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척 전                                          - 조위한 -

 

 

최척(崔陟)은 남원 사람으로 자는 백승(伯昇)이었다.

어려서 어머니를 여읜 그는 아버지 숙(淑)과 함께 남원부 서문 밖에 있는 만복사 부근에서 살고 있었다.

어려서는 제법 큰 뜻과 높은 기개를 품었지만 커가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만 정신을 팔고, 학업에 대한 뜻도 저 버리고 예절까지 소홀히 하자 그의 아버지가 늘 타이르곤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과 어울렸다가 늦게 돌아온 어느 날.

"사람이 힘써 배우지 않으면 자칫 무뢰한이 되기 십상이다. 너는 장차 어떤 사람이 되려고 만날 이러고 지내는 게냐? 지금은 전시(戰時)여서 나라 곳곳에서 병사들을 징집하고 있으니 말타기나 활쏘기를 익혀 자랑스럽게 나라를 위해 싸우든지 아니면 공부에 전념하여 과거를 보아 벼슬길로 나아가던지 해야 옳은 일이거늘, 너는 이 늙은 아비에게 걱정만 끼치고 있구나. 척아, 어느 아비가 자식의 등에 화살통을 지워주며 전쟁터로 내보내고 싶겠느냐. 그러니 지금이라도 학문을 익히도록 하여라.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는 욕심까지 내진 않겠다.

다만 사람의 도리를 다 하며 살게 하기 위해 배우라 하는 것이니,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성남에 사시는 정 진사를 찾아뵙도록 하여라. 나와 죽마고우인 그분은 학문도 뛰어나지만 성품이 온화해서 글을 처음 배우는 사람을 잘 이끌어줄 것이다. 그러니 그 분을 스승으로 섬기며 학문의 길로 가거라."

최척은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책을 싸 가지고 정 진사를 찾아가 배움을 청하였다.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한 지 몇 달도 안 되었는데 빗물에 강이 넘치듯 문장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자 정 진사 댁에서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까지도 그의 총명함과 민첩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최척은 공부할 때마다 누군가가 창 밑에 숨어서 자신이 책 읽는 소리를 몰래 엿듣는다는 것을 느꼈다.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궁금했던 그는 살금살금 다가가 급히 창을 열어제치며 내다보았다. 칠흑 같은 머리채에 눈썹이 짙은 십칠팔 세쯤 된 계집아이가 몸을 벽에 바짝 붙이고 엿듣고 있다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었다.

어디서 본 듯 하다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정 진사 댁에서 잔심부름하는 아환, 즉 계집종이었다. 그러자 더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스승님 댁 아환이 무엇 때문에 글 읽는 소리를 매일같이 엿듣는 것일까?'

그러나 척은 별 것 아닐 거라 여기고 그 생각을 이내 접었다. 그리고는 읽던 책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어느 날, 점심때가 되어 진사가 밥을 먹으러 안으로 들어가고 최척 혼자 시를 읊고 있을 때였다. 바스락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창 틈으로 종이쪽지 하나가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거였다. 척은 그것을 잡아 빼어 펼쳐보았다.

    "떨어지는 매실 광주리에 주워 담네. 나를 찾는 낭군이여, 지금 말만 하세요."

그것은 혼인 적령기의 아가씨가 혼기를 놓칠까 봐 안타까워하는 노래인, 시경(詩經) 속에 나오는 <표유매(標有梅)>의 마지막 장이었다.

최척은 황홀한 기분에 젖어서 그것을 수십 번이나 읽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마음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난생처음 겪어보는 야릇한 기분을 참다 못한 그는 어두운 밤을 틈타서 향기를 훔쳐볼까 하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으나 이내 김태현의 고사를 떠올리며 애써 자신의 감정을 억눌렀다.

'고려 후기 때 사람 김태현이 선진의 문하에서 수업을 할 적에 선진의 과부딸을 보고 반했었다지. 그녀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그가 창문으로 시를 들여보내니 그 시에다 <말을 타고 온 백면서생은 누구이던가 석 달이 되도록 이름도 몰랐었네. 지금에야 비로소 김태현임을 알았는데 가는 눈 긴 눈썹 나도 몰래 맘에 들어.> 라고 답 글을 적었다지. 그래서 김태현은 두 번 다시 그 집에 발걸음 하지 않았다지.'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도의만 따를 수는 없는 것이어서 아무리 스스로 경계하고 경계하여도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들끓는 욕망은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최척이 불그레해진 얼굴로 갖가지 생각에 젖어 있을 때 진사가 나오는 기척이 났다. 그는 즉시 쪽지를 소매 속에다 감추고 책장에 얼굴을 묻었으나 그것이 머릿속으로 들어올 리 만무했다.

어찌어찌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푸른 옷을 입은 그 아환이 문 밖에 서 있다가 최척의 뒤를 졸졸 따라오며 말하였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척은 쪽지 일로 인하여 마음이 싱숭생숭하던 차였는데 비록 종이긴 하나 여자아이가 말을 걸어오니 마음이 한없이 들뜨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다잡고서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인데 나를 따르는 것이냐?"

"저는 이 낭자(李娘子)의 계집종인 춘생(春生)이라 하옵니다. 낭자가 저에게 낭군의 화답시(和答詩)를 받아 오라 하였습니다."

최척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아니 너는 정 진사 댁의 아이가 아니냐? 그런데 어째서 이 낭자라 하느냐?"

춘생이 말했다.

"우리 주인댁은 본래 서울 숭례문 밖 청파리에 있었습니다. 주인 어른은 이경신이라는 분인데 일찍 돌아가셨고 과부가 된 심씨께서 딸 하나와 더불어 살고 계시지요. 그 낭자의 이름은 옥영인데 바로 그 낭자가 창 틈으로 시를 넣게 하고 화답시를 청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해 배를 타고 강화도로 피난을 갔다가 거기서 나주 땅 회진으로 가 머물렀지요. 그러다가 가을에 회진에서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님의 친척이신 정 진사 어르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는 주인데 지금 낭자의 혼처까지 알아보고 계신답니다."

최척이 말했다.

"음 그랬었구나. 헌데 네 아가씨는 과부의 따님이라면서 어떻게 글을 아느냐?"

이에 춘생이 대답했다.

"낭자에게는 득영이라는 언니가 있었습니다. 글이 아주 뛰어났는데 아깝게도 열 아홉 나이에 시집도 못 가고 죽었지요. 옥영 아가씨는 그 언니 어깨너머로 글을 익혔습니다."

최척은 답서를 써 주었다.

 

저는 낭자의 글에 마음을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이 기쁨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제 삼생의 소원이 이루어질 징조가 아닌가 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편지심부름을 해주는 청조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 없지요.

저는 낭자의 글을 받고서 설렘과 야릇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낭자를 유혹해보고 싶은 마음까지 품게 되었지요. 하지만 봉래산으로 가는 길은 멀고 신선이 산다는 곳의 약수는 건너기 어렵기에 이리저리 고민하였습니다. 낭자, 저는 우리가 주고받는 이 편지가 월하노인이 던져주는 연분의 끈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낭자, 부디 지금의 마음을 바꾸지 마십시오.

글로 제 마음을 다 보여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고 또 안타깝습니다. 오늘 밤 달이 뜰 무렵 마음으로나마 만나도록 합시다.

 

낭군의 편지를 받아든 옥영은 기뻐 어쩔 줄을 몰랏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려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으나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답장을 써서는 춘생에게 주며 전하라 하였다.

 

저는 정유재란 중에 이리저리 떠돌다 남쪽 땅에 이르러 친척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 처지입니다. 부친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단둘이 살지만 저는 규방에서 생장하였으므로 여자로서 갖추어야 할 행실을 제대로 익혔습니다.

여기서 지내면서 몸은 비록 편안하다고는 하나 마음은 늘 얼어붙은 호수나 매한가지랍니다. 혼기가 되었으나 지아비로 모셔야 할 분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있어 늘 불안한데다 하루아침에 전쟁터로 변해 버린 세상에서 포악한 무리들에게 짓밟혀 붉은 구슬이 깨어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처지가 이렇다 보니 노모께서 근심하시고 제 스스로도 한스러울 뿐입니다. 여자의 백년고락은 실로 남자에게 달려 있는지라 저는 반듯한 남자가 아니라면 혼인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지녀왔습니다. 그런데 낭군을 가까이에서 뵈니까 말씀이 온화하고 행동은 단아하며 얼굴은 진솔한 빛을 띄어 얼마나 기품 있어 보이는지 모른답니다. 저는 다른 이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을 제 남편으로 맞고 싶습니다.

낭군님, 어제 제가 시를 던진 것은 음란한 짓을 하려고 그랬던 게 아니라 낭군님의 심중을 알아보려는 의도였습니다.

저는 비록 배움이 깊지도 못하고 용모가 빼어난 것도 아니지만 문사 집안의 자손이므로, 저자거리에서 노니는 무리들처럼 담벼락에 구멍을 뚫고 몰래 만나는 짓 따윈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부모님께 아뢴 다음 예를 갖추어 혼례를 치르게 된다면 거안지경(擧案之敬), 다시 말해 부부의 도리를 다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남편을 공경할 것입니다.

이미 사사로이 편지글을 주고받아 스스로를 중매하는 추한 짓을 하여 그윽한 정조를 잃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하여 간담상조하듯 서로의 마음을 비추어 보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함부로 편지를 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매파를 통해 소통하여 우리가 밀회를 즐겼다는 비난을 받지 않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편지를 다 읽은 최척은 매우 기뻐하면서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버지께 간청을 드렸다.

"아버지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할 말이란 게 무언지 해 보거라."

"아버지, 스승님 댁에는 그분과 친척인 과부 심씨라는 분이 혼기에 이른 여식을 데리고 피난 내려와 계십니다. 저도 이제 혼인을 할 때가 되었는데 아버지께서 못난 자식을 위하여 스승님께 구혼을 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지금 서두르지 않는다면 발 빠른 자가 먼저 그 낭자를 취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말하였다.

"그래 나도 들어서 알고는 있다. 그 사람들은 비록 피난살이를 하는 중이다마는 화족(華族)이니라. 나라에 큰 공훈을 세운 집안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마땅히 학식이 높고 부유한 집안의 자식과 연을 맺어주고 싶어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우리는 본시 가난하니 우리의 청혼을 거절할 것 같구나."

최척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거듭 말씀을 올렸다.

"그래도 일단 말씀을 해보기나 하십시오. 성사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일 테니까요."

다음 날 최척의 아버지는 정 진사를 찾아가 넌지시 혼사에 대한 말을 꺼내보았다. 그러자 정 진사가 말했다.

"누이 벌되는 사람이 서울서 피난을 내려와 내 집에 궁박하게 머물고 있지. 그런데 그 여식의 자색과 행실이 어찌나 빼어나던지 우리가 지금 혼처를 구해 주려 애쓰는 중인데 자네로부터 혼사 얘기를 듣고 보니 내 솔직하게 말하겠네. 내가 그동안 척을 가르쳐왔기 때문에 그 애가 모든 면에서 손색이 없다는 것을 잘 아네. 하지만 자네의 집안이 너무 빈한하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네. 알다시피 내 누이는 화족이 아닌가. 그런데다 내 여식이 아니라 내 뜻대로 할 수 없으니 오늘 저녁 누이와 상의해보고 나서 차후에 알려줌세."

그 날 저녁 정 진사는 누이 심씨에게 최척과의 혼사이야기를 꺼냈다. 심씨는 한참 생각한 끝에 어려운 뜻을 내비쳤다.

"오라버니께서 저희 모녀를 생각해주시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어요. 그러나 최생의 집안이 그리도 빈한하다 하니 꺼려지는 게 사실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아일 그토록 어려운 집으로 시집보내 고생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머니가 최척과의 혼사를 피했다는 말을 들은 옥영이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은 그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이리 뒤채고 저리 뒤채다가 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옥영아, 아까 최척이란 사람에게 너를 시집보내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내가 거절을 하였다. 우리가 지금은 피난살이를 하는 중이라 모양새가 이렇다만 너를 그런 집안으로 시집보낼 만큼 형편없는 가문이 아니질 않느냐. 게다가 너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거절한 것이니 서운해하지 말거라. 그보다 나은 자리가 곧 나타날 것이야."

옥영은 왈칵 눈물이 솟았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저를 생각해서 그리 하셨다는 걸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집안이 있고 없고보다는 그 사람 됨됨이가 더 중요하지 않겠어요? 아무리 부유하고 지체가 높다하여도 어질지 못하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어머니, 저는 그간 최생이란 사람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는 무척 성실해 보였고 제 할 도리를 다하는 선비라 여겨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칭찬도 끊이질 않았구요. 원하건대 어머니, 최생과 혼인하게 해주십시오. 제가 나설 일은 아니지만 제 혼인에 관한 일이니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부끄러움 때문에 말을 못하고 있다가 혹 용렬한 사람에게 시집가게 되어 제 일생을 그르치게 될까 염려스러워 그러는 거예요 어머니. 한 번 깨진 시루는 완전하게 기울 수 없고 한 번 물든 실은 다시 희어질 수 없으니 서제막급일텐데 아무리 울면서 제 배꼽을 물어뜯으려 해본들 입에나 닿겠습니까. 만약 최생을 제 배필로 삼지 못한다면 안씨의 청혼을 따르거나 서매가 골라주는 남자를 남편으로 삼아야만 할 처지인데 어머니, 제 속마음을 감춘 채 다른 남자를 따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딸의 속 이야기를 다 들은 심씨는 다음날 정 진사에게 말하였다.

"오라버니, 어젯밤 내내 옥영이 혼사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난하고 부자이고는 하늘의 뜻에 달려있는 것이고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지요. 전들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마는 옥영이가 고생을 할까봐 그랬던 건데, 오라버니께서도 최생을 칭찬하셨고 옥영이의 뜻도 있고 하니 최생을 옥영이의 배필로 삼으렵니다."

정 진사가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지금은 그가 한미한 선비지만 사람됨이 옥과 같으니 학업에만 뜻을 두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머잖아 대성할 인물이지. 암 그만한 사람은 흔치 않아."

그 날로 중매쟁이가 오가는가 싶더니만 일사천리, 구월 보름날로 혼례날을 잡았다.

최척은 뛸 듯이 기뻤다. 생시인가 아닌가 제 팔을 꼬집어보기도 하면서 방에서 온종일 서성였는데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을 몰랐다.

그는 어린 아이처럼 매일 손가락을 꼽아가며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전쟁은 그때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 무렵 의병장 변사정이라는 사람이 영남지방으로 이끌고 갈 의병들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활쏘기와 말타기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럽다 할 최척의 이름이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척은 의병대에 반 강제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는 전쟁터에 있는 동안 내내 옥영에 대한 근심걱정에 휩싸여 지내다가 병을 얻었다.

혼례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애가 탄 척은 의병장에게 하소연해 보았으나 집으로 돌아갈 말미를 얻을 수가 없었다.

"여봐라,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리고 여기가 어디라고 네 혼사를 들먹이는 것이냐. 임금님께서도 어느 풀숲을 헤매고 계실지 모르는데 백성인 자로서 마땅히 창칼을 앞세우고 나라의 안위를 근심해야 하거늘 혼사? 그것은 왜적을 다 물리치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한편 근심걱정 속에서 홀로 혼례날을 보낸 옥영은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여 말할 수 없이 초췌해져갔다.

그 마을에 갑부 홀아비 양씨가 있었다. 그는 평소에 은근히 옥영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옥영과 혼사를 치러야할 신랑이 전장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는 속으로 기뻐하였다. 마침 좋은 때다 싶어 옥영에게 구혼을 하기로 마음먹고 정 진사의 부인을 찾아가 몰래 뇌물을 건넸다. 그러자 진사의 부인은 매일같이 옥영의 어머니에게 옥영이를 양씨한테 시집보내는 게 나을 거라고 부추겼다.

"최생은 겨우 아침을 먹고 나면 저녁을 걱정해야할 만큼 궁핍하답니다. 한 아비도 봉양키 어려운 그런 집에다 어찌 저리도 귀한 옥영을 주려합니까. 게다가 혼인을 하러 와야할 사람이 여태 오지 않고 있는 걸 보면 그의 생사도 기약하기 어려우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에 비해 양씨는 부자인데다 똑똑한 아들까지 둔 사람입니다. 최생을 기다리느라 헛된 시간 보내지 말고 양씨와 혼례를 치르게 하여 편히 살게 하는 것이 백 번 낫지 않겠어요?"

제 아내가 하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펄쩍 뛰며 말리던 정 진사도 자꾸 그 말을 듣다보니 귀가 그쪽으로 쏠리게 되어 누이 심씨에게 권하게까지 되었다. 심씨 역시도 그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옥영을 양씨에게로 시집보내는 데 동의하고 말았다.

그 말을 들은 옥영은 밤에 어머니에게 눈물로 호소를 하였다.

"어머니, 최생은 약조를 가벼이 여겨 오지 않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가 간 곳은 여느 데도 아니고 전쟁터이니 나름대로 어떤 사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도 없는 사이에 그와의 혼인언약을 저 버리고 저더러 다른 이한테로 시집을 가라구요? 이는 정리에도 어긋나는 일일뿐더러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저는 죽어도 그리 하진 않을 것입니다. 하늘도 땅도 저를 버리시는가 봅니다. 흐흐흐흑……."

"옥영아 고집 좀 그만 부리거라. 이는 다 네 신관을 편케 해주려고 하는 일이란다. 그리고 너는 어른들의 말씀을 따르는 게 자식의 도리라는 것을 잊었느냐?"

모녀는 밤이 깊도록 설왕설래하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심 씨의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소리인지 숨이 막혀 골골거리는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심 씨의 베갯머리를 파고들었다.

심 씨는 어쩐지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들어 딸의 자리를 더듬어 보았다. 텅 비어 있는 것이었다.

"옥영아, 옥영아 어디 있는 게냐?"

겨우 등을 켜고 창쪽을 바라본 심 씨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하였다.

옥영이가 비단수건으로 목을 맨 채 창문 밑에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서둘러 부둥켜안으니 그녀의 손발은 차갑고 가는 숨소리가 목구멍을 겨우 들락거렸는데 그것마저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위태롭게 느껴졌다. 심 씨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수건을 풀었다.

심 씨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춘생이 옥영의 입에 물을 몇 모금 흘려 넣었다. 얼마 후에 정신이 든 옥영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연신 중얼거렸다.

심 씨는 가슴을 치며 후회하였다. '내가 괜한 욕심을 부려 하나 있는 딸을 잡을 뻔하였구나.'

곧 집안 사람들이 달려와 안타까워하며 옥영의 병구완을 도왔고, 그 후로 아무도 양 씨와의 혼사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즈음 최숙은 아들 척에게 편지를 내어 그 간의 일들을 소상히 알렸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의 병이 깊어져 앓고 있던 차에 그 편지를 받고는 병이 더 위중해지고 말아 마침내 귀가 명령이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온 척은 여러 날 동안을 앓고 나서 십일 월 초하룻날 정 진사 댁에서 혼례를 올렸다.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두 남녀가 서로 합치게 되었으니 기쁨이 어떠했으랴.

최척은 아내와 장모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일가친척들로부터 칭송과 축하의 말을 받으며 대청으로 올랐다. 온 집안이 기쁨으로 술렁거렸다.

옥영은 다음 날부터 소매를 걷어 부치고 나섰다. 손수 물을 긷고 절구질도 하면서 시아버지와 남편을 봉양하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웃어른을 효성스럽게 받들고 아랫사람은 나름대로 성의와 예를 갖추어 대하니 옥영의 이 같은 행위를 지켜본 이웃들은 후한 시대 양홍의 처나 진한 시대의 포선의 처도 이에는 미치지 못할 거라고 입을 모았다.

최척은 옥영과 혼인을 한 후로 재산도 늘고 여러 가지 구하는 바가 뜻대로 이루어져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점점 늙어 가는데 자식이 생기지 않아 그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매월 초하룻날이 되면 그들 부부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만복사로 가서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곤 하였다.

그 이듬해 갑오년 1594년 정월 초하룻날에도 절에 올라 기도를 하였는데 바로 그날 밤 장육금불(丈六金佛)께서 옥영의 꿈에 나타나 말씀하셨다.

"나는 만복사의 부처니라. 너희 정성이 가상하여 재주가 뛰어난 사내아이를 점지해 주련다. 그 아이는 특이한 데가 있으리로다."

부처님으로부터 아이를 점지 받은 옥영은 각별히 몸과 마음을 돌보았고 열 달 후 아이를 낳았는데 등에 어린아이 손바닥만한 붉은 반점이 있었다. 꿈에 얻은 아이라서 이름을 몽석(夢釋)이라 지었다.

최척은 피리를 잘 불었다. 그는 달뜨는 저녁 무렵에 피리를 즐겨 불었는데 그것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다른 세계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어느 늦은 봄날 밤이었다. 달빛은 은은히 비치는 가운데 미풍이 불어 바람에 날린 꽃잎이 창안으로 날아들었다. 최척 부부는 그윽한 향내를 맡으며 술을 한잔씩 따라 마셨다. 그리고 나서 척은 침상에 기대어 피리를 세 곡이나 불었는데 그 여음이 허공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눈을 감고 남편의 피리소리를 음미하던 옥영이 말을 꺼냈다.

"저는 시 읊는 것을 즐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 같은 정경 속에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군요."

그러면서 옥영이 시를 읊었다.

    왕자진이 피리를 부니 달도 내려와 듣는구나.

    바다처럼 검푸른 하늘에 밤 안개 가득하여

    푸른 새 제 아무리 높이 날아도

    봉도(蓬島)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네.

자기 아내가 이렇듯 시를 잘 짓는 줄을 몰랐던 척은 깜짝 놀랐다. 그는 거듭거듭 칭찬을 한 뒤에 자기도 화답시를 징 읊었다.

    아득한 요대(瑤臺)엔 새벽구름 붉게 물들고

    맑은 난소(鸞簫)의 곡조는 끊이지 않네.

    남은 피리소리가 빈 산을 울려 달은 지려 하는데

    뜰에 드리운 꽃 그림자 하염없이 바람에 날리는구나.

남편의 시를 들은 옥영은 눈물을 흘렸다.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어떠한 변고가 생길는지요. 지금이야 이렇게 편안하고 즐겁다지만 좋은 것 뒤에는 마(魔)가 따르기 마련이어서 그런 걸 생각하면 괜스레 마음이 어수선하고 슬퍼져요."

척은 제 소매로 아내의 젖은 눈을 문질러주며 위로했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우리 삶이란 것이 한번 굽으면 펴질 때도 있고 가득 차면 텅 빌 때도 있는 것이지 어찌 일정할 수가 있겠소. 그렇게 되는 것이 또 하늘이 이치요. 그렇다고 해서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도 없소. 언제나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을 기억하고 공연히 걱정하고 번뇌하느라 마음을 허비하지 마시오."

그 이후 최척과 옥영의 애정은 더욱 깊어졌고 서로 지음(知音)이라 불렀으니 그것은 마음이 통하는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뜻이었다.

 

정유년(丁酉年 1597년) 팔월에 남원이 왜구들에게 함락당하자 모두들 피난을 가기 시작했다. 최척은 지리산 연곡으로 피난 떠나기에 앞서 옥영에게 남장을 시켰다. 그렇게 한 다음 길을 떠나니 사람들은 옥영이 여자인 줄을 몰랐다.

지리산에 숨어 산 지 여러 날이 되니 양식이 다 떨어져 굶주리게 되어 최척은 장정 서너 사람과 함께 양식거리도 구할 겸 전쟁의 형세도 알아볼 겸해서 산을 내려왔다. 어느 산모퉁이를 돌려할 때 왜구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 그들은 급히 큰바위 뒤쪽 수풀에 간신히 몸을 숨기어 위기를 모면했다.

그 길로 연곡사로 쳐들어가 약탈을 시작한 왜적들의 짓거리는 삼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길이 막혀서 오도가도 할 수 없게 된 최척 일행은 꼼짝없이 숨어 지내다가 왜적이 물러간 것을 확인한 뒤에 연곡사로 올라가니, 길 곳곳이 시체들이 즐비했고 흘러내리는 피는 내를 이룰 정도였다.

최척이 넋을 놓고 서 있는데 어디선가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숲 쪽에서 나는 것이어서 소리를 따라 가보니 상처투성이의 노인들 몇이 쓰러져 있었는데 최척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왜놈들이 쳐들어와서 사흘 동안 재물을 약탈하고 양민들까지도 무참히 죽였다네. 어디 그뿐인가 부녀자들을 죄다 끌고 어제 섬진강 쪽으로 갔어. 자네도 가족을 잃었다면 서둘러 물가로 가 보게나."

최척은 노인들의 상처를 돌보아주다가 너무도 기가 막혀서 피를 토하며 통곡하였다. 얼마 뒤 정신을 가다듬어 섬진강으로 달려가는데 그곳 역시도 시체들이 산을 이루었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가 척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둘레를 살펴보던 중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된 채 쓰러져 있는 어떤 여자가 손을 내저으며 신음하고 있어 척은 그리로 뛰어갔다.

"아직 살아 있군요.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겠소? 내 말이 들리오?"

애타게 묻다 보니 그 여자 왼손등에 강낭콩만한 검은 삼귀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아, 춘생이?' 척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끌어올려 그녀 얼굴에 묻은 피를 대충 문질러내고 살피니 춘생이었다.

"춘생이 아니더냐?"

그녀는 그 소리에 안간힘을 다해 눈을 떴다. 그리고는 간신히 입술을 달싹거렸다.

"모두 적병에게 끌려갔어요. 저는 몽석 도련님 업고 도망치다가 그만……. 도련님, 도련님은 어찌 되셨는지……."

사력을 다해 그 말을 겨우 하고서 춘생은 영영 눈을 감았다.

가족과 아들의 생사를 모른다는 말에 최척은 숨을 쉴 수 없는 통증에 짓눌려 한발짝도 움직이질 못하다가 한참 후에 찢어지는 듯한 가슴을 부여잡은 채 섬진강에 당도하였다. 창칼에 찔린 수십 명의 노약자들이 모래바닥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최척은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상황을 다 알 것 같았다.

모래 위에 털퍼덕 주저앉아 물끄러미 강물을 바라보는데 언젠가 아내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어떠한 변고가 생길는지요. 지금이야 이렇게 편안하고 즐겁다지만 좋은 것 뒤에는 마가 따르기 마련이어서 그런 걸 생각하면 괜스레 마음이 어수선하고 슬퍼져요.'

물새들은 전쟁이고 주검이고 아랑곳하지 않고 핏물이 스며든 강에서 여전히 먹이를 잡고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여보, 어디 있소? 몽석아, 어디 있는 게냐?"

가족을 다 잃었는데 혼자서만 살아남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척은 무작정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섬진강물이 무릎께를 넘고 허리를 넘어 겨드랑이를 휘감을 때 사람들이 서둘러 구해내어 목숨을 버리지도 못하였다. 그는 반미치광이처럼 허위허위 강 상류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막상 갈 데도 없었으므로 샛길을 찾아 사흘 밤낮을 걸어 겨우 고향마을에 닿았는데 곳곳이 온통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불살라지고 무너지고 시신들은 나뒹굴고, 그런 장면들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어 그는 마을을 벗어나 걷기 시작했다.

금교 부근에서 쉬고 있을 때 성 안에서 당나라 장수가 수십 여명의 말 탄 병사들을 이끌고 나와 금교 아래 물가에서 말들을 씻기는 것이었다. 최척은 전에 의병으로 출병했을 때 당나라 장수들과 한동안 함께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간단한 중국말을 익혀두었다.

자신을 얻은 척은 장수를 찾아가 자신의 집안이 왜놈들에게 몰살당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의탁할 데가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면서, 가능하다면 자신을 중국으로 데리고 가달라는 청을 하였다. 장수는 안타까워하며 말하였다.

"나는 여유문이라는 사람이올시다. 오나라의 총병(摠兵)에 속해 있는 하급관리들의 우두머리지요. 내 집은 절강성 소흥부에 있는데 그다지 부유한 편은 아니나 먹고 살만은 하오. 살아가는 데 있어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다면 거기가 어디든 무슨 문제가 되겠소. 그대는 이미 우여곡절을 겪었으니 이제는 슬픔 따위에서 벗어날 만도 한데 무엇인들 못하겠소이까. 나를 의지하여 함께 떠납시다."

마침내 최척은 말을 얻어 타고 여유문을 따라 당나라로 건너갔다.

척은 장래를 염두에 두고 말타기와 활쏘기 훈련을 하는 틈틈이 중국말 공부에도 충실하였다. 그래서 여유문은 용모가 준수하고 사려 깊은 척과 한 막사 안에서 숙식을 함께 하고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잘 정도로 아껴주었다.

얼마 뒤 총병의 병사들이 중국으로 철수를 하게 되었으므로 최척도 전사자들의 장부를 담당하는 임무를 맡아 소흥부에서 지내게 되었다.

 

<중략>

 

경자년(庚子年, 1,600년) 봄, 최척은 송 주우를 따라 항주로 갔다. 최척은 송 공과 함께 상선을 타고 안남(安南, 베트남의 다른 이름)을 왕래했다. 이 항구에는 왜선 10여 척이 열흘 전부터 정박하고 있었다. 이때는 4월이라 모두 노곤하여 곯아 떨어졌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었다. 물빛은 비단같이 아름다웠고 바람이 자서 물결이 잔잔했다. 물결 소리조차 조금도 들려오지 않았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잠이 들어 코고는 소리만 높은데, 이따금 물새 우는 소리만이 들려 왔다.(배경의 사실적 묘사 - 쓸쓸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최척이 상선을 타고 안남의 항구에 정박함.

그때 왜선에서 염불하는 소리(인물(최척, 옥영)의 심리가 반영됨.  옥영과 최척이 만나게 되는 계기(매개))가 매우 구성지게 들려왔다. 최척은 홀로 선창에 기댄 채 신세 타령(잃어 버린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했다. 모든 것을 잊으려는 듯, 품속에서 퉁소를 꺼내어 계면조(슬프고 애타는 느낌을 주는, 국악에서 쓰는 음계의 하나) 한 곡을 불면서 가슴속에 맺힌 애원(哀怨)한 정을 풀고 있었다. 이 퉁소 소리(염불하는 소리와 같은 의미임)에 하늘마저 근심스런 빛을 띤 듯했고 구름과 연기조차 침울하기 그지없었다.(자연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통해 최척의 슬픔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제시함.) 배 안에서 잠자던 사람들도 놀라 깨어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슬픈 낯빛을 지었다. 퉁소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자 왜선에서 염불 소리가 갑자기 멎고 조선어로 칠언 절구(예전에 옥영이 최척의 퉁소 소리를 듣고 지은 시)를 한 수 읊는 소리가 들렸다.

    왕자교 퉁소 불 제 달도 내려와 듣는구나

    바닷빛 파란 하늘엔 이슬이 자욱하네.

    푸른 난새 함께 타고 날아가리니

    봉래산(봉도) 안개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네.

읊기를 다하자 한숨을 휴우 내쉬는 것이었다. 최척은 시 읊는 소리를 듣고 너무나 뜻밖이어서 들었던 퉁소마저 떨어뜨렸다. 넋을 잃은 듯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시 읊는 소리를 듣고 놀란 최척의 심리 표현)

*퉁소를 불던 최척이 왜선에서 들려오는 시 읊는 소리에 놀람.

송 공이 이상히 여겨,

"자네는 어째서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가?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가? 어디가 안 좋아?"
하고 거듭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연해(계속해서) 큰소리로 묻자 최척은 그 자리에서 쓰러지며 기절해 버렸다(최척의 충격과 놀라움 - 인물 심리의 간접 제시). 얼마가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저 시는 내 아내가 지은 시요. 둘만이 알지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르오. 더욱이 시 읊는 소리가 아내와 흡사하니 어찌 놀라지 않겠소. 아내가 저 배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 도저히 그럴 리 없어."(최척이 시 읊는 소리에 놀란 이유)

그러고는 왜적의 습격을 당하여 가족들이 흩어진 내력을 들려주었다.(이 글의 시대적 배경이 나타남) 사람들은 놀라며 이상히 여겼다. 그 속에 두홍이란 사람이 있었다. 나이가 젊고 용감한 반면 좀 덤벙대는 사람이었다(인물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제시함).  그는 최척의 말을 듣자 의기를 나타내 주먹으로 뱃전을 쳤다. 분연히(떨쳐 일어서는 기운이 세차고 꿋꿋하게) 일어서며

"내가 당장 가서 찾아보겠소." / 하며 급히 서둘렀다.(성격의 간접적 제시-행동과 대화를 통해 의기는 넘치나 성급한 두홍의 성격을 잘 드러냄.)

송 공이 만류하며,

"깊은 밤에 일을 꾸몄다가는 무슨 변을 당할지 두려우이. 내일 아침에 정중히 찾아보는 것이 좋을 듯하이."(송우의 침착하고 신중한 성격-논리적인 상황 판단력을 지님) / 하니  찬성하였다.

*최척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고 다음날 왜선을 찾아가기로 함.

그날 밤 최척은 잠 한숨 자지 못했다. 아침을 기다리며 뜬눈으로 날을 밝혔다.(전전반측)

이윽고 동쪽 하늘이 밝아오자 그는 조금도 지체할 수 없어 배에서 내려왔다. 곧장 언덕으로 내려가 왜선으로 다가가서 조선어로 크게 외쳤다.

"어젯밤 시를 읊은 사람은 틀림없이 조선인일 거요. 나도 조선인이요. 이 머나먼 안남까지 와서 고국 사람을 한번 만나 보는 것도 이 또한 기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옥영은 배 안에서 퉁소 소리를 들었었다. 그것은 곧 조선의 곡조요 또한 옛날에 귀에 익었던 소리였다. 그래서 남편이 그 배에 와 있지 않나 해서 시험 삼아 시를 읊었던 것이다.(옥영이 시를 읊은 이유. 이심전심)  이때 남편이 자기를 찾는 말을 듣자 옥영은 황망하여(마음이 몹시 급하여 당황하고 허둥지둥하여) 몸둘 바를 몰랐다.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급히 난간을 내려갔다.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고 소리치면서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다.(최척과 옥영의 재회-고전소설의 우연성)

너무도 감격해 가슴이 막혔다. 심정이 격하여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이윽고 정신을 차렸다. 이 광경을 보느라고 양국의 뱃사람들이 담장처럼 늘어섰다. 그들은 처음에 친척이나 친구인 줄로 알고만 있다가 급기야 부부지간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서로 쳐다보며 큰소리로,

"이상하고도 기이하도다. 일찍이 이런 일은 보지 못했는데(전대미문) 정말 기쁜 일이로다." / 하며 경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최척과 옥영이 극적으로 재회함.

최척은 집안 소식을 물었다. 옥영은

"그때 저희들은 산중에 도망하여 강가로 나왔어요. 시아버님과 어머님은 그때까지 무사했어요. 날은 저물고 창황(蒼黃, 미처 어찌할 사이 없이 매우 급작스러움) 중에 배를 타느라고 그만 서로 헤어지고 말았어요." / 하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또 한번 통곡했다.(이산의 슬픔)  이 정경을 지켜보던 사람들마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 최척이 가족의 소식을 듣고 슬퍼함.

구경을 하느라 모여든 뱃사람들이 북적대는 바람에 그 곳은 저자거리나 다름없었는데, 처음에는 친구나 친척을 만난 것이겠거니 하였다가 나중에 그들이 부부사이라는 것을 알고는 또다시 깜짝 놀랐다.

"참으로 기이한 일도 다 있구나. 그야말로 천우신조(天祐神助)로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다 보게 되는구나."

사방에서 그런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 최척은 옥영의 손을 붙들고 배 안으로 들어가 그간의 소식을 물었다.

"그때 산 속에서 왜놈들에게 붙들려 강가로 끌려갔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버지와 장모님은 어찌 되시었소? 잘들 계시오?"

옥영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산중에서 붙들려 강가로 끌려나갔을 때까지는 부모님은 무사하셨습니다. 하지만 날이 어두워진 뒤 배에 강제로 태워질 적에 서로 아우성들을 치느라 그만……. 배가 물을 떠난 뒤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분이 안 계셨습니다. 용서하세요. 그리고 몽석이도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하니 제가 크나큰 죄인입니다."

"몽석인 춘생이가 업고 도망가다 놓친 듯하오. 부디 살아 있다면 좋으련만."

두 사람은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저마다 소맷부리로 눈물을 훔쳐냈다.

학천은 돈우를 찾아가 백금 두 덩이를 내놓으며 옥영의 몸값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돈우는 낯을 붉히며 말했다.

"내가 이 사람을 만난 지 사 년이나 되었습니다. 그 동안 그의 반듯한 마음을 높이 사 친자식처럼 여겨 왔지요. 그런 사람을 돈을 받고 넘기라구요?"

"제가 무례했다면 용서하시지요."

그러면서 학천이 고개를 숙이자 돈우는 눈물을 훔치며 옥영을 향해 말하였다.

"허허, 나의 둔감함이 참으로 부끄럽소이다. 사 년 동안이나 침식을 함게 해왔건만 그대가 여자라는 것을 몰랐으니 말이오. 어쨌든 참으로 놀랍소이다. 남편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 애쓰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소. 이는 천지신명도 감동할 일이오. 이제서라도 아내와 남편이 만난 것을 내 진심으로 축하하오."

말을 마치고 나서 돈우는 은자(銀子) 열 냥을 꺼내더니 노자에 보태라면서 옥영 손에 쥐어주는 것이었다.

"사 년 동안이나 동고동락을 해왔는데 하루아침에 이별을 하게 되니 몹시 슬프구려. 그대를 놓아보내고 싶지 않으나 내가 지금 그대를 막는다면 하늘은 내게다 벌을 내리실 테니 가서 잘들 사시오. 사우여! 사우여! 몸조심하여 잘 가시오."

옥영이 손을 들어 감사 드리며 말했다.

"일찍부터 보호해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죽지 않고 잘 살아왔고 또 그에 힘입어 낭군까지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이 은혜를 어찌 다 갚겠습니까. 게다가 이렇듯 전별금도 안겨 주시니 이 은혜 말로는 다 못하겠습니다."

최척은 돈우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하고 옥영을 데리고 왔는데, 지켜보던 사람들 중에는 금은이나 비단을 가지고 와 주면서 옥영 부부를 위로해주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애초에 달인처럼 살자며 떠난 뱃길이었지만 그 여정에서 최척이 아내를 만나게 되자 학천은 더 이상 배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최척 부부를 위해 깨끗한 방을 별도로 마련해주고 살게 했다.

그들 부부의 몸에서 일년 뒤 사내아이가 태어났으나 마음 한 켠에는 부모에 대한 생각과 함께 큰아들 몽석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지라 그들은 맘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런데 옥영이 작은 아이를 낳기 전 날 밤 꿈에 장육금불이 나타나 이르셨다.

"그대가 낳는 아이 등에는 사마귀가 있을 것이로다."

부부는 몽석이가 다시 태어난 것이라 여겨 이름을 몽선(夢禪)이라고 지었다.

어느덧 몽선이 성장하여 며느리를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그들 이웃에는 홍도라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진위경은 그녀가 첫 돌도 지나지 않았을 때 유총병을 따라 조선 전장에 출전했다가 돌아오지 못하여 생사조차 알 길이 없고, 그녀가 너댓 살 되었을 즈음 어머니마저 죽어 이모 손에서 길러졌다.

그녀는 이역만리가지 찾아가서라도 아버지의 넋을 위로해 드리고 싶어 하였으나 여자의 몸으로는 가능치 않은 일이므로 늘 안타까워하였다. 그러던 차에 몽선의 배필을 구한다는 말을 들은 홍도는 이모에게 자신을 중매해 달라고 하였다.

"이모, 저를 최생의 아내가 되게 해주세요. 그렇게만 된다면 조선 땅에 가서 아버지의 넋을 기릴 수 있을 거예요."

조카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던 이모는 즉시 최척 내외를 찾아가 홍도의 마음을 사실대로 드러내었다. 그러자 홍도의 마음을 기특하고 어여쁘게 여긴 최척 부부는 그녀를 흔쾌히 며느리로 삼았다.

 

이듬해 기미년인 1619년에 오랑캐들이 요양(遼陽)으로 쳐들어와 여러 진영을 연달아 함락시키고 수많은 장졸들을 죽였다. 이에 진노한 천자는 군대를 동원하여 그들을 토벌케 하였다.

그때 소주 사람 오세영은 교유격의 백총, 즉 정삼품 벼슬에 있던 사람인데 서유문으로부터 최척의 재주와 용맹함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최척을 서기(書記)로 삼아 전장으로 내보냈다. 얼떨결에 사지로 내몰린 최척을 옥영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작별하였다.

"서방님, 어디에 계시더라도 부디 몸조심하십시오. 아마도 저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나 봅니다. 난리 속에서 죽을 위기를 만나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기를 아홉 번, 그 끄트머리에서 서방님을 만나게 되어 이제야 끊어졌던 거문고 줄을 다시 잇고 깨어진 거울을 둥글게 할 수 있는가 보라고 생각하였는데 또다시 헤어져야 하다니요. 이 늘그막에 전장으로 나가시는데 어찌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이 있겠습니까. 서방님, 우리에게는 조상님의 제사를 모실 아들이 있으니 저는 마음놓고 서방님과 작별하는 이 자리에서 그만 생을 마감할까 합니다. 그리되면 헤어지고 나서 그리워하는 마음과 밤낮으로 근심하며 괴로워하는 마음 없을 테니까요. 서방님, 목숨을 소중히 여겨 잘 보존하십시오."

옥영은 말을 끝내자마자 돌아앉더니만 품에서 작은칼을 꺼내어 제 목을 찌르려고 하였는데 그것을 본 척이 재빨리 칼을 빼앗고 위로해주었다.

"여보, 어째 이러는 게요. 날 기다려 줄 그대가 없다면 내가 무슨 힘으로 전장에서 버틸 것이며 살아 돌아오기를 열망한단 말이오. 이러면 아니 되오.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멈추려 하듯 하찮은 오랑캐 놈들이 겁도 없이 천자의 군대에게 대드는 것을 쓸어 버리려 나가는 것이니 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오. 나는 틀림없이 잘 있다 올 테니 그대는 차후에 나를 만나 축하주 나눌 일만 생각하도록 하시오. 그대 곁에는 듬직한 몽선이 내외가 있으니 내 안심하고 다녀오리다. 내가 근심을 짊어지고 길을 떠나지 않게 해 주시구려."

최척은 마침내 옥영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나섰다.

요양 땅에 이른 최척은 수백 리를 더 걸어 들어가서 조선 군사들과 함께 북쪽 변방인 우모채에다 진을 쳤다. 하지만 장수가 적군을 가벼이 여기는 바람에 전 군대가 패배하고 말았다.

오랑캐들은 중국인 병사들은 부류를 가리지 않고 다 죽였으나 조선 병사들에게는 회유책을 쓰고 협박은 하면서도 죽이지는 않았다.

패배장수가 된 교유격은 부하 십여 명을 데리고 조선 군영으로 들어가 의복을 구걸하였다. 그때 원수 강홍립은 여분의 옷을 주어서 죽음을 면하게 하려 했으나, 통신사를 수행하던 임시벼슬자인 종사관 이민환 등이 오랑캐 수장에게 발각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원수가 내주었던 의복들을 도로 빼앗고 잡아서 도리어 적진으로 쫓아 버렸다.

최척은 어떡해서든 살아나가야 했기에 혼잡한 틈을 타서 탈출을 감행하여 목숨은 건졌으나 이번에는 강홍립 쪽이 패배를 하는 바람에 수장은 물론 그의 부하들과 함께 붙잡혀 감금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안에 또 다른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오랑캐 우두머리는 포로들의 장졸을 구분하여 가두었다. 최척이 가두어진 감옥에는 여러 젊은 장수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젊은 포로가 유독 척의 눈에 끌리곤 하였다. 그 안에서 서로들 통성명을 하게 되자 척은 그 안에 첩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름과 고향을 바꾸어서 대었고 말더듬이 흉내까지 내었다.

그런데 척의 눈에 끌리는 그 젊은이도 역시 그러하여 여러 사람 중 특히 척을 수상히 여겼다. '어쩌면 저 자는 중국병사인데 죽음을 피하려고 조선인 행세를 하는 건지도 몰라.' 그러면서 이것저것 캐묻기도 하고 날카로운 눈초리를 풀지 않은 반면, 척은 척대로 그 젊은이가 오랑캐들의 끄나풀이라 지레짐작하여 서로 경계하였다.

그렇게 두어 달이 흘러갔다. 그동안 시나브로 정이 들어 동병상련의 처지를 서로 안쓰러워하게 된 두 사람은 속을 털어놓게 되었다. 먼저 최척이 그가 걸어온 생의 내력을 실토하면서 실제 이름을 말하자 그 말을 듣고 있던 젊은이는 안색이 허옇게 질린 채 최척이 잃어 버렸다는 아이의 나이와 생김새에 대하여 상세히 묻는 것이었다. 척은 한숨을 내쉰 후 뜸을 들이다 말하였다.

"갑오년(1594년) 시월에 낳아 정유년(1597년) 팔월에 잃어 버렸다네. 그 아이 등짝엔 손바닥만한 붉은 반점이 있었는데, 내 살아 생전에 만나게나 되려는지."

저도 모르게 뒤로 나자빠졌다가 다시 몸을 일으킨 몽석은 그리고는 웃옷을 벗으며 말하였다.

"아버지!"

최척을 비롯하여 모든 이들의 입이 일제히 벌어졌다.

"뭐야, 아버지? 지금 아버지라 했나?"

"제가 바로 그 몽석입니다 아버지! 정유년 팔월에 잃어 버렸다는 몽석이가 접니다!"

부자지간임을 확인한 최척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몽석을 끌어안고 어루만지며 눈물을 쏟으니 그간에 맺혔던 한이 조금이나마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몽석아, 네 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아직 살아 계시느냐?"

"예, 제가 남원에서 무예를 익혀 출전하기 전까지는 살아 계셨습니다."

두 사람이 손을 붙잡고 온종일 울고 또 울었다. 오며가며 그들을 감시하던 늙은 오랑캐가 사연을 눈치채고는 동정의 눈길을 종종 보내었다.

어느 날 다른 오랑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늙은 오랑캐가 최척에게 다가와서 조선말로 말을 거는 것이었다. 척이 몹시 놀라자 그가 말했다.

"놀라지 마시오. 나는 본래 오랑캐가 아니라오. 나는 평안북도 삭주의 토병(土兵)이었소만 그곳 부사의 극심한 학정을 견디다 못해 가족들을 끌고 오랑캐 땅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이오. 여기 오랑캐 우두머리는 나에게 여든의 군사를 맡기면서 조선병사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철저히 지키라는 명을 내렸소이다.

하지만 당신들에게 그런 기막힌 사연이 숨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나 역시도 무척이나 기뻐서 당신들이 도망치게끔 꼭 도와주고 싶소."

"그러다 만약 들키기라도 한다면 당신이 위험해지잖소."

"그건 내가 알아서 할 것이오. 설혹 내가 우두머리에게 문책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들이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되어주고 싶소. 가거든 잘들 지내시오. 내일 새벽에 올 터이니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시오."

늙은 오랑캐가 돌아간 뒤 척은 반신반의하면서 몽석에게 귀띔을 하고 잠이 들었는데 정말로 다음 날 꼭두새벽에 그가 찾아왔다. 식량으로 말린 밥까지 준비해 가지고 와서는 비교적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샛길을 일러주고는 문을 열어주는데 최척 부자는 가슴이 울컥하여 눈물을 쏟았다.

드디어 최척과 몽석은 그의 도움으로 고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들이 고국을 떠난 지 이십 년 뒤였다.

아들과 함께 남쪽 고향으로 내려가던 최척은 등에 종기가 났다. 그러나 한시바삐 아버지를 찾아뵈어야겠다는 일념으로 길을 재촉하느라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그것이 그만 성이 나고 말았다.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아가며 땅거미가 진 뒤 충남 논산에 있는 은진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극렬한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몽석은 길가 한적한 곳에서 빈 움막집을 발견하고는 아버지를 그리로 들이고 살피니 열이 펄펄 끓는 것이 목숨마저도 위태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큰 걱정 속에 의원을 찾아다녀 보았으나 낯선 곳인데다 어두워 찾지 못하고 돌아와 애만 태우고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움막집 앞에 쳐놓은 거적떼기를 들추고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는 신분을 숨기고 도망을 다니던 중국인이었는데 새우잠이라도 자려고 그리고 들어섰다가 최척을 보게 되었다.

"몹시 위험한 지경입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습니까. 잘못 하다간 오늘이 고비가 될 것도 같은데 쯧쯧……."

그는 괴춤에 매단 침통에서 대침을 꺼냈다. 그것을 주먹만한 등창에다 푹 찔러 넣었다. 빼내자 누르스름하고도 불그죽죽한 피고름이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는데 손으로 힘껏 짜낸 뒤에는 제 입으로 빨아내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차츰 열이 내리면서 통증이 가시기 시작하여 척은 모처럼 깊은 잠에 들 수 있었다.

몽석은 그의 발아래 꿇어 엎드려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중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바에는 자기 고향으로 함께 가자고 하자 그 역시도 고마워하며 동행하기로 하였다.

이틀이 지나 나무막대기를 짚고 걸을 수 있게 된 최척은 또 서둘러 고향을 향해 걸음을 놓았다. 마침내 고생고생 끝에 집에 닿고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집안 사람들 모두 뛰어나와 죽은 이가 돌아온 듯 반기는 중에 부자는 서로의 목을 끌어안고 오열을 터뜨렸다.

심 씨는 외딸 옥영을 잃고 나서부터 손자 몽석에게 마음을 붙이고 살아왔었다. 그러나 전장에 끌려나간 손자가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 조선군사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그 날로 이부자리를 깔고 누워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렇게 여러 달이 지난 뒤에 몽석이 제 아비와 함께 돌아오자 심 씨는 사위를 붙들고 딸의 생존 여부부터 확인했다. 딸이 살아있다는 말을 들은 심 씨는 감격하여 말을 잃었다.

그 와중에 몽석이가 문 밖에서 한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 가족들에게 소개를 하였다.

"이 분은 중국인으로 아버지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십니다. 마땅히 머물 곳이 없는지라 제가 모시고 왔으니 여기서 함께 살았으면 합니다."

은인이란 말에 가족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마워하면서 후하게 대접하였다.

저녁상을 물린 뒤 최척이 물었다.

"우리는 이제 이 집에서 함께 살 식구입니다. 적어도 그대의 고향과 이름 그리고 조선에 있게 된 연유 정도는 알아야하지 않겠소이까?"

"저의 성은 진이고 이름은 위경이라 합니다. 그리고 집은……."

최척은 진위경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여 그의 말허리를 자르고 물었다.

"말을 잘라 죄송하오마는 방금 성함이 뭐라 하시었소?"

"진 위경이라 하였습니다. 집은 저장성 북부 전당강 어귀에 있는 항주 용금문 안에 있지요. 1597년에 유(劉) 제독을 따라 종군하여 전라남도 순천에 와서 진을 쳤습니다. 어느 날 적진의 형세를 정탐하던 중 주장(主將)의 뜻과 맞서게 되었는데 주장이 제 목숨을 앗으려 하기에 한밤중에 도망을 쳐서 오늘날 여기 있게 된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듣는 내내 최척은 놀란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며늘아기가 제 아버지 이름이 진위경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 맞아, 틀림없이 그렇게 말하였어.'

"그럼 그대 고향에는 누가 있습니까?"

"집을 떠날 때 아내와 태어난 지 몇 달 안 되는 딸을 두고 왔습니다만 잘 있기나 한지 원……."

중국인은 가족의 얘기를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최척이 내처 물었다.

"그런데 따님의 이름은 무엇인지요?"

"딸아이가 태어나던 날 이웃에서 복숭아를 보내왔기에 아이의 이름을 홍도라고 지었지요. 참 예뻤는데."

거기까지 들은 최척은 가슴이 뛰어 견딜 수가 없었다. 흥분한 상태로 위경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이럴 수가! 세상에 이렇게 기막힐 데가 있을꼬! 그대의 얘기를 듣고 보니 내가 항주에 있을 적에 바로 당신의 옆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려. 그대의 아내는 신해년 구월에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홍도는 이모부인 오봉림이란 분이 데려다 길렀지요. 내가 누군지 아십니까? 내가 그대의 딸을 며느리로 삼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그대와 나는 사돈지간이란 말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뜻하지 않게 사돈과 조우하게 되다니!"

위경 역시 어안이 벙벙해서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다가 급기야 탄식을 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 후에 정신을 가다듬은 위경이 말했다.

"어쨌든 이렇게 사돈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리고 제 딸을 거두어주셔서 고맙고 덕분에 가족의 생사까지도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두 다리 뻗고 잠잘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였다.

"저는 대구로 도망가 있을 적에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났습니다. 박씨 성을 가진 분이었는데 제가 침술을 가진 걸 알고는 그것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도와 주셨지요. 이방인이 물 설고 낯 설은 곳에서 무얼 하겠습니까. 한동안 겪은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도 없지만 이렇게 사돈을 만나고 나니 지금은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마치 제 고향에 있는 듯합니다. 아예 여기로 옮겨와서 살았으면 하는군요."

몽석이가 말했다.

"공(公)께서는 제 아버지를 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제 어머니와 아우까지도 공의 따님에게 의탁하고 있으니 마땅히 한가족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함께 살면 더없이 좋겠지요."

최척도 위경에게 삶터를 옮기라고 하였다. 몽석은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이 생존해 있다는 말을 들은 후로는 날마다 걱정을 하였다. 어떻게 해서든 중국으로 건너가 어머니를 모셔오고 싶었으나 연고도 없고 아직 전쟁이 다 끝난 게 아니라서 안타까워 눈물만 지을 뿐이었다.

 

그 당시 항주에 있던 옥영은 관군이 전멸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녀는 밤낮으로 곡을 하였다. 그러다가 자신도 남편의 뒤를 잇겠다는 각오로 곡기를 끊고 물 한 모금 입에 넣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육금불께서 그녀의 꿈에 나타나 정수리를 어루만지며 말씀하셨다.

"죽으려 하지 말거라. 잘 살아 남는다면 훗날에 좋은 일을 보게 될 것이니라."

옥영은 다음 날 몽선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예전에 내가 왜놈들의 포로가 되었을 때 물에 빠져 죽으려 한 적이 있었단다. 그 때 장육금불께서 꿈에 나타나 죽지 말라는 말씀을 주셨지. 그 신기한 꿈을 꾼 뒤 사 년 만에 안남의 바다 한가운데서 네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더냐. 그런데 이제 네 아버지가 전사한 마당에 더 살아서는 무엇하랴 싶어 죽으려는 마음을 먹었는데 또 그와 같은 꿈을 꾸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장육금불께서 네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암시를 주신 듯하구나."

그 말을 듣고 몽선이 울면서 말했다.

"어머니 다시는 그런 생각 품지 마세요. 아버지는 분명히 살아 계실 거예요. 금불의 꿈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니 믿고 기다리세요."

옥영이 말했다.

"그래 네 말이 옳을 성싶다. 어제 이웃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오랑캐와의 싸움에서 진 조선 군대가 대거 조선 땅으로 도망 내려갔다더구나. 만약에 네 아버지도 살아 있다면 틀림없이 조선 어딘가에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쪽으로 올라오기보다는 조선이 가까웠으니 그리 하셨을 게야. 그래서 나는 결심했단다.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조선에 가기로 말이다. 장육금불께서 훗날 좋은 일이 있을 거라 하셨으니 나는 네 말처럼 그걸 믿고 싶구나. 또 혹시라도 네 아버지가 죽었다 해도 상관없다. 네 아버지가 오매불망하던 조국 조선 땅에서 혼백을 위로해 드린다면 넋인들 더 좋아하지 않겠느냐."

"어머니, 그건 안 될 말씀이십니다. 여기서 조선이 어디라고 거길 간단 말입니까."

"아니다 얘야, 너희들이 도와주기만 한다면 능히 할 수 있단다. 나를 좀 도와주지 않으련?"

"저희들이 무얼 돕는단 말씀이세요?"

"우선 배를 구한 다음 도착할 때까지 먹을 물과 양식을 넉넉히 마련하고 튼튼한 돛과 노, 옷가지들과 추위를 막을 것들을 좀 챙기면 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너희들이 강한 마음을 가지는 일이다. 그러면 우린 문제없이 조선에 닿을 것이야."

몽선이 말했다.

"어머니, 갈대 같은 배로 만리창파를 헤쳐 나간다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바람이나 파도뿐만 아니라 교룡(蛟龍)과도 싸워야 하는데 우리가 아무리 울부짖으며 기도를 올린다고 해도 도처에서 어려움이 닥칠 것입니다. 또 해적선도 있질 않습니까. 우리 모자가 물고기 밥이 된다고 하여도 그것으로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것을 덮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어머니께 그 계획을 접으시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도 한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곁에 앉아 듣고만 있던 홍도가 몽선에게 말했다.

"무턱대고 어머닐 막지만 마세요. 이미 어머님의 마음이 그렇게 굳건히 섰다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졸지에 물불과 해적 떼를 만나게 된다고 해도 말이예요. 저는 어머니의 지혜와 의지를 믿어요."

며느리의 말을 듣고 옥영이 말했다.

"네가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구나. 내가 전에 누차 얘기했다만 나는 물길을 잘 안다. 육지 길과는 달라서 험하기도 하지만 운이 좋아 순풍만 타게 된다면 큰 어려움없이 조선에 갈 수 있지. 옛날에 내가 일본 사람 돈우와 함께 지낼 적에 말이다. 그때는 배를 집삼아 봄에는 중국 땅 복건성과 광동이나 광서지방에서 장사를 하고, 가을이 오면 호주나 천주의 동쪽에 있는 유구라는 곳에 가서 장사를 했지. 그 당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숱하게 겪으며 다녔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또 조수의 흐름에 따라 배를 어찌 다루어야 하는지 따위를 돈우로부터 배웠던 게야. 그러니 우리가 떠나게 된다면 험난한 파도도 내가 맡을 것이요, 노를 저어 나가는 것까지도 다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설혹 운이 나빠서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된다 해도 어떻게든 벗어날 방도야 있지 않겠느냐. 하늘이 결코 우릴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 뒤엔 장육금불이 계신다는 걸 명심하고 힘을 내어라."

옥영은 즉시 며느리에게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옷을 짓게 하였다. 그리고 아들며느리에게 두 나라의 말을 매일 조금씩 가르치면서 틈틈이 경계의 말을 잊지 않았다.

"잘 들어라. 항해하는 데 있어서 돛대와 노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말했으니 잘 알겠지만 내 또 한 번 말해둔다. 돛대와 노는 견고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여라. 게다가 이 지남석을 챙기는 것도 잊지 말아라. 우리가 떠날 날짜는 점을 쳐서 길일을 택할 것인데 그때까지 몸에 탈이 나지 않게 조심하고 마음을 단단히 굳히도록 하여라."

날이 갈수록 근심스러워지기 시작한 몽선은 홍도를 나무랐다.

"어머니께서는 지금 만 번이라도 죽을 각오로 저 일에 매달리고 계시오. 아무리 저러하셔도 아버진 이미 돌아가셨을 텐데 무모한 일에 우리의 일생을 걸 수는 없잖소. 그런데 불 속에 섶을 지고 뛰어드는 격으로 당신마저 찬성을 하고 있으니 나는 속이 터져 죽을 것만 같소."

홍도가 대답했다.

"어머니께서 목숨을 내걸고 온갖 정성을 다 하여 이 일을 성사시키려 애쓰는 마음을 아는 이상 우리가 그 앞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만 두라고 해서 멈출 분이 아니니 그보다는 차라리 우리가 어머니의 계획대로 순순히 따라드려 일을 제대로 도모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저라고 해서 어찌 겁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 아버지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태어난 지 몇 달 만에 아버지는 조선에서 전사하셨습니다. 그 이역 땅에 뼈가 묻힌 채 혼백은 들풀에 얽혀 있을 터인데 저는 자식으로서 하늘을 볼 때마다 부끄러웠습니다. 만약 우리가 무사히 조선에 당도하게 된다면 저는 아버지가 묻혔을 만한 전쟁터를 찾아가서 아버지를 부르며 원없이 거닐어 볼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의 맺힌 한도 풀어질 것만 같아요."

말을 마친 홍도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슬피 우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몽선은 어머니와 아내의 뜻을 더 이상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옥영의 가족은 가산을 모두 정리하고 떠날 준비도 다 마쳤다. 그리고 1620년 경신년 이월 초하룻날에 출항키로 결정을 하고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드디어 출항하는 날이 되었다. 옥영은 몽선 부부에게 또 일렀다.

"몽선아, 조선은 동북쪽에 있으니 우리는 서남풍을 기다려야만 한다. 너는 노를 단단히 잡고서 내 지시를 기다리거라."

그들을 깃대 끝에 깃발을 달고 배 한가운데에 지남석을 놓았다. 그 밖의 다른 것들도 다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지를 또 한번 확인한 뒤에 바로 배를 띄우고 돛을 올렸다. 오랫동안 살아온 마을과 마을사람들의 얼굴이 어른거리는 가운데 배는 쏜살같이 흘러 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바람도 차분하여 뱃길은 순조롭게 열리었다. 게다가 물이 가물거릴 정도로 멀리 나갔을 즈음에는 돌고래 떼가 파도를 일으키며 솟구쳐 오르는가 하면 이름 모를 은빛 고기 떼들이 배 주변을 따라오기도 하고, 물새들이 날아와 뱃고물에 앉기도 하는 거여서 그들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마음으로 항해하였다. 모든 조건이 좋아 배가 유리판 위를 달리듯 하니 어느 새 열흘도 채 안 되어 내주(柰州)를 지났다.

거기서 반나절쯤 더 가니까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들이 마치 작은 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오후에 중국인 배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옥영의 배로 다가오더니 물었다.

"그 배는 처음 보는데 어느 지방의 배며 어디로 가는 길이오?"

옥영이 대답했다.

"나는 항주 사람인데 좋은 차를 사려고 산동으로 가는 중이지요."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지나쳐 갔다.

이틀 뒤에는 깃발로 보아 일본 배로 보이는 것이 멀리서부터 다가오자 긴장을 한 옥영은 즉시 일본옷으로 갈아 입고 기다렸다. 가까이 왔을 때 보니 일본 배가 틀림없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오?"

이에 옥영은 일본말로 대답했다.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왔는데 풍랑을 만나서 표류하다가 배와 노가 모두 부서졌지요. 그래서 항주에서 배를 빌려 돌아가는 중입니다."

"그래요 정말 고생이 많겠군요. 그런데 이 뱃길은 일본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저리 돌아서 남쪽으로 곧장 가도록 하시오."

일본인들은 뱃길을 상세하고 친절히 일러준 뒤 헤어져 갔다.

그런데 그 날 늦은 저녁에 예상치도 못한 마파람이 심하게 불어왔다. 검푸른 파도가 배보다 높이 솟아올랐고 순식간에 안개가 사방으로 번져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배를 뒤흔드는 바람에 돛은 찢어지고 노는 부러져 나갔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뱃길을 헤쳐 나가는데 노련한 재주를 가진 옥영도 그 상황에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몽선 부부는 놀람과 어지럼증에 시달리느라 배 구석에 처박혀 꼼짝 못하는데 옥영은 이리저리 휘둘리는 몸을 세워가면서 홀로 염불을 외웠다. '부처님, 저희에게 갈 길을 인도해 주십시오.'

얼마나 지났을까. 언제 그랬느냐는 듯 풍랑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거의 부서지기 일보 직전에 놓인 배는 새까만 바닷물과 어둠을 삼키며 어디론가 흘러흘러 갔다.

기진맥진한 세 사람은 목표도 없이 떠가는 배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들은 새벽 동이 틀 무렵 어느 작은 섬에 겨우 닿았다. 파손된 배를 고치느라 머물고 있던 어느 날, 기이한 모습을 한 배 한 척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옥영은 몽선 내외를 불러 배 안에 남아있는 물건들을 가리지 말고 자루에 담아 바위 동굴로 옮기게 하였다.

몽선 부부가 서둘러 그것들을 다 옮기고 나서 한숨 돌리려는데 그들의 배는 마치 날아온 듯 섬에 닿았다. 그리곤 그 안에서 시꺼먼 뱃사람들이 쏼라대며 쏟아져 나왔다. 말이나 옷차림으로 보아 그들은 조선인이나 일본인은 아니었다. 아마도 중국 어느 변방의 말 같았는데 병기는 지니지 않았으나 저마다 흰 몽둥이를 쳐들고 수리 중인 옥영의 배에 오르더니 화물(貨物)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옥영이 중국말로 말하였다.

"저는 중국 사람입니다. 고기를 잡으려고  나왔다가 표류하여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뭘 그리 찾으시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 배에는 아무 것도 없습 니다. 표류하는 동안에 다 잃었으니까요."

옥영의 배에서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 그들은 옥영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때리려는 행동을 취했다. 그러더니 해하지는 않고 옥영의 망가진 배를 빼앗아 자기들의 배 뒤꽁무늬에 묶어서 끌고 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나마 망가진 배라고 있을 때에는 살아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배마저 잃자 허탈에 빠진 옥영은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마른 울음을 울뿐이었다.

바위동굴에 숨어 있던 몽선 부부가 뛰어나와서 사시나무 떨 듯 하는 옥영을 끌어안고 위로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우리는 반드시 살아나갈 수 있을 거예요. 이러다가 어머님의 마음이 상해 버린다면 저흰 어떡합니까."

옥영의 눈동자는 다 풀려 있었고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러다가 혼잣말을 하듯 웅얼거렸다.

"저들은 필시 해적들일 게야. 해적들의 거점지가 중국과 조선 사이 어디쯤 있다던데. 그나저나 이꼴이 뭐냐. 내가 아들의 말을 듣지 않고 일을 저질렀다가 이런 낭패를 당하고 말았으니 면목이 없구나. 이젠 배마저도 없으니 어찌해야 좋을꼬. 날아서 바다를 건널까, 댓이파리에 의지할까, 구름뗏목이라도 띄울까 흐흐흐흑……."

바닷가는 순식간에 옥영의 통곡소리로 그득 찼다. 처량한 그 소리는 겹겹이 밀려드는 파도에 휘말렸다 다시 먼바다로 쓸려나가곤 하였는데 갈매기들도 그들의 애통함을 아는지 머리 위에서 빙빙 돌려 오래 머물렀다.

한참을 울어댄 옥영은 벌떡 일어서더니 아들 내외가 말릴 새도 없이 절벽으로 마구 기어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서 바다를 향하여 뛰어내리려 하였으나 급히 뒤쫓아온 몽선의 만류로 주저앉고 말았다.

"얘들아, 나는 죄인이니 말리지 말거라. 자루에 남아 있는 식량으로는 사흘 정도밖엔 못 버틴다. 쓸모 없는 늙은이가 어찌 그 귀한 식량을 축내고 있겠느냐."

"어머니, 우리가 떠나오기 전에 이런 말씀하셨지요? 설혹 불행한 일을 당한다 해도 벗어날 방도가 어찌 없겠느냐고 말입니다. 어머니, 죽는 것은 식량이 다 떨어진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만약 그 사이에 살아날 길이 생기기라도 한다면 그 얼마나 후회막급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제발 다른 생각은 마십시오. 어머니가 정히 그러시겠다면 저희도 같이 죽겠습니다."

옥영은 몽선 부부의 간절한 설득에 자진의 뜻을 접고 부축을 받으며 내려와 바위동굴에서 잠을 이루었다.

어느덧 새벽바다에 해의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곧이어 바다 밑에서부터 솟아오른 거대한 붉은 꽃잎이 서서히 온 세상을 끌어안아 가는 광경을 우두커니 바라보던 옥영은 아들 내외를 돌아보며 조용히 말하였다.

"얘들아, 내가 기진맥진한 채 잠이 들어서 그랬는지 꿈속에서도 마냥 방황을 하지 않았겠느냐. 그런데 장육금불께서 또 모습을 드러내셨구나."

그러자 홍도가 몸을 반쯤 일으키며 물었다.

"이번에는 뭐라 하시던가요?"

"그 분께서는 전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더라. 참 이상도 하시지."

세 사람은 둘러앉아 정성을 다하여 염불을 외며 발원을 하였다

"부처님이시여! 저희를 가엾이 여기시어 구렁에서 구해주소서."

이틀이 지났을 때였다.

부드러운 봄바람을 가르며 큰 돛을 단 배 한 척이 섬 앞을 지나가고 있는 게 보였다. 몽선이 깜짝 놀라 어머니를 불러보게 하였다. 손 차양을 하고서 지켜보던 옥영은 밝게 웃음을 지었다.

"깃발이나 배 모양새로 보아 저것은 조선배가 틀림없다. 우리에게 살 길이 열릴 것 같구나."

그들은 서둘러 조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몽선이 높은 데로 올라가 소리소리 지르며 양팔로 옷가지를 흔들어댔는데 다행히도 그러한 모습이 눈에 띄었는지 그 배는 몸체를 돌려서 그들이 있는 섬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외딴 섬에서 조선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을 수상쩍게 여긴 뱃사람들은 이리저리 살피더니 물었다.

"그대들은 보아하니 조선사람인 듯한데 어찌 이런 외진 섬에서 살고 있는 게요?"

옥영이 앞에 나서서 조선말로 답변을 하였다.

"저희는 본래 경성 사람들인데 나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극심한 풍랑에 배가 뒤집혀 다른 사람들은 다 죽고 우리 셋만 겨우 목숨을 부지했지요. 돛대자리를 부둥켜안고 표류하다가 보니 우연히 이곳에 닿았으나 돌아갈 길이 막막하여 매일같이 울며 지샜는데 부디 살려주십시오."

"이 배는 삼도 수군통제사의 무역선이오. 우리는 관의 일정대로 움직여야 하므로 그대들이 원하는 곳에서 내려줄 수는 없지만 그대들이 이 배에 오르기를 원한다면 태워는 드리리다."

무사히 순천포구에 당도하여 조선 땅을 밟으니 때는 바야흐로 1620년 경신년 사월이었다.

옥영은 조국에 처음으로 발을 디뎌보는 아들 며느리를 데리고 험하디 험한 산길 물길을 건너 대엿새만에 드디어 남원 땅에 들어섰다. 전쟁의 참화를 겪느라 군데군데 폐허가 되어 버리긴 하였지만 그래도 대부분 낯이 익었다. 순간 옛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최척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밤새워 읽던 일이며, 목을 매던 날 밤, 돈우의 인자한 얼굴, 최척의 피리 소리…….

"곧 땅거미가 몰려올 테니 오늘은 만복사로 올라가 잠자리를 청해 보자꾸나."

만복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금교(金橋)가 있어 그리로 갔다. 그러나 금교는 없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노을이 다리를 감싸고 있어 옥영은 거기서 잠시 쉬어가자고 하였다.

쉬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전화(戰火)를 겪었다고는 해도 성곽이 제 모습을 갖추고 있었고 마을의 크고 작은 골목들에도 옛 모습을 남아있어서 그런 대로 마음이 놓였다. 그러다 옥영의 시야에 옛 집이 들어왔다. 그녀는 무언가에 놀란 사람 마냥 몸을 일으키더니 손가락으로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며 아들 부부에게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얘들아 저어기, 저기 좀 보거라. 저기 말이다. 커다란 버드나무랑 감나무들이 서 있는 저 집이 바로 네 아버지와 내가 살던 집이었는데 여태 남아있구나. 우리 대신 누가 들어와서 살고 있는지 몹시 궁금하다. 얘들아, 만복사보다는 저길 가서 하룻밤 머물게 해달라고 청해보는 게 어떻겠느냐."

옥영 일행은 그 집에 도착하였다.

대문이 조금 열려있었다. 옥영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안을 기웃해 보았다. 마당 왼편의 버드나무며 좀 더 안쪽의 감나무들이 예나 다름없이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었는데, 마당 한가운데 놓인 낡은 들마루 위에서 담소를 나누는 두 남자의 등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뜨며 그 남자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옥영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힘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네?"

"얘야, 이게 꿈이냐 생시더냐. 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저기 계시는구나. 세상에."

대문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 달려나온 최척과 그의 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마주보았다. 뜻하지 않게 온 가족을 만나게 된 그들 집안은 일시에 장마당처럼 되어 버렸다. 서로들 끌어안고 통곡했다 웃었다가, 얼굴을 쓸어보고 들여다보고, 그렇게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옥영의 모친 심 씨는 병중에 있었는데 딸 옥영이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는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옥영은 방으로 뛰어들어가 어머니를 품에 안고 그저 어머니가 소생하기만을 빌었다.

최척이 위경을 불러 말하였다.

"사돈, 놀라지 마십시오. 지금 사돈의 따님이 여기 와 있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모두들 마음의 안정을 찾았을 때 홍도는 그간에 겪어온 일들을 가족들 앞에서 소상히 말하였다. 그러자 다시금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그 만남이 마침내 이웃의 이웃들에게까지 사방팔방 알려져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옥영이 최척에게 말하였다.

"오늘날의 이 기쁨은 뭐니뭐니해도 장육금불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크나큰 은혜가 있었으니 가능했지 어찌 우리의 힘만으로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금불상이 훼손되었단 얘기를 들으니 마음 둘 곳을 잃은 듯 허전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그들은 예물을 갖추어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만복사에 가서 기도를 올렸다. 그 후로 그들의 집안은 내내 화목하였고 자손들도 잘 되어 세상의 귀감이 되었다.

 

나는 여러 곳을 떠돌다 남원 땅 주포라는 데서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그때 최척이 가끔씩 나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는데, 어느 날은 자신이 그간에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겨주기를 청하더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나는 최척으로부터 들어온 수많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떠올려가며 가능한 한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심혈을 기울여 기록하였다.

그 해가 천계원년(天啓元年)인 1621년, 광해군 십삼 년 윤(閏) 이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