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몽유록                                        - 작자 미상-

 

 

적멸사에 한 선사(禪師)가 있었는데 이름은 청허(淸虛)라고 했다. 선사는 타고난 성품이 어질었고 자애로웠다. 마음 또한 자비롭고 동정심이 많았다.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입던 옷을 벗어주었고, 굶주린 사람을 보게 되면 먹고 있던 밥도 얼른 건네주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선사를 일컬어 '대한 추위의 봄바람'이라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물동이 속 어두운 밑바닥까지 비춰주는 한낮의 태양'이라 하면서 우러러 받들었다.

이 무렵 국운이 불행해 조선의 하늘과 땅은 호적(胡賊)이 침입해 말발굽 아래 짓밟혔다. 임금은 병난을 피해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고성(孤城)에 갇혔고, 불쌍한 우리 백성들은 태반이 적의 칼과 화살을 맞고 원혼(怨魂)이 되었다. 이런 병란의 참화 속에서도 저 강도(江都)의 참상은 더욱 처절했다. 시혈(屍血)은 냇물처럼 흘렀고, 주검은 산더미처럼 쌓였다. 주검 더미 위에 까마귀 떼가 달라붙어 시신을 쪼아 파먹었으나 강도에는 이를 원망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로지 청허선사만이 이를 불쌍히 여기며 가슴 아파했다.

선사는 주인 없는 시신들을 거두어 묻어주려고 손으로 버들가지를 잡고 강물의 흐름을 따라 날아가듯 강도로 건너갔다. 강도엔 인가가 불타고 허물어져 어디에도 사람이 몸을 의탁할 만한 곳이 없었다. 선사는 연미정 남쪽 기슭에다 풀을 베어 초막을 엮었다. 선사는 이 초막에서 법사(法事)를 베풀었고, 날이 저물면 잠시 불을 지펴 죽이나 밥을 지어 허기를 달랜 뒤 말린 풀 더미 위에 고단한 몸을 뉘었다.

달이 뜨는 날 밤이었다. 휘영청 밝은 달이 연미정 남쪽 기슭을 훤히 밝혀 줄 무렵, 선사는 초막의 잠자리에 홀로 누워 잠을 청하다 비몽사몽간에 한 자리 꿈을 꾸었다.

맑게 갠 하늘빛은 물빛처럼 푸르렀다. 한 자락 근심덩어리 같은 구름은 뭉실뭉실 모여들었다 흩어지고, 구슬픈 울음소리 같은 바람은 끊어지지 않은 채 계속 불어왔다. 야기는 차갑고 싸늘했으며, 왠지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심상치가 않았다.

청허선사는 손에 석장(錫杖)을 들고 달밤을 소요(逍遙)하고 있었다. 밤이 깊어져 바람에 실려 무슨 소리가 들려오는데, 노래 소리 같기도 하고, 웃음 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 소리 같기도 했다. 바람에 실려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오는 그 노래 소리, 웃음 소리, 울음 소리는 모두 부녀들의 목소리였는데 한 곳에서 들려왔다.

선사는 몹시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가까이 다가가 엿보았는데 그곳엔 수많은 사람들이 열을 지어 나란히 서 있었다. 열을 지어 어디론가 가고 있는 행렬 속에는 남자라곤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여자들이었다. 얼굴이 발그레하게 붉은 홍안의 소녀도 있었고, 이미 머리칼과 귀밑머리가 하얗게 물든 노파도 있었다. 또 청운(靑雲)의 젊은 처녀도 있었고, 노인도 아니고 검고 숱이 많은 녹운(綠雲)의 여인으로 보기도 의심스러운, 쪽을 지어 비녀를 꽂은 여인도 있었다. 겉모습을 보고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은 적었다. 모여 있는 여인들은 선후고저(先後高低)의 서열이니 개념 없이 높은 둔덕 위에 어지럽게 모여 앉아 있었다. 푸르스름하고 누르끼리한 그 여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슬프고 비통한 기색이었고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청허선사는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어 좀 더 앞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떤 사람은 두어 발이 넘는 노끈으로 머리를 묶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한 자(尺)가 넘는 칼날이 시뻘건 선지피가 엉긴 채 뼈에 박혀 있었다. 또 뼛골이 참혹하게 분쇄되었는가 하면, 어떤 이는 머리통이 박살나 두뇌가 다 쏟아지고 없는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이는 물을 잔뜩 들이켜 배가 북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이 애처롭고 가슴 아픈 참상을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지경이었고, 붓으로도 낱낱이 기록할 수가 없었다. 한 여자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종묘사직(宗廟社稷)이 전란을 입어 그 참상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아! 하늘이 무심하단 말인가요. 아니면 요괴(妖怪)의 장난인가요. 구태여 그 이유를 따지고 든다면 바로 우리 낭군의 죄이겠지요. 태보(台輔)의 높은 지위며 체부(體副)의 중책을 진 사람이 공론(公論)을 무시한 소치이옵니다. 사사로운 감정에 이끌려 편벽되게 강도(江都)의 중책을 제 자식에게 맡겼지요. 자식 높은 중책을 잊고 밤낮 술과 계집 속에 파묻혀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향락에 빠져 있었으니 장차 닥쳐올 외적의 침입을 가늠이나 했겠습니까? 군무(軍務)에 힘써야 하는 본분마저 까맣게 잊어 버렸으니 어찌 강도의 강줄기가 깊지 않은 걸 알았겠으며, 성첩(城堞)이 높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겠습니까? 이처럼 대사를 그르쳤으니, 죽어 마땅하지요. 오로지 기용하지 말아야 할 제 자식을 기용한 재앙이니 어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감히 제 운명을 탄식할 수 있겠습니까? 원망마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생각하건대, 우둔한 제 자식은 나라를 위해 죽을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또한 천세(千歲)에 길이 남을 오명을 기러기 날아드는 저 바다에다 어떻게 다 씻어버릴 수 있겠어요. 쌓이고 쌓인 원한들이 가슴 속에 가득 차 있어 하루라도 잊을 날이 없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부인이 몸을 끌어당겨 단정히 앉으며 말을 가로챘다.

"낭군은 자기 재주에 감당치도 못할 중책을 맡아 오직 천험(天險)한 지리만 굳게 믿어 군무를 소홀히 했습니다. 이에 밀어닥친 적군을 막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강을 휩쓰는 비바람에 사직이 무너졌고, 한 모퉁이 잔첩(殘堞)처럼 남아 있던 삼군(三軍)이 박살났습니다. 임금님께서 성에서 내려오시어 무릎 꿇고 항복하셨으니 가슴 아픕니다. 만사를 다 그르쳤습니다. 이것이 모두 강도를 지키지 못한 데서 연유한 것입니다. 낭군은 군법에 회부되어 철침 녹로(녹轤)로 목을 잘라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민구(李敏求)는 저의 낭군과 같은 책임을 지고 있었는데, 무슨 충의가 있었다고 의젓이 성명(性命)을 보전하여 제 명대로 다 살았습니까. 또한 도원수 김자점은 해내(海內)에 웅거하고 있었고, 거기다 병권(兵權)까지 장악하고 있었으면서도 한 번도 나가 사우지 않았습니다. 적에게 지레 겁을 집어먹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도망쳐 바위틈에 숨어 구차한 목숨을 보전했습니다. 더욱이 어두운 밤에 임금님을 만나서는 행인처럼 대했답니다. 그래도 병권을 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은총이 더했으니 참으로 가소로운 노릇이지요. 심기원(沈器遠)은 그 기량이 보잘 것 없고 생각이 깊지 못한데도 도성을 사수할 중임을 맡아, 군신간의 의리조차 망각한 채 몰래 제 몸만 빠져나가 환난을 피했습니다. 이처럼 심기원은 나라의 은혜를 저버렸으며, 군율을 몸소 행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임금님의 은총이 깊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제 낭군님만 홀로 죽음을 당했으니 어찌 원통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저의 이 한 목숨도 애석하지 않지만, 불쌍한 늙은 시아버님이 백발 인생에 아들을 잃어 대가 끊어지게 되었으니 이 원통한 정상이야 산 자나 죽은 자나 어찌 다르다 하겠습니까."

이 말이 끝나자마자 또 한 부인이 나섰다. 그 부인은 두 뺨이 발그레하고 탱탱한 젊은 나이었다. 자태 또한 곱고 예뻤다. 앵두 알처럼 붉은 입술을 살짝 벌리고 있었고, 그 눈에는 구슬 같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며 두 뺨을 적시고 있었다. 그 완연한 자태는 마치 서왕모(西王母)가 요지연에 내려선 모습이었고, 3월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한 송이 꽃이나 다름없었다. 월궁항아(月宮姮娥)가 이슬을 가득 머금은 그대로 옥안(玉顔)을 나직이 숙이고 슬픈 회포를 하소연하듯 말했다.

"저는 본래 왕후의 조카딸로 태어나 비단 옷에 둘러싸여 곱게 자랐습니다. 그러다 나이 들어 김씨의 아내가 되었지요. 원앙금침에 파묻혀 향락인들 오죽했겠습니까? 부귀영화를 영원토록 누리려고 했으나 뜻밖의 전란을 당하여 참혹한 가화(家禍)를 입었으니 저같이 박복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 몸 한번 죽고 나면 인세(人世)와는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데 하늘이여! 어찌하면 좋습니까? 더구나 낭군은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풍전 속에 홀로 남아 있고, 거기다 눈마저 멀어 앞을 볼 수 없습니다. 부모 잃은 망극한 슬픔과 간고(艱苦)한 그 형상은 죽은 넋이라도 차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 부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부인이 앉은 자리에서 뛰어나와 품은 뜻을 토해내듯 말을 물고 늘어졌다. 얼굴을 이미 철 지난 꽃잎처럼 시들었고 바싹 말라 있었다. 부인은 하늘이 무너지도록 탄식하다 말을 이었다.

"저는 본시 왕비의 언니이며 이 나라 대신의 아내였습니다.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온 몸이니 오늘과 같은 참혹한 일을 어찌 생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의 일이 한 번 이같이 되니, 내 슬픈 이 죽음도 남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렬(貞烈)로 표창해 저의 죽은 넋을 빛내주고 있었으니, 이것은 불량한 제 자식의 그릇된 처사입니다. 저는 적군이 밀려오기도 전에 제 뜻과는 달리 강권에 못 이겨 칼을 들어 목숨을 끊었으니 어찌 여론이 없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억지 정절을 만들어 정문(旌門)까지 세워놓았으니 그 거짓된 모든 것이 다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또 한 부인이 푸른 눈썹이 돋은 미간을 찡그리고 얼굴을 잠시 숙여 분개해대다 탄식하듯 말했다.

"천분(天分)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 박명한 팔자는 아무래도 피하지 못할 것인가 봅니다. 저는 한 남자의 후처가 되어 청춘을 헛되이 보냈지요. 살아생전에 무슨 낙인들 보았겠어요. 성이 무너져 어지러운 풍우 속에 꽃잎이 흩어지고 옥이 부서진 것은 조금도 애석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낭군이 은대(銀坮)에서 임금님을 가까이 모시며 천은(天恩)을 크게 입었으니, 당대에서 임금님의 총애를 받은 신하를 말한다면 제 낭군이 아니고 그 누가 있겠어요? 임금님께서 굳게 믿으시고 원손(元孫)과 비빈(妃嬪)을 부탁하셨지요. 낭군은 한번 크게 충성심을 발휘하여 큰일을 하려고 나가긴 했습니다. 그러나 제 낭군은 원손과 비빈을 안전하게 피신시키기엔 워낙 그 타고난 재주가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 만족할 만큼 그 책임을 따질 수조차 없습니다. 그런데도 오직 한이 되는 것은 낭군이 한번 싸워보지도 않고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오랑캐 놈들을 받아들여 무릎 꿇고 항복하며 구차한 죽음을 면했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제 낭군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할수록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저승의 염라대왕은 인간의 선과 악을 두루 살피신다고 했는데, 지옥에 들어올 때 사자(使者)에게 이렇게 명령을 전했다고 합디다. '너는 큰 화를 입기 전에 칼을 들어 자결했으니 고왕금래(古往今來)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너의 남편이 임금의 은혜를 잊고 성(城)을 버리고 구차히 생명을 도모했으니 그 죄 진실로 중하도다. 그래서 짐이 네 남편을 지옥으로 던져버려 인간 세상에는 영원히 태어나지 못할 것이다.' 하셨으니, 저의 이 슬픈 회포가 어떠하겠습니까?"

한 부인의 앞섶과 얼굴이 온통 붉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 부인이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다 머리를 조아리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제 시아버님의 죄과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저의 이 슬픔을 어찌 억제할 수 있겠습니까. 제 시아버님은 특별히 천은(天恩)을 입어 강도유수(江都留守)가 되신 분입니다. 강도는 중한 땅이라 마땅히 굳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제 시아버님은 강도의 지형지세가 천연적으로 험하고 요새나 다름없는 점만 허황되게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다 호병(胡兵)의 날카로운 창검을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단잠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또한 매일 크게 취해 강루에 누워 수욕(獸慾)만 채웠답니다. 이러니 국가의 존망을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제 시아버님은 원래 제수(制水)하는 법을 알지 못했고, 또한 험한 풍랑이 이는 날은 배의 판(板 : 방향키)을 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자연히 주사(舟師)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적막한 강성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전선(戰船)만이 잔물결에 흔들릴 뿐이었습니다. 날랜 군사와 험한 천혜의 지리를 가지고서도 인사(人事)를 그르쳤으니 어찌하겠습니까. 강개(慷慨)한 남아(男兒)라고는 오직 강후(姜侯)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강후 그 사람만 일전을 치렀을 뿐이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시아버님! 아버님이 살아서 공훈을 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국은을 저버렸으니 누구를 원망하며 누구를 허물하시겠습니까. 제 비록 한낱 아녀자일망정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옷깃을 여미면서 또 한 부인이 나섰다. 그 부인은 귀밑털이 희끗희끗했고, 아무리 살펴보아도 홍안은 이미 간 곳이 없었다. 부인이 훌쩍거리며 말했다.

"낭군님 살아생전에 이 몸 먼저 죽지 못하고 모진 목숨이 살아 이 난을 당했지요. 아들이 처사를 크게 그르친 까닭으로 인하여 백발에 남은 목숨을 눈 깜짝할 사이에 끊어 버리고, 꽃다운 아이들이 적의 칼에 죽었습니다. 인사(人事)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감히 목숨을 논할 수 있겠어요. 육지의 큰 언덕에서 전란을 피하는 것도 묘법인데 뒤늦게 강도에 들어온 것은 수비하는 군사들의 훈련을 알지 못해서 그러했던가요? 아니면 군무(軍務)를 잘못 검찰해서 그랬던가요?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사람은 장신(張神)이었고, 군무를 검찰하는 사람은 김경징(金慶徵)이었지요. 그런데 종묘사직을 호위하는 그 사람들이 충성심이 적고 호사한 생활로 방탕을 일삼았으니 하늘이 중벌을 내려 나라를 잃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관계가 있다고 마을 경계지역까지 들어와 나로 하여금 나이가 많다고 버리고 가서 천명을 누리지도 못하게 했고, 또 편벽되게 자기 마누라만 구하려다 나조차 깨끗하게 죽지 못하게 했나요? 아! 다행히 낭군이 죽음을 수호하지 않고 나의 삶이 늙음에 이르지 못하게 했으니 이 또한 필연인가 봅니다."

부인이 슬픈 회포를 미처 다 말하기도 전에 또 한 사람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빼어난 풍채(風采)는 여자 중의 장부였다. 그 여장부가 강개한 어투로 말했다.

"사람의 생명이 손가락을 굽혔다 펴는 정도라면 이 세상에 살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일찍 죽든 늦게 죽든 간에 사람들은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면 조용히 죽음에 처할 것이니 세상에 몇 사람이나 남아 있겠습니까? 아! 자결한 부인의 정절만이 이름이 청사에 남고 혼이 천당으로 들어간다면 지하에 있는 인간은 다만 광채만 빛날 뿐입니다. 이것은 죽었어도 죽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장쾌하고도 장쾌한 것입니다. 오로지 한이 가슴에 맺혀 천년토록 못 잊는 설움은 저의 낭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임금님이 마련해준 옷을 입고 임금님이 내려주신 녹으로 밥을 먹으며 대대로 살 수 있을 것입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나라의 은혜가 중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몸이 창황할 때를 맞이해 인사를 생각지 않고 오직 살기만을 좋아하고 죽기를 두려워해서 기꺼이 적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러니 풍채는 매몰되었고 체신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무거운 중택을 등에 짊어진 사람이 그 중책을 망각하고 상투까지 잘라 내 버렸으니, 그 휑한 모습과 꼬락서니가 어떠하였겠습니까? 삶을 도모할 한 가지 계책을 백관들에게 새로 생각해 내도록 하여 정묘년에 화친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때 화친론을 주장하여 고국으로 무사히 살아 돌아온 것에는 진실로 까닭이 있었습니다. 선인(先人)의 유골을 팔아 사함을 받고서야 집으로 돌아왔으니, 일세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에 살아도 그 산 보람이 없습니다. 아! 낭자가 구차하게 살아남은 것이 어찌 비명에 죽어 천당에 오른 나의 경우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꽃 같은 얼굴, 구름 같은 귀밑머리, 시퍼런 원한과 붉은 수심이 가득한 한 부인이 다음을 받았다. 그 부인은 여유 있고 맑고 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천부적으로 요충지인 우리나라는 산천이 아주 가파르고 험합니다. 그런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적병을 맞아 싸우기에 유리한 지역이 어찌 그곳뿐이겠습니까? 낭군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때입니다. 서울에서 큰 난리를 맞으니 주인 없는 아녀자로서 어쩌겠습니까? 어떻게 할 바를 몰라 허둥거리다가 군중을 따라 성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약질로 태어나서 군중들을 따라 걸으면서 엎어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했지요. 그 고생스러움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홀몸으로 울며불며 사정해서 배에 간신히 올라 강도에 들어왔습니다. 강도에 닿고 보니 푸른 바다와 높은 산이며, 성첩이 구름에 닿아 나는 새도 못 지나갈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천혜의 강도에 어지 오랑캐 기마대가 쳐들어 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퍽이나 안심했는데 뜻밖에도 흉도(兇徒)들이 여기까지 밀어닥쳤습니다. 백주 대낮에 강도 성안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위나라 산천이 견고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고, 진나라 군신의 지략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어찌 그 시운(時運)에 있어서 사람의 일을 책망할 수 있겠습니까. 사납고 약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는가 하면, 착한 사람 약한 사람 할 것 없이 함께 망하는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정절의 마음은 이미 드러났고 흉적의 창칼은 무수히 박혔습니다. 그러니 바다 밖의 외로운 넋은 그 누굴 의지하겠습니까. 수국(水國)에 바람과 안개가 몰아친다고 새들과 더불어 높이 날아간다면 끝이 없는 슬픔은 바다처럼 깊어집니다. 비단저고리에 푸른 띠를 두르고 머리털이 서리처럼 하얀 늙은이가 좌우를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두 여자를 가리키는데 한 여자는 며느리요, 또 한 여자는 딸이었습니다. 살아서는 한 집안에서 살았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러니 지하에서나마 혼백이 외롭지 않게 한 무덤에 있으니 다행이긴 하겠지만 어찌 원망인들 없겠습니까? 며느리와 딸은 꽃 같은 젊은 나이였습니다. 내 비록 노년에 접어들긴 했으나 이제 겨우 오십입니다. 만약 병화가 없었다면 어찌 이 나이에 인간세계를 하직했겠습니까.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낭군은 지휘관의 몸으로 강도에 들어왔습니다. 강도란 땅은 능히 적을 막을 만한데 일가가 모두 다 죽게 된 것은 낭군이 처사를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시체에서 흘러내린 피는 우거진 풀잎을 붉게 물들였고, 혼백은 구천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인간세상은 가는 곳마다 비단장막이 쓸쓸하고, 천년 묵은 무덤 옆 한 쌍의 돌기둥에는 외로운 학이 돌아오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한(恨)은 동해보다 깊어 하루 한시라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 세 사람은 다 같이 정절을 지켜 죽었으니, 우러러 하늘을 보고 굽어 땅을 보아도 어느 것 하나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인간세계에 살아남아 영영 빛을 잃은 자는 가엾은 내 동생입니다. 명관(명관)의 아내 되어 정절을 지켜 죽지 못했으니 참으로 한이 됩니다. 머리 허옇게 변한 늘그막에 추하게 들려오는 그 말들을 어찌 해야 합니까. 비단옷 차려 입고 나귀 등에 올라앉아 채찍을 휘두르며 봄바람 살랑거리는 낙조 비낀 언덕을 질주하니 사람마다 쑥덕쑥덕 온 세상이 들썩거렸습니다. 이러니 제 동생은 살아 있어도 죽은 것과 같지 못하며, 이 몸 또한 무안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중략]

 

좌중에 또 한 부인이 있었는데 화월(花月)과 같은 용모와 송백(松柏)과 같은 절개는 추상처럼 싸늘했다. 그 부인은 세 치 혀끝으로 토해내는 말마다 의리에 사무쳐 지금까지 말한 중에서 단연 으뜸이었다.

"나라에 어진 장수가 없는데다 인심까지 험악해졌습니다. 그러고야 어찌 나라가 패망하지 않겠습니까. 산천이 험하기론 파촉(巴蜀)보다 더합니다. 그러나 장수가 장수답지 못하고 군사는 군사답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동예가 한번 일어나니 촉(蜀)의 후주(後主) 유선(劉禪)이 눈물을 뿌렸습니다. 성이 높고 물이 깊기로는 백제의 웅도(雄都)와 같았습니다. 지세는 이러했는데도 불구하고 백마강은 이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이러니 망하는 건 천운이요, 빛나는 건 낭군이요, 패하는 건 사람입니다.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금성(金城)도 견고하지 못하며 탕지(湯池)도 험할 것이 못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저 강도(江都)는 해외의 조그만 땅입니다. 파촉에 비한다면 산도 산이라 할 것이 없고, 백제에 비한다면 강도 강이라 할 것이 못 됩니다. 이런 산과 이런 강을 험하다고 믿고 적의 무서운 군사를 하찮게 여겼으니 환난이 닥쳐와도 그 누가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루아침의 비바람에 모든 꽃이 산산이 흩어지니 이 연약한 몸으로 어찌 목숨을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미련 없이 자결하여 혼백은 구천에 들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 향기로운 이름과 명예가 없었겠습니까. 염라대왕이 저를 불러 말했습니다.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청풍처럼 쇄락하고, 추상처럼 늠름하도다. 뇌성벽력을 피하지 않았으며, 도끼도 두려워하지 않았도다. 갑자년의 변고에는 원훈(元勳)들의 목을 밸 것을 주장했고, 정묘년의 난리에는 화의(和議)를 배척하여 강도를 불태우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을 술책을 일렀고, 대의명분을 세워 형제의 맹약을 헌신짝처럼 하니 지극한 충성이요 선견지명이로다. 주운(住雲) 같은 곧은 절개며 급암(汲黯) 같은 바른 말은 이 사람 이외에 그 누가 또 있단 말인가. 이는 바로 너의 아비로다. 너 또한 그 뜻, 그 절개를 본받아 절의로 죽었으니 가히 포상치 않을 수 없도다. 그래서 극락세계에서 편안히 지내게 하겠노라.' 했습니다. 이윽고 선동(仙童)이 명부(冥府)로 들어와 염왕께 아뢰기를, '전쟁의 사나운 풍파 속에서도 절의로 죽은 사람이 많사옵니다.' 하고 말하자 옥황상제께옵서 측은히 여기시어 전교(傳敎)하시기를, '절부(節婦)의 기록 대장을 짐이 한번 보고자 하니 너는 어김없이 명대로 하라.' 하고 일렀습니다. 염왕이 친히 옥첩(玉牒)을 봉하여 천부(天府)에 올리니 상제께서 다 보시고 명부에 조서를 내리시기를 '짐이 가장 중히 여기는 것은 의(義)이며 또한 귀히 여기는 것은 절개로다. 이 의와 절개를 능히 지키고 행한 사람은 모두 천당에 들어오게 하여 그 여생을 편안하게 하리라. 더구나 그대와 시아버지의 덕망과 절의는 짐이 가장 아끼는 것이로다. 장차 포상할 것이니 명부에 두지 말고 옥허청궁(玉虛淸宮) 소계전(宵桂殿)에 보내어 월궁항아와 더불어 달밤을 즐기며, 직녀와 더불어 은하를 거닐게 하고, 또한 염왕이 정절을 창명(彰明)하면 짐의 의열(義烈)을 존숭함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하고 일렀습니다. 염왕이 그 명령에 절하여 사례하고 저를 학의 등에 태우고서 구만리 창공을 지척같이 날아갔습니다. 정말 시아버지의 덕이 아니었다면 천부(天府)에서 신선들과 노닐며 생활할 것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또 한 부인이 나섰다. 난초 같은 그윽한 기품과 고요한 자태가 눈 속의 송죽 같았다. 양 미간을 찌푸리고 붉은 입술을 열어 말했다.

"저는 본래 선비의 아내입니다. 낭군을 섬겨온 지 겨우 반년 만에 강도로 도피하여 들어왔습니다. 바람이 불고 달이 떠올랐을 때 적이 성문까지 쳐들어 왔습니다. 그때 제 낭군이 덜컥 역질에 걸렸습니다. 그렇게 위험이 닥쳐와도 저는 잠시도 남편이 누운 병상을 떠날 수가 없어 그냥 곁에서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수 같은 오랑캐 놈들이 어찌 사람은 절의로 산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그래서 저의 몸은 썩어서 뼛골만 강도에 남아 있고, 혼백은 구천에 떨어졌습니다. 이때 염라대왕이 이르시기를, '광해군 말년에 조정이 혼탁하여 임금과 신하가 제 직분을 망각하고 광분하였도다. 오직 네 할아비는 지조가 고결하여 이 모두 취한 속에서도 홀로 깨어 있었도다. 또한 강도의 풍우 속에 모두들 절개를 버리고 삶을 도모했지만, 너는 여자의 몸으로 그 오랑캐 놈들로부터 욕을 보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죽음을 달게 받았도다. 전후 할아비와 손녀의 절개가 어찌 따르겠는가? 그 할아비에 그 손녀로다. 참으로 아름답고 아름답도다. 그러므로 너는 천당에 들어가서 만세토록 길이 행복을 누리라.' 하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니 비록 젊은 나이에 죽었다고 한들 어찌 한이 되겠습니까. 다만 한스런 것은 백발의 양친과 젊은 낭군이 어육을 면하며 전쟁의 풍진 속에 간신히 살아남은 것입니다. 처량하게 거문고와 비파를 타면서 애끊듯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니, 오동나무 잎에 가는 비 내리고 동풍에 꽃이 떨어지는 날은 이별의 눈물이 언제나 마를지, 이별의 한을 두 배로 더해 가는 군요. 그러니 부모를 잊고 자결한 것은 불효라고 이를 만하고, 낭군을 속인 것도 어질지 못한 것이니 아, 저의 죄와 한을 어찌 다 말하겠습니까?"

아 자리에 가득한 부녀자들이 제각기 가슴에 품은 자기의 생각을 말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어떤 이는 깊이 탄식했고, 어떤 이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고, 또 어떤 이는 대성통곡하기도 했다. 그렇게 탄식하고 오열하고 통곡하는 부녀자들의 모습을 글로써 빠짐없이 적을 수가 없었다.

조금 시간이 흘렀다. 한 여자가 일어나 사람 속을 왔다 갔다 했다. 그 여자는 두 눈동자가 샛별같이 유난히 빛났고, 초승달 같은 눈썹이며 삼단 같은 머리는 가히 선녀 같았다. 선사는 매우 이상히 여기며 말 대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직녀가 은하에서 내려왔는가? 월궁에서 항아가 내려왔는가? 만약 직녀라 한다면 견우 낭군을 이별한 뒤에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슬픔에 싸여 눈물을 흘릴 것이다. 또 월궁의 항아라면 긴긴 밤 독수공방에서 애타게 그리워하다가 홍안은 늙어가고 백발이 성성할 터인데, 도무지 이 여자는 복사꽃처럼 홍조가 아롱진 근심어린 빛이 전혀 없으니 알지 못할 일이로다. 그것 또한 괴이한 일이로구나.'

선사는 혼자 온갖 궁리를 다해 보았으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때 그 여자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첩은 기생입니다. 저는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추어 널리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청조는 멀리까지 소식을 전파하고, 물결처럼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들은 소식을 전해주니, 곳곳의 사내들은 사랑의 향기를 훔치려고 밤마다 양대(陽臺)로 몰려들었습니다. 저는 양대에서 밤마다 운우지정(雲雨之情)을 즐기며 인생 환락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그러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사람에게 귀한 것은 정절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마음을 가다듬고, 깊은 규중에 틀어박혀 오래도록 한 남편을 섬겨 다시는 두 마음을 먹지 않으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난리가 일어나 꽃 같은 청춘이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오늘 밤 이 고귀한 분들만 모이는 회합에 저 같은 여자가 낀다는 것은 실로 너무나 과분합니다. 외람되게도 숭렬(崇烈)하신 여러분들 곁에 끼어 앉아 다행스럽게도 좋은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 절의의 높으심과 정렬(貞烈)의 아름다움은 하늘도 반드시 감동하고 사람마다 탄복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몸은 비록 죽었으나 그것은 죽은 것이 아니니 어찌 한이 있겠습니까? 강도가 함락되고, 남한산성의 위태로움이 급박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임금님의 욕되심이 어떠하셨겠습니까? 나라의 부끄러움이 촌음을 다투며 길어 가는데, 충신절사는 만에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늠렬(凜烈)한 정절은 오직 부녀자들만 지니고 있었으니, 이는 참으로 영광스런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렇게 시름에 겨운 모습으로 서러워하고 계십니까?"

이 말이 끝나자마자, 좌중의 여러 부인들이 일시에 통곡했다. 그 통곡 소리는 참담하기 그지없었고 차마 들을 수 없었다.

선사는 혹시나 부인들이 알아차릴까 두려워 숲속에 숨어서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날이 밝아지기를 기다려 물러나오다 별안간 놀라 일어나 깨어보니 한마당의 꿈이었다.

*출전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