠나고자 하오리까마는, 허공 지킨 귀신이 작희(作戱)하는지, 이 몸이 병이 드니 이 아니 가련하오리까. 대왕님은 이 몸을 팔아다가 세존님께 바치오면, 내 공인들 설마 없다 하시리까.” 하고 아뢰오니, 대왕님도 하릴없어 팔려 하시니, 자현 장자 부인 기질(氣質)을 보고 질색(窒塞) 대경(大驚)하여 이르시되, “값을 얼마나 달라 하시나이까.” 하오니, 대왕은 묵연(黙然)하시고, 부인이 이르시되, “내 값은 대왕도 못 치시고 화주도 모르니 내 치오리다.”하시고, “내 값은 5천 냥 황금을 주소서.” 하시니, 장자 이르되, “어찌한 사람인데 값이 그리 많사오니까.” 부인이 이르시되, “사나이는 천금이 싸오니, 여인은 천금 싼 아들을 낳으니, 황금 5천 냥이 많사오니까.”하시니, 장자 마음이 황홀하여, “그리하라.” 하고 황금 5천 냥을 달아 내어드리니, 받아 대왕께 드리니, 대왕과 화주 주인께 하직하옵고, 황금을 받들고 통곡하시니, “대왕님아, 배에 든 아이 이름이나 짓고 가소서.”하시되, 대왕이 눈물을 거두시고 위로 왈, “마음을 안보하소서. 아들을 낳거든 안락국(安樂國)이라 하고, 딸을 낳거든 효양녀(孝養女)라 하소서.”하시고, 화주로 하여금 황금을 행장에 넣어 메고 나서며 하직하고 이별하니 부인이 더욱 통곡하시니, 산천초목과 금수 슬퍼하고, 보는 자 아니 슬퍼하는 이 없더라. 부인이 대왕께 다시 사뢰되, “왕생계(往生偈)나 잊지 마옵소서.” 하시되, 대왕이 이르시되, “왕생계를 외우면 어떠하오니까.” 부인이 눈물을 지으시고 이르시되, “왕생계를 잊지 말고 외우시면, 서로 다시 만나 본다 하나이다.” 대왕님과 화주, 부인께 하직하고 왕생계를 외우면서 서역국(西域國)을 여러 날 가다가, 통천 바닷가에 다다르니 사공이 배를 등대하였거늘, 그 배에 오르니 만경창파(萬頃蒼波)를 순식간에 건너가니라. 이 때 대왕과 화주 세존님께 뵈옵고, “원앙 부인도 한가지로 오시다가 몸도 편치 않으신데, 삼 분의 일을 오시고, 다시 못 걸으시고 임자님 몸을 손수 값을 정하사 황금 5천냥을 받아 바치오니 드리나이다.” 하오니, 세존님이 들으시고 비감(悲感)히 여기시고 은지게 은장군을 주시고 물길어 꽃밭 수레 하라 하시니, 대왕이 분부를 들으시고 그날부터 왕생계를 외우시며 물을 길으시니, 보는 사람들이 대왕께 묻자오되, “무슨 소리를 하시며 물을 길으시나이까. 듣지 못하온 소리오이다.”한데, 대왕이 이르시되, “우리 대원국에서는 이 노래를 부르오면 죽은 부모․동생과 처자손을 만난다 하오며 부르나이다.” 하시니, 서역국 사람이 아니 부르는 이 없더라. 이 때 슬프다, 대왕 부인이여! 대왕님 이별하시고, 발은 아프시고 망극(罔極)하여 우시노라니, 장자의 종이며 장자며 위로하고, 다른 방을 정하여 주며 이르되, “과거사니 설워 마으옵소서.”하니, 부인이 하릴없어 생각하시되, 혹 대왕도 만나보실까 하시고, 복중에 든 아기도 생각하여 마음을 진정하여 지내시며 산삭(産朔)을 생각하시더니, 홀연히 한때는 자현장자, 원앙 부인 방에 들어와 첩을 삼고자 진퇴하거늘, 부인이 놀라 말씀하시되, “상전(上典)은 부모라 하오니 장자님아, 아비 자식 보는 법 어디 있사오니까.” 하고 애걸하여 우시며 듣지 아니하시니, 장자 대로하여 이르되, “너를 중가(重價)를 주기는 다름아니라 가속(家屬)을 삼으려고 샀거든, 네 무슨 말을 하는가.” 하거늘, 부인도 하릴없어 이르시되, “그러면 속에 든 아기 7삭이오니, 아기나 낳거든 허하오리다.” 하고 애걸하시니, 보는 자 눈물 아니 내는 이 없더라. 그제야 그 노함을 잠깐 그치고 돌아가니라. 세월이 여류하여 10삭이 차매 해복하시니 일기남아(一奇男兒)라. 그 아기 얼굴이 옥골선풍(玉骨仙風) 도인(道人)의 기상이매, 부인이 겨우 정신을 차려 보시니, 슬프다 대왕이 계시더면 작히 귀히 여기시랴 하시며 날을 보내시더니, 이 때 장자 하루 들어와 보고 이르되, “이제도 무슨 핑계할까.” 하고 진퇴한대, 부인이 슬피 울며 죽기로써 허치 아니 하시니, 장자 대로하여 이르되, “내가 재물을 주체치 못하여 너를 샀더냐. 중가를 주고 사기는 가속을 삼으려 하고 샀더니, 종시(終始) 듣지 아니하니 이제 값을 도로하여 바치라.”하고 소리치며, 모시 닷 동, 제추리 닷 동, 베 닷 동, 열 닷 동을 달아 내어주며, “5일 낼로 직조(織造)하여 들이라. 이날 못 미치면 의탁지 못하리라.” 하니, 부인이 본래 길쌈은 구경도 못 하였건만, 하릴없어 우두커니 받아 가지고 처소로 돌아와 놓고 탄식하고 우노라니, 문득 난데없는 선녀(仙女) 4, 5인이 들어와 부인께 읍하거늘, 부인이 이르시되, “어디 계시며 무슨 일로 이런 누추한 곳에 오시니까.” 선녀 답왈, “우리는 천상 항아(姮娥)께옵서 부리시는 선녀이니, 항아께옵서 이르시되, 강남 땅의 자현 장자의 집에 원앙 부인이 계셔 시방 고역을 맡아 계옵시니 내려가 수히 도우라 하옵시기로 왔나이다.” 부인이 감격하여 공중으로 사배하고 이르시되,“항아님은 나의 전생(前生) 부모시던가.” 하시고, 선녀들이 모시와 베․제추리를 메는 듯 짜는 듯 일시에 필을 지어 3일 내에 바치니, 장자 하도 신기히 여기더라. 이러구러 세월이 여류하여 안락국의 나이 10세라. 이 때 자현 장자 안락국을 불러 젖소 열 필, 말 열 필을 내어주며 이르되, “스무 필 마소에게 나무하여 싣고 오라. 한 마리라도 실수하면 중히 다스려 이 자리에 쳐죽이리라.” 하고 분부하니, 안락국이 전지도지(顚之倒之)하여 하릴없어 분부를 듣고 말고 소를 한 고비에 매어 이끌고 심산궁곡(深山窮谷)을 들어가며 애통하여 가더니, 난데없는 동자(童子)들이 내달아 나무를 베거나 묶거나 싣거나 마소 수대로 실어 놓고 간데없거늘, 안락국이 그제야 수대로 데리고 가며 소 등 위에 앉아 옥적(玉笛)을 슬피 불고 들어오니, 장자 바라보며 어이없어 그 놈년들의 일이 고이하고 이상하다 하더라. 일일은 안락국이 부인게 사뢰오되, “어머님, 다른 아이들은 아버님을 부르는데, 소자는 홀로 아버님이 없나이까.” 부인이 묵묵하시더니, 장자 가리키며, “아비라.”하시니, 안락국이 여쭈오되, “장자 아버님 같사오면 어머님을 그대도록 고역을 맡겨 못 견디게 하며, 소자로 하여금 말고 소를 주며 한 필이라도 못 채우면 죽인다 하였사오리까. 천만 바라옵나니 어머님은 아버님 계신 데를 가르쳐 주소서.”하오니, 부인이 그제야 이르되, “너의 아버님은 강남 땅 대원국 사라수 대왕(娑羅樹大王)으로서, 서천 서역국 도량에 오색 연화 꽃밭 수레와, 만다화 꽃밭에 물 길어 수레하러 가셨느리라.” 하시니, 안락국이 사뢰오되, “그리하오면 소자가 서역국에 들어가 부왕을 찾아뵈옵고 모시고 오리이다.”하고, “행장을 차려 주소서.”하거늘, 부인이 이르시되, “네 아이가 어찌 만리 타국에 다녀오리오.” 하시니, 안락국이 아뢰되, “소자는 다녀올 것이오니, 모부인은 염려 마옵소서.” 하더니 일일은 간데없거늘, 부인이 생각하시되, “어린것이 가다가 장자에게 잡히면 죽으리로다.”하시고 더욱 슬퍼하시더니, 한 이틀 후 장자 안락국이 어디에 갔는가 찾는지라, 부인이 이르시되, “어디 갔사오리까.”하신 후, 여러 날 되도록 아니 오니, 이놈이 도망하여 갔다 하고, 제 종 목동․부동이란 종이 있는데, 목동은 천 지를 보고 부동은 만리를 보는지라. 목동을 불러 안락국 간 곳을 보라 하니, 목동이 보고, “안락국이 저기 가나이다.”하니, 장자 대로하여, “잡아 오라.”하니, 목동이 잡아 오더라. 장자 안락국을 잡아들여 꿇여 놓고 이르되, “너는 도망한 놈이니, 잡아 죽이로되, 이번은 짐작하여 사(赦)하거니와, 이후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죽일 것이니 차후는 도망갈 생각 말라.”하더라. 이 때 안락국이 장자의 손에 욕을 보고 슬프고 슬픈도다. 이번에 부왕을 못 뵈오면 졸연히 못 갈 것이니, 아무쪼록 가서 부왕을 뵈오리라 하고, 가만히 달아나 동천 바닷가에 가 닿거늘, 급히 건너고자 하나 배가 없는지라, 하릴없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되, “하늘은 안락국이 부왕을 만나 부자 상면하게 하여 주소서.”하고 섰더니, 문득 옥저 소리 들리거늘, 하도 반가와 안락국이 외어 이르되, “천동(天童)은 인도하사 배를 건네어 주옵소서.”한데, 동자 가로되, “네 어떠한 아이관데 우리 다니는 곳에 배를 타고자 하는다.” 안락국이 이르되, “나는 대원국 사라수 대왕의 유복자(遺腹子) 안락국이옵더니, 부왕께옵서 서역국 세존님 도량에 꽃밭 수레 하러 가 계옵시기로 대왕님 찾아 뵈오러 가옵니다.” 하거늘, 동자 이 말을 듣고 불쌍하고 어여삐 여겨 청하여 운대(雲臺)에 올리거늘, 안락국이 한가지로 오르매, 문득 옥저 소리 들리며 바다를 나는 듯이 가는지라. 이 때 장자 안락국을 찾으니 또 도망하고 없거늘, 목동을 불러 안락국 간 곳을 찾아 살펴보라 하니, 목동이 천 리를 보고, “뵈지 아니하나이다.” 한다. 부동이더라 보라 하니, “저기 가나이다.” 하고 쫓아가기는 하나, 배는 선인의 도력(道力)으로 가는바 살 닿듯 하는지라, 어찌 지하(地下) 부동의 힘으로 잡으리오. 어이없이 바라보더니 돌아가다. 이 때에 안락국이 동자와 더불어 운대에서 내려 동자엑게 백배 사례하고 사뢰되, “사라수 대왕 계옵신 데는 어디로 가옵나이까.” 동자 가로되, “이 길로 동쪽으로 행하면 백수노옹(白首老翁)이 은지게 은장군을 지고 나오며, 왕생계를 외우며 나올 것이니 찾아보라.” 하니, 안락국이 하직하고 동쪽으로 가더니, 과연 백수노옹이 은지게에 은장군으로 물을 지고 왕생계를 외우며 오시거늘, 안락국이 짐작하고 하도 반갑사와 앞에 나아가 황망히 복지하온대, 대왕이 물으시되, “어떤 아이관데 나를 보고 이렇듯이 관대하는고.” 안락국이 여쭈오되, “소자는 안락국이로소이다.” 하고 아뢰오니, 대왕이 이 말을 들으시고 어찌하실 줄을 모르시고 안락국의 손을 잡으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가라사대, “너의 어머님이 어찌 지내시더냐.” 하시니, 안락국이 장자에게 책(責)당하시던 전후 사연을 낱낱이 다 아뢰니, 대왕이 더욱 슬픔을 이기지 못하시며, 안락국 데리시고 계시던 숙소처에 들어가서 수삼 일 후 꽃 세 송이를 주시며, “네 어머님은 장자가 죽였을 것이니, 죽인 곳을 찾아가서 뼈를 모아 놓고 백련화(白蓮花)로 씻으면 뼈가 제좌에 이를 것이요, 그제야 적련화로 씻으면 살이 될 것이요, 그제야 홍련화로 씻으면 숨을 내칠 것이고 완인(完人)이 될 것이니 모시고 오라.”하시니, 안락국이 하직하고 가니라. 이 때 장자 종놈 부동이 돌아와 장자께 고왈, 안락국을 못 잡아 온 사정을 고하니, 장자 대로하여 원앙 부인을 급히 잡아 내어 소리를 뇌성같이 높이 질러 이르되, “너 안락국을 어디로 보냈는가 바로 이르라.”하고 소리 벼력 같으니, 부인이 정신이 아득하고 혼불이체(魂不離體)하여 답하되, “날더라 가노라 이르지 아니하고 갔사오니, 죽어도 모르나이다.” 하시나, 장자가 노기 발발하여 앞에 놓였던 바둑판으로 박살(搏殺)하여 죽이니라. 차홉다. 이 때 원앙 부인의 꽃 같은 화용월태(花容月態)로 칠보궁전 어디 두고 저 몹쓸 천인(賤人)에게 죽어 범라국(梵羅國) 임정사(林淨寺)로 가는데, 숲 속에 넣으라하니, 종놈들이 갖다가 대밭 속에 버리고 오니, 이 때 마을 사람들이 입 있는 이마다 불쌍하다고 가서 보니, 원앙 부인의 옥 같은 신체를 까막까치 다 물어가고 뼈만 남았는데, 바람결에 쫓아 나는 소리 있으되, 대 숲 속에서 염불(念佛) 소리 차례로 나는지라. 동풍이 건 듯 불면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남풍이 건듯불면 섭화중생아미타불(攝化衆生阿彌陀佛), 서풍이 건 듯 불면 도제중생아미타불(渡濟衆生阿彌陀佛) 하더라. 이 때 마을 사람들이 슬피 이르되, “안락국아 안락국아, 너는 어디 가고 너의 어머님 죽는 줄도 모르니 불쌍하구나.”하니 그 말 아이들이 듣고 노래삼아 위우더라. 이 때 안락국이 길 떠난 지 수개월 만에 장자의 집 근처에 와 모부인 소식을 탐지할새. 나무 베는 목동들이 홀연 노래를 부르되, “안락국은 어디 가고 슬프다 불쌍하다, 너의 어머님을 죽여다가 법라국 임정사로 가는데, 수풀 밑에 넣어 몸은 까막까치 밥이 되고, 혼백은 화하여 염불 소리 되었는데, 너는 모르누나.” 하거늘, 안락국이 이 말을 듣고 나아가 그 아이더라 물으되, “그 노래 다시 한 번 불러라. 나도 들어 보자.” 한데, 그 아이 대답하되, “우리 부모님께서 하루 한 번씩만 하라 하였으매, 다시는 못 하겠노라.”하거늘, 안락국이 이르되, “값을 줄 것이나 부르라.”하니, 그 아이 대답하되, “무엇으로 값을 주려 하는가.”하거늘, 안락국이 찼던 구슬을 준다고 하니, 그제야 짓을 내어 노래를 불러 이르되, “안락국아……너는 어디 가고 너의 어머님 죽여다가 범라국 임정사로 가는데 수풀 속에 버렸으니, 까막까치 밥이 되어 다 물어 가고, 혼백은 화하여 염불 소리 되었는데, 너는 어디 가고 모르는다. 안락국아, 슬프고 가련하다. 안락국아, 너의 어머님 찾아가거라.” 하거늘, 그 노래를 듣고 마음이 녹는 듯 스는 듯하여 황황망극히 엎어지며 곱드러지며 아무리 할 줄을 모르고 찾아가 본즉 과연 뼈만 남았거늘, 눈물을 흘리고 뼈를 주어 모아 놓고 보니 손가락 하나가 없거늘,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우노라니 한 까마귀가 손가락 하나를 물어다가 안락국 앞에 내려놓거늘, 그제야 맞추어 놓고 백련화로 씻으니 뼈가 제로 온 듯하고, 또 적련화로 씻으니 살이 완연하고, 또 홍련화로 씻으니 숨을 내쉬고 정신이 들어 일어 앉으시거늘, 안락국이 부인 앞에 나아가 붙들고 통곡하며, “어머님 어머님아, 소자와 같이 부왕 계신 데로 가사이다.”하온데, 부인이 이르시되, “안락국아, 너 어디로 갔던가.” 안락국이 여쭈오되, “소자는 서천 서역국 세존님 도량에 갔삽더니, 부왕께옵서 바삐 가서 어머님을 모셔 오라 하옵시매 왔아오니 바삐 가사이다.” 하온데, 부인이 이르시되, “우리 모자 가다가 또 장자에게 잡히면 수욕을 당할까 저허하노라.” 안락국이 여쭈오되, “이제는 그렇지 아니하외다.” 하고, 부인을 모시고 서쪽으로 가노라니 장자의 종들이 어디로 가다가 보고 장자더러 고하니, 장자 대왈, “안락국의 어미 죽은 지 오래거근 어찌 데리고 가리오.” 제 종을 꾸짖고 이르되, “안락국은 살았은즉 제 어미 종적을 알러 왔다가 가기는 고이치 않다.”하고 부동․목동더러 보라 하니, 두 놈이 보더니, “저기 가나이다.”하거늘, 장자 따라가 급히 잡아 오라 하니, 그 두 놈이 잡으러 가자 문득 천지 진동하더니, 벽력과 벼락이 내려와 장자집을 둘러 빼어 청청소(靑靑沼)를 만들고, 목동․부동이는 시신(屍身)도 없이하고 간데없더라. 이러한 사이에 안락국이 모부인을 모시고 홍천 바닷가에 다다르니, 팔시녀 배를 타고 옥저를 불며 오거늘, 안락국이 이르되, “동자는 이 물을 인도하소서.”하니, 팔시녀 배를 대거늘, 안락국이 모부인을 모셔 배에 오르니, 팔시녀 부인께 여쭈오되, “원로험지(遠路險地)에 행차안녕(行次安寧)히 하시니 천행이로소이다.” 부인이 제풀에 눈물이 비 오듯 하더라. 배에서 내려 안락국이 모부인과 팔시녀와 더불어 사라수 대왕 전에 들어와 뵈온대, 대왕이 부인께 묻자오되, “그 사이 겪으신 고행이 어떠하였소이까. 나는 들어 올 제 부인이 가르치신 왕생계를 잊이 아니하고 외우더니, 우리 회중이 다 만났사오니 부처님 덕이로소이다.”하시고, 부인과 안락국을 데리고 세존님 도량에 들어 가온데, 세존님이 보시고 칭찬하시고 동참(同參)하오셔 참회(懺悔)를 삼계도(三界道)의 희락중(喜樂衆)을 다 발원(發願)하사 설법(說法)하시되,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육도중생(六道衆生)을 제도(濟度)하사이다.” 하시고, 사라수 대왕으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정하시옵고, 원앙 부인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정하시옵고, 승여래바라문화주(僧如來婆羅門化主)로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정하시옵고, 팔시녀로 팔금강(八金剛)을 정하시니라. 이러하므로 선지식의 동참을 거룩히 아니 하리요, 이러하므로 선은 선을 때이고, 악은 악을 때인다, 고약한 사람은 사귀지 말고, 착한 사람을 저버리지 말라 하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