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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울전 - 작자 미상 -
화설(話說) 대원(大元) 지정말(至正末)에 장원이라 하는 자 있었는데, 벼슬이 겨우 한원(翰苑)에 있더니 원나라가 망하고 대명(大明)이 중흥하매 시절을 염려하여 태안주(泰安州)의 이릉산에 숨어 살았는데, 하루는 장공이 일몽(一夢)을 얻으매, 남전산(藍田山)의 신령이 이르시되, "시운(時運)이 불리하여 조만간에 큰 화(禍)가 있을 것이니 바삐 떠나라." "소자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사오니 부인은 구하여 주소서." "선동의 급한 일은 무슨 일이며 우리 어찌 구하라 하느뇨?" 동자는 발을 구르며, "소자는 동해 용왕의 셋째 아들이러니 남해왕이 되어 부부가 친영(親迎)하여 오다가 동해 호상(湖上)에서 남섬진주 요괴를 만나 용녀(龍女)를 앗아가려 함에 둘이 합력하여 싸우다가 용녀는 힘이 진(盡)하여 죽고 소자 또한 어린 연고로 신통을 부리지 못하여 달아날새, 미처 수부(水府)로 들지 못하고 인세(人世)에 멀리 나오매 기력이 진하여 다시 달아날 곳이 없는지라. 바라건대 부인은 잠깐 입을 벌리시면 몸을 피하고 후세에 은혜를 갚으리이다." 이즈음 공이 사속(嗣續)이 없어 매양 슬퍼하더니, 일일은 꿈 하나를 얻으매 문득 천지가 혼흑(昏黑)하며 구름 속으로부터 청룡이 내려와 인갑(鱗甲)을 벗고 변하여 선비가 되어 앞에 나와 이르되, "자식의 급한 것을 구하여 주시니 은혜 난망(難忘)이라. 능히 갚을 바를 알지 못하더니 이에 옥제(玉帝)께서 조회를 받으시고 천상천하의 원굴(寃屈)한 것을 살피실새, 남해 용왕의 필녀(畢女)는 나의 며느리인데, 저들이 신혼(新婚)하여 오다가 요괴에게 죽고 원혼이 옥제께 발원하였더니 옥제 금광으로 하여금 '쾌히 보응케 하라.'하실새, '용자(龍子)도 인세(人世)에 내어 보내어 미진한 인연을 다하라.' 하시니 내 금광에게 청하여 그대 집에 정하였노라." 호사다마(好事多魔)는 고금(古今)의 상사(常事)라. 이때 천자가 하늘에서 명을 받으시니 해내(海內)가 안정치 못하여 혹은 위왕이라 하고 혹은 국왕이라 칭하며 남서로 노략하니 일경(一境)이 진동하여 피란하는 자 무수하였는데 장공이 그 가운데 섞이어 피난할 제 추병(追兵)이 정히 위급한지라, 부부 서로 해룡을 둘러업고 달아나더니 운이 다하매 부인이 울며 말하기를, "아이를 보전코자 할진대 우리가 다 죽을 것이니 상공은 우리 모자를 잠깐 버리시고 피난하였다가 모자의 해골이나 거두어 주십시오." "해룡을 버리고 가자." "우리 잠깐 다녀 올 것이니 실과를 먹고 앉아 있으라." "쉬 오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잃고 우는 것을 무슨 죄가 있다고 죽이려 하느뇨?" '내 위세(威勢)에 핍박(逼迫)하여 군오(軍伍)에 몰입하였으니 어찌 본심이리오. 또 이 아이의 상을 보니 귀히 될 기상이라. 이때를 타 달아나리라.' 이때 장 처사 부부가 도망치다가 도로가 고요함을 보고 산에 올라 바라보니 해룡이 이미 없어졌으매 사면으로 찾되 종적이 묘연하여 부인은 가슴을 치고 방성(放聲) 대곡(大哭)하기를, "해룡을 아주 잃을 줄 알았더면 무슨 표시라도 했었다가 훗날 만날 때에 보람이 될 것을 창졸간(倉卒間)에 생각지 못하고 그냥들 도망해 왔으니 어디서 만나본들 알 수 있으랴." "아이는 등에 붉은 사마귀 칠성이 있으매 그것으로 신물이 될 것이니 부인은 염려 마소." 조계촌에 김삼랑이라는 사람이 있으니 호협 방탕(작은 일에 거리낌이 없고, 주색잡기에 빠져 행실이 좋지 못함)하고 그의 처 막씨의 얼굴이 곱지 못하므로 조가의 여자를 맞이하여 집에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곳 백성이 되니 막씨는 조금도 슬퍼함이 없고 늙은 어미를 지성으로 봉양할 때 집안이 가난하므로 남의 고공(시비, 계집종)이 되어 조석을 나누어 먹더라. 그의 어머니가 우연히 죽으매 막씨는 주야로 애통하고 예로써 선산에 안장한 후 여막(무덤 가까이에 지어 놓고 상제가 거처하는 초막)을 짓고 주야로 수직하여(맡아서 지켜) 삼 년(삼년상)을 극진히 마친 후 십여 년을 한결같이 지내더니 천고에 드문 효부더라. 막씨가 초막(풀이나 짚으로 지붕을 이어 조그마하게 지은 막집)에서 한 꿈을 얻으니 몸이 공중에 올라 한곳에 이르니 산천이 수려하여 짐짓 아름다운 세계라. 막씨가 한번 두루 돌아보니 학발 노옹(머리가 학처럼 하얗게 센 노인)이 사방을 옹하여 앉았으니 막씨 감히 나가지 못하고 주저하더니 한 동자가 나와 말하기를 "우리 사부께서 옥제(옥황상제, 도교사상)의 명을 받자와 그대에게 전할 것이니 바삐 나아가 뵈오라." "그대의 대절(大節, 크게 빛나는 절개)과 지효(至孝, 지극한 효성)를 옥황상제께서 아시고 극진히 표창하라 하시매 자식을 점지코저 하였더니 그대의 남편이 난중에 죽었다 하는지라 하릴없이 옥황상제께 이 사연을 아뢴즉 또 하교하사 그러면 좋을 대로 하라 하시기로 마침 남해 용녀와 동해 용자가 일찍이 횡사하여(뜻밖의 재앙으로 죽어) 옥제께 보수하기를 발원하였은즉 옥제가 우리로 하여금 선처하라 하시기로 용자는 마침 좋은 곳이 있어 구처하였으되(거처할 곳을 마련하였으나 = 인간으로 태어남) 용녀의 거처를 정하지 못하였더니(용녀가 아직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했음-막씨의 딸이 될 것임을 암시) 이제 그대에게 주나니 십육 년 후에 그 얼굴을 보리니 이제 자세히 보았다가 후일 의심이 없게 하라." 홍의(紅衣)를 입은 선관이 이르되, "나는 차지할 것이 없으니 너로 하여금 춘하추동을 임의로 보내게 하리라." "십육 년 후에 찾을 때가 있을 것이니 도로 보내라." "이것을 가지면 천리라도 하루에 갈 것이니 쓰고 능히 전하라." "이것을 가지면 바람과 안개를 부리나니 이후에 찾거든 전하라." "나는 줄 것이 없으니 힘을 주리라." "막씨의 표창(表彰)은 어찌 하였으며 용녀의 보응(報應)을 어찌하고자 하였느뇨?" 선관이 대답하기를, "여차여차 점지하였노라." 그 황의 선관이 눈썹을 찡그리며, "그리하면 이름 없는 자식이 될 것이요 효부의 바라는 바 아니라. 여차여차 하였으면 하늘의 뜻을 세상이 알 것이오. 모녀 간의 윤기(倫紀)를 알리라." 무료히(부끄럽고 일없이) 돌아올 때 홀연히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 한바탕 헛된 꿈)이라.(남편이 없기 때문에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것은 헛된 일이라 생각함.) 몽사(꿈에 나타난 일)를 기록할 때 삼랑이 죽은 줄 알고 허위(시신 없이 위패만 모신 자리)를 배설하고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더라. 막씨가 하루는 슬픔을 머금고 앉아 있을 때 홀연히 일진음풍(한바탕 몰아치는 음산한 바람)이 일어나며 초막 앞에 한 사람(죽었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서 있거늘 막씨가 자세히 보니 그가 곧 삼랑이라 놀라며 묻기를, "장부 나를 버리고 간 지가 거의 수십 년이라. 간 곳을 몰라 이러하였더니 신령이 이르기를 난중에 죽었다 하매 몽사를 얻을 것이 아니로되 내 역력히 들은 고로 이에 영연(귀신의 위패를 모신 자리)을 배설하였더니 알지 못할 게라. 살아서 오시는가. 어찌 이 깊은 밤에 거취가 분명하지 못함은 어쩐 일이닛고?(삼랑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님을 나타냄) 신랑이 목을 매어 하는 말이, "내 과연 그대 뜻을 모르고 탕자(방탕한 사나이)의 마음을 걷잡지 못하여 그릇 그대의 대절을 모르고 박대하여 그 죄 천앙(하늘의 재앙)을 받아 과연 난중에 죽으매 후세에 가도 또한 죄인이라. 비록 깨달으나 미치지 못하고 귀신의 류에도 참예치(속하지) 못하고 음풍(음산하고 싸늘한 바람)이 되어 다니더니 그대 나를 위하여 영향(길이 접대함, 제사를 잘 지냄)이 지극하니 어찌 부끄럽지 아니하리오. 비록 유명(이승과 저승)이 다르나 그 감격함을 사례코자 하노라."
막씨는 이것을 보고 크게 놀라며 괴이히 여기고 신통히 여겨 손으로 누르되 터지지 아니하고, 돌에 깨어지지 아니하거늘, 다시 집어다가 멀리 버리고 돌아오니 방울이 굴러 따라오는지라. 더욱 신기하여 집어다가 깊은 물에 던지고 돌아오니 또 따라오는지라. 또 다시 집어다 단단히 넣으니 물 위에 둥둥 떠다니다가 막씨를 보고 또 따라오는지라. 막씨가 내심으로 헤아리되, "내 팔자가 기구하여 이 같은 괴물을 만나 후일에 반드시 큰일이 나리로다." 하루는 막씨가 한데서 방아질을 하여 주고 저녁에 돌아오매, 방울이 굴러 막씨께로 내달아 반기는 듯하니, 막씨가 추위를 견디지 못하여 방속으로 들어가니 그 속이 덥고 방울이 빛을 내니 밝기가 흡사하더라. 막씨가 기이히 여겨 남이 알까 걱정하여 낮이면 여막 속에 두고 밤이면 품속에서 재우더니 방울이 점점 자라매 산에 오르기를 평지같이 하고 마른 데 진 데 없이 굴러 다니되 흙이 몸에 묻지 아니하더라. 이러구러 자연히 오래되매 빛이 더욱 찬란하고 부드러워 사람들이 자연히 알고 와서 구경코자 하여 문이 메어 들어와 집어 보거늘, 혹 남자가 집으려면 땅에 박히고 떨어지지 아니할 뿐 아니라 그 몸이 마치 불 같아서 손을 댈 길이 없었고, 더욱이 신통히 여기어 마침내 집어 보는 이가 없더라. 동리에 사는 무손이라는 사람이 있어 가산이 부유하되 무지한 욕심과 불칙한 거동이 인륜(人倫)에 벗어난 놈이라. 막씨의 방울을 도적하려고 막씨가 자는 틈을 타서 가만히 방울을 훔쳐서 집에 가지고 돌아가 처자에게 자랑하고 감추었더니 그날 밤에 난데없는 불이 나서 온 집안을 둘렀는데, 무손이 크게 놀라 미처 옷을 입지 못하고 발가벗은 채 내다보니 불꽃이 충천하고 바람은 불을 돕는지라. 당황하여 어찌할 길 없어서 재물과 세간을 다 재로 만들더라. 무손의 부처는 실성하여 통곡하며 그 중에서도 방울을 잊지 못하여 불붙는 곳에서 가재를 헤치고 방울을 찾더니 재 속으로부터 방울이 뛰어 내달아 무손 처의 치마에 싸이거늘 그것을 집어내더라. 그날 밤에 또 추위를 견디지 못해 하니 무손이 말하기를, "이 같은 더위에 추워하느뇨?" 이 방울이 전에는 그리 덥더니 오늘은 차갑기가 어름 같아서 아무리 떼이려 하여도 살에 박인 듯하여서 떨어지지 않는다 하거늘, 무손이 내달아 잡아 떼려고 손을 대고자 하니 더욱 불이 성하는 듯하여 손을 대지 못하고 그 처를 꾸짖어 말하기를, "방울이 끓는 듯한데 어찌 차다고 하느냐?" "우리 무상하여 하늘이 내신 보물을 모르고 도적하여 왔더니 도리어 이 지경을 당하니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리오." "소인이 잡으려고 한즉 이리 미끈 저리 미끈하여 잡지 못하고 왔사옵니다." "이 보검은 천하무당(天下無當)인지라, 사람을 베이되 칼날에 피도 묻지 아니하니 이 칼로 베일지니라." "오늘 이 물건을 보니 하늘이 내신 것이라. 막씨를 방면하고 후일을 보심이 좋을까 하나이다." 지현이 냉소하되, "요물(妖物)이 신통하다 하나 어찌 저만한 것을 제어치 못해서 근심하리요." 부인이 재삼 말하되 곧이 듣지 않고 이 날 밤에 자더니, 방울이 가마에 들었다가 밤이 된 후에야 가마를 뚫고 나와 바로 상방 아궁이로 들어가니라. 전날 밤에 공이 자다가 크게 소리지르며 일어나거늘 부인이 놀라 붙들고 묻되, "상공은 어찌 이러시나뇨?" 공이 말하되, "자리가 더웁기 불같으며 데어 벗어질 듯하다." "방울이 옥문 밑을 뚫고 출입하며, 혹 실과도 물고 들어가기로 문틈으로 살펴본즉 오색 채운이 옥중에 둘러 있기로 사람은 볼 길이 없더이다." 이때 공이 뇌양에 온 후로 몸이 편안하나 주야로 해룡을 생각하며 부인과 더불어 슬퍼함을 금치 못하더라. 부인이 이로 인하여 침석에 위독하여 백약이 무효하매 공이 주야로 병석을 떠나지 아니하고 약을 맛보다 권하더니, 하루는 부인이 장공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내 팔자가 기박하여 한낱 자식을 두었다가 난리 속에서 잃고 지금까지 명을 보존함을 요행으로 생전에 만나 볼까 하였더니, 십여 년이 지나도록 사생(死生)과 존망(存亡)을 알지 못하고 병이 몸속에 들어 명이 오늘에 달려 있소이다. 구천에 돌아가도 눈을 감지 못하겠사옵니다. 바라건대 상공은 길이 보중(保重)하옵시고 혹시 해룡을 상봉하여 영광을 보옵소서." "자고 나매 정신이 생생하여졌사옵니다." 금령이 밤이면 품속에 들어 자고, 낮이면 제 집에 가니 친 골육과 같았고, 하루는 금령이 나아가 무엇을 물어다 놓거늘, 공의 부부 괴이히 여겨 보니 한 개의 족자더라. 그 족자에 그렸으되 한 아이가 길가에서 우는데 사면으로 도적이 쫓아오고 부부 양인은 아이를 버리고 가는고로 그 아이가 돌아보는 형상이오, 또 도적 가운데의 한 사람이 그 아이를 업고 촌가로 가는 형상이었으매, 이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이는 분명 우리가 해룡을 버리고 떠나온 형상이라." "비록 그러나 어찌 사생을 알 리 있소?" 사람이 없고 촌 가운데로 들어가는 형상이 생각건대 아무나 기르려고 업어 갔나 하거니와, 금령이 신통하여 우리의 슬퍼함을 보고 저 있는 곳을 알게 함이니 이것 또한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그 족자를 침상에 걸고 슬퍼하지 않을 때가 없더라. 하루는 금령이 홀연히 간 곳이 없으매, 막씨가 울며 불며 공에게 나와 금방울의 간 곳이 없음을 말하니 공의 부부가 크게 놀라 또한 슬퍼해 마지 아니하더라. 그것은 그렇다 해놓고 그때 태조 고황제가 해내(海內)를 진정시켜 놓으니, 그는 치국(治國)의 성군(聖君)이라 세금을 감하여 형벌을 감하시었으며, 이에 백성이 즐거워하여 격양가를 화답하더라. 황후께서 늦게야 따님 한 분을 얻으시니 색덕(色德)이 구비하여 만고 무쌍이었으매, 점점 자라매 효행이 뛰어나고 아름답기 그지없어 재조와 덕망이 겸비하니라. 황제와 황후가 어루만지시며 장중 보옥(掌中寶玉) 같이 애중하시어 궁호(宮號)를 '금선공주'라 이름하니라. 이때가 춘삼월 보름이었고, 황후가 공주와 시녀를 데리시고 월색을 따라 후원에 이르시니, 백화만발하고 월색은 뜰에 가득하여, 달무리 아래 밤이슬은 옷에 젖어들고 자는 새들은 다투어 우는 것이더라. 섬섬옥수(纖纖玉手)를 이끌고 금련보(金蓮步)를 옮겨 서쪽 정원에 오르사 두루 구경하시니, 홀연 서남쪽 땅에서 한 떼의 구름이 일며 광풍이 크게 일어 한 개의 괴이한 물건이 입을 벌리고 달려들매, 모두 엎어져 기절하니 이윽고 구름이 걷히면서 하늘이 명랑하더라. 겨우 정신을 차려 일어나 보니 공주와 시녀들이 간 데 없으므로 대경실색하여 두루 찾으매 형적(形迹)이 없더라. 즉시 상께 고하니 상이 또한 크게 놀라 즉시 어림군(御臨軍)을 조발하사 궁궐 안을 샅샅이 찾으시니, 종적이 묘연하였으매, 황후가 통곡하여 말하기를, "이런 일이 천고(千古)에 또 있으리오." "공주를 찾아 바치는 자 있으면 천하를 반분(半分)하고 부귀영화를 함께 하리라." 일찍이 장삼이 해룡을 업고 달아나 여러 날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그의 아내 변씨가 내달아 반기며, "낭군의 사생을 알지 못하여 주야로 침식(寢食)이 불편하더니, 간밤에 꿈 하나를 얻으니 큰 용을 타고 들어오므로 생각건댄 불행이 있는가 하였더니 오늘날 살아 다시 만날 줄 어이 뜻하였으리오." "이 아이를 어디서 얻어 왔느뇨?" 장삼이 여차여차하여 얻었노라 하니, 변씨가 기꺼워하는 체하나 심중에 과히 반기는 기색이 없더라. 변씨가 늦도록 자식이 없다가 우연히 태기가 있어 십 삭이 되매, 아들을 낳으니 장삼이 크게 기뻐하여 이름을 소룡이라 하였고, 소룡이 점점 자라 칠 세가 되매 크기는 하였으나 어찌 해룡의 늠름한 풍도며 넓은 도량을 따라갈 수 있으리오. 둘이 글을 배우매 해룡은 한 자를 알면 열 자를 깨우치는지라 열 살 미만에 하나의 문장가가 되더라. 장삼은 본시 어진 사람인지라 해룡을 친자식같이 사랑하매 변씨가 매양 시기하여 마지 않으니 장삼이 매양 변씨의 어질지 못함을 한할 뿐이더라. 해룡이 점점 자라 열세 살이 되매 그 영풍(英風) 준모(俊貌)함에 태양이 빛을 잃을 만하며 헌헌(軒軒)한 도량은 창해를 뒤치는 듯하고 맑고 빼어남이 어찌 범용(凡庸)한 아이와 비교하리오. 이때 변씨의 시기하는 마음이 날로 더하여 백 가지로 모해하며 내치려 하되 장삼은 듣지 아니하고 더욱 사랑하여 일시도 떠나지 아니하여 애지중지하니, 이러함으로 해룡은 몸을 보전하여 공순하며 장삼을 지극히 섬기니 이웃과 친척들이 칭찬치 않는 이 없더라. 옛날로부터 영웅이 때를 만나지 못하면 몸이 먼저 곤(困)함은 천금의 상사(常事)라. 장삼이 졸연(猝然) 병을 얻어 백약이 무효하니 생이 지극 지성으로 구호하되 조금도 차도가 없고 점점 날로 더하여, 장삼이 마침내 일어나지 못할 줄 알고(죽을 줄 알고) 해룡의 손을 잡고 눈물지으며, ["내 명은 오늘뿐이라. 어찌 천륜지정(부모 자식 사이의 정)을 속이리오. 내 너를 난중에서 얻음에 기골(기백과 골격)이 비상하거늘 업고 도망하여 문호를 빛낼까 하였더니(해룡을 난리 중에 데려온 목적) 불행히 죽게 되니 어찌 눈을 감으며 너를 잊으리오. 변씨(해룡의 계모)는 어질지 못함에 나 죽은 후에 반드시 너를 해코저 하리니(불행한 장래 암시), 보신지책(자신의 몸을 보전하는 계책)은 네게 있나니 삼가 조심하라. 또한 장복 상소한 혐의를 두지 아니하나니 소룡(변씨의 아들)이 비록 불초하나(어리석으나) 나의 기출(己出)이니 바라건댄 거두어 주면 내 지하에 돌아갈지라도 여한이 없으리라."](장삼의 유언) "내 명은 오늘 뿐이라, 죽은 후에라도 해룡을 각별 애무하여 소룡과 다름없이 대하라." "너는 후일 반드시 귀히 되어 길이 영화를 보리니(해룡이 불행을 극복하고 크게 될 인물임을 예언함), 오늘의 내 마음을 저버리지 말고 나의 뜻을 기억하라." 그러나 해룡은 더욱 공근(恭勤, 공손하고 근면함)하여 조금도 해태(懈怠, 게으름)함이 없으매 자연히 용모가 초췌하고 주림과 추위를 이기지 못하더라. [이때가 한참을 추운 엄동설한이라 변씨는 소룡과 더불어 더운 방에서 자고 해룡은 방아질만 하라 하니, 해룡이 할 수 없어 밤이 새도록 방아질 하니 홑것만 입은 아이가 어찌 기한(飢寒, 굶주리고 헐벗어 배고프고 추움)을 견디리오. 추움을 견디지 못하여 자기 방에 들어가 쉬려 하였으나 설한풍(雪寒風, 차가운 눈바람)은 들이치고 덮을 것은 없는지라.](변씨가 해룡을 학대함) [몸을 옹송그려 엎디었더니, 홀연히 방 속이 밝기가 대낮과 같은지라 여름과 같이 더워 온몸에 땀이 나거늘, 해룡이 한편 놀라고 한편 괴이히 여겨 즉시 일어나 자세히 살펴보니 오히려 동녘이 아직 채 트이지 않았는데 백설이 뜰에 가득하더라. 방앗간에 나아가 보니 밤에 못다 찧은 것이 다 찧어 그릇에 담겨 있거늘, 크게 의심하고 괴이히 여기어 방으로 돌아오니 전과 같이 밝고 더운지라.](전기적 요소가 드러남) 아무리 생각하여도 의심이 없지 못하여 두루 살피니 침상에 이전에 없던 북만한 방울(금방울) 같은 것이 놓였으매, 해룡이 잡으려 한즉 이리 미끈 달아나고 저리 미끈 달아나니, 요리 굴고 저리 굴러 잡히지 아니하는지라, 또한 놀라고 신통히 여겨 자세히 보니 금빛이 방 안에 가득하고 움직일 때마다 향취가 나는지라, 해룡이 생각하매 이것이 반드시 무심치 아니할지라 내 두고 보리라 하여 잠을 좀 늦도록 자매, 이때 변씨 모자가 추워 잠을 잘 수 없어 떨며 앉았다가, 날이 밝으매 나아가 보니 적설이 집을 두루 덮었는데 한풍은 얼굴을 깎는 듯하여 사람의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운지라, 변씨는 생각하되, '해룡이 얼어 죽었으리라.' "참 내 하도 이상하기에 거동을 보자." ["집안 어른이 돌아가시매(장삼의 죽음), 가산이 점점 탕진하여 형편이 없음을 너도 보아 아는 바라, 우리 집의 전장(소유하는 논밭)이 구호동에 있더니 요즘에는 호환(虎患, 호랑이로 말미암은 피해)이 자주 있어 사람을 상하기로, 폐농된 지가 아마 수십 년이 된지라, 이제 그 땅을 다 일구면 너를 장가도 들이고 우리도 또한 네 덕에 좋이 잘 살면 어찌 아니 기쁘리오마는 너를 위지(危地, 위험한 곳 구호동)에 보내면 행여 후회 있을까 저어하노라."](구밀복검, 표리부동) 해룡이 흔연히 허락하고 이에 장기를 걷우어 가지고 가려 하거늘, 변시가 짐짓 말리는 체하니 해룡이 웃고 말하기를,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니 어찌 짐승에게 해를 보리오." "속히 잘 다녀오라." 이때 홀연히 등뒤로부터 금방울이 내달아 한 번씩 받아 버리니 그 범이 소리를 지르고 달아나거늘 방울이 나는 듯이 연하여 받으나, 두 범이 모두 거꾸러지는 것이었으니 해룡이 달려들어 두 범을 죽이고 본즉 방울이 번개같이 굴러다니며 한 시각이 되지 못하여 그 넓은 밭을 다 갈더라. 생이 크게 기특히 여기어 금방울에게 무수히 치사하고 이미 죽은 범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오며 돌아보니, 금령이 간 곳이 없으매 이때에 변씨는 해룡을 구호동에 보내 놓고, "제 어찌 살아 돌아오리오." "네가 무사히 다녀왔구나?" 생이 감사하고 이에 제 방으로 들어가니 방울이 먼저 와서 있더라. 이에 변씨가 소룡과 더불어 죽은 범을 가지고 관가에 들어가니 지현이 보고 크게 놀라, "네, 저런 큰 범을 어디서 잡았느뇨?" 변씨가 대답하되, "마침 호랑이 덫을 놓아 잡아 왔나이다." 지현이 칭찬하고 즉시 돈 십 관을 내어 상금을 주니, 변씨가 받아 가지고 돌아올 때 소룡에게 당부하여 말하기를, "행여나 이런 말은 내지 마라." 이때 생이 잠을 깨어 들어와 보니 변씨와 소룡이 없고, 두루 찾아보니 잡아온 호랑이조차 없어 이에 크게 놀라 두루두루 찾았더라. 길에 왕래하는 사람이 서로 말하되, "어떤 도적이 사람을 벌거벗겨 나무에 높이 달아매었더라." 이때 금령의 신통(神通)이 무량하여 생이 더욱 여름철을 당하면 서늘케 하고 추워하면 덥게 하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없이하여 주니, 생이 마음을 금령에게 붙여 세월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이때 소룡이 나가 놀다가 살인(殺人)하고 들어와서 이르거늘, 변씨가 크게 놀라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날랜 포교들이 풍우같이 달려들어 소룡을 잡아가려 하니 변씨가 소룡을 감추고 이에 내달아 해룡을 가리켜 말하기를, "네가 사람을 쳐서 죽이고 모르는 체하여 허물을 어린 동생에게 미루느뇨?" 해룡이 생각하되, 내가 내어 주면 소룡이 반드시 죽을 것이니 저는 아깝지 아니하나 공의 후사(後嗣)가 그칠까 저어하며 차마 어찌하리오. 내 죽어 혼이라도 양육하던 은혜를 갚고자 하나 공의 임종 시의 유언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이에 내달아 말하기를, "살인한 사람은 곧 나이며, 저 소룡은 애매하다." 해룡이 혼연히 다짐을 두니 이대로 문서를 만들고 큰칼을 씌워 옥에 집어 넣으니, 온몸에 금광이 둘러싸여 있더라. 지현이 보고 괴이히 여기어 밤에 사람으로 하여금, "옥중에 가서 보고 오라." "죄인들이 있는 곳은 어두워 보이지 아니하고 해룡이 있는데는 화광과 같은 것이 비치어 밝으므로 자세히 본즉 해룡이 비록 칼을 쓰고 옥중에 갇혀 있으나 비단 이불을 덮고 자더이다." 지현이 그 거동을 보고 황황하며 형장을 그만 그치라 한즉, 그 아이는 여전히 웃고 노는 것이더라. 지현이 크게 겁내어 의심하며 생이 쓰던 칼을 아주 벗기며 헐하게 가두어 감히 치지 못하고 두었더니 이러구러 수삭(數朔)이 지났으매, 겨울이 되었고 변씨가 해룡의 조석을 이어 주지 아니하여도 조금도 주려하는 빛이 없으매, 하루는 지현이 그 부인과 더불어 아이를 앞에 누이고 자다가 문득 깨어보니 아이가 간 데 없더라. 내외는 깜짝 놀라 사방으로 찾았으나 끝내 종적이 없기로 지현과 부인이 창황 망조(罔措)하여 천지를 부르며 정신 나간 사람같이 되어 방방곡곡에 사람을 놓아 찾더라. 문득 옥졸이 급히 들어와서 고하되, "옥중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나니 가장 괴이히 여기옵니다." 지현이 급히 달려가 아이를 안고 돌아오며 하는 말이, "요인(妖人) 해룡이 극히 흉악무도한 놈이니, 이놈을 묻지 말고 쳐죽이라." 바로 옥중에 나가 보니 아이 또한 해룡에게 안기어 희롱하며 놀거늘 데려왔더니 이로부터 아이가 울며 옥중으로 가자 하더라. 아무리 달래어도 보채며 굳이 옥중으로 가자고 조르니, 견디지 못하여 시녀로 하여금 옥중으로 데리고 가게 하니, 그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웃으며 해룡에게 안기어 노는 것이 아닌가. 해룡의 곁을 잠시도 떨어지지 아니하는지라. 지현이 할 수 없이 생을 방송하여 아이를 보라 하니, 생이 사례하고 그 날로부터 거처할 때 의복과 음식 등을 갖추어 극진히 하더라. 이때 변씨는 해룡이 대살(代殺)은 고사하고 도리어 아중(衙中)에 있어 신임한다는 말을 듣고 놀래어 소룡과 더불어 의논하기를, "해룡이 저렇듯 하였으니 만일 애매히 대살할 뻔한 내용을 다 지현께 이르면 반드시 우리가 죽을 일을 당하리라. 이제는 계교를 내어 이러이러하면 후환을 없이하리라." "이제 들은즉 외숙의 병이 극히 위중하여 명재경각이란 기별이 있으니 마땅히 아니 가지 못할지라. 내 소룡과 더불어 급히 가 볼 것이니 가지 못하겠거든 집에서 자고 우리를 가게 하라." "하늘이 어찌 사람을 내시고 이렇듯 곤욕케 하시는고." 차설, 이때 변씨는 해룡이 반드시 불에 타 죽었으리라하고 본집 터에 와 본즉, 다만 해룡이 있던 방만이 안 타고 벽상에 글이 있더라. 그 글에 서 있으되, "하늘이 해룡을 내시매 명도(命途)가 기구하도다. 난중에 부모를 잃으매 도로에 방황하였도다. 이 집에 인연이 있으매 십여 년이나 양육을 받았도다. 은혜와 정의가 더욱 깊으매 유명이 슬프도다. 은혜를 갚고자 하여 몸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죽을 곳에 보내어 종일 밭을 갈았도다. 두 범을 잡고 살아 돌아옴이여 기꺼워하지 아니하였도다. 살옥(殺獄)에 집어 넣음이여 나의 액화가 다하지 아니함이도다. 불을 놓아 사르매 다행이 죽기를 면하였도다. 이별을 당하매, 눈물이 앞을 가리는도다. 허물을 고치매 훗일에 다시 만나리로다. 전일을 생각하매 잊을 길이 전혀 없도다." 해룡이 홀홀이 집을 떠나가는데 앞에 큰 뫼가 막혔으며, 어디로 향할 줄을 몰라 주저할 즈음에 금령이 굴러갈 길을 인도하더라.(금방울의 신이함. 조력자의 역할) 점점 따라 여러 고개를 넘어갈 때에 층암절벽 사이에 푸른 잔디와 암석이 내를 격하여 바라보이매, 생(해룡)이 바위 위에 앉아 잠깐 쉬더라. 이때 문득 벽력 같은 소리가 진동하며 한곳에 황 같은 터럭이 돋힌 짐승(요괴)이 주홍 같은 입을 벌리고 달려들어 자기를 해하려고 하므로, 생이 급히 피하고자 하더니 금령이 굴러 내달아 막으니(금방울이 해룡을 보호함), 그 짐승이 몸을 흔들며 변하여 아홉 머리를 가진 악귀가 되어 금령을 집어삼키고 들어가는 것이었으니, 생이 이 거동을 보고 낙담하며 말하기를, "이번에는 반드시 금령이 죽었도다."(예전에도 많은 도움을 받고 고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음) "금령을 구하지 않고 이리 방황하느뇨? 급히 구하라." "하늘이 가르치니, 부득이 구하려니와 그러나 빈손뿐이요. 몸에는 쇳조각(무기) 하나 없으니 어이 대적하리오." 그리하여 힘을 다하여 기어이 들어가니 홀연히 천지가 밝아지고 해와 달이 고요한데 두루 살펴보니 청석돌 비(점판암 비석)에 금자로 새겼으되, '남천산 봉래동'이라 하였고, 구름 같은 석교 위에 만장 폭포가 흐르는 소리 세사(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를 잃어 버릴 만하였고, 그곳을 지나 점점 들어가니 아문을 크게 열고 동중에 주궁패궐(진주나 조개 따위의 보물로 호화찬란하게 꾸민 대궐)이 하늘과 땅에 닿아 삼광요내성 외곽이 은은히 뵈이거늘, 자세히 본즉 문 위로 금자로 썼으되 금선수부라 하니라. 원래 금제는 천지개벽 후에 일월 정기로 생겨나서 득도하여 신통이 거룩하고 재주가 무쌍한지라. 생이 문 밖에서 주저하여 감히 들어가지 못하더니, 이윽고 안으로부터 여러 계집들이 나오는데 색태가 아름답고 시골에 묻힌 계집과 판이하거늘 생이 급히 피할 때, 몸을 풀포기에 숨기고 동정을 살피니, 이윽고 사오 명의 계집이 피 묻은 옷을 광주리에 담아 이고 서로 손을 이끌고 나와 시냇가에 이르러 옷을 물에 빨며 근심이 가득하여 서로 말하기를, "우리 대왕(요괴)이 전일에는 용력(씩씩한 힘)이 절인하고(남보다 아주 뛰어나고) 신통이 거룩하여 당해낼 자 없더니 오늘은 나가시더니 홀연 속을 앓고 돌아와 피를 무수히 토하고 기절하니(금방울이 요괴 안에서 계속 배를 찌르고 있기 때문), 그런 신통으로도 이런 병을 얻었으니 곧 나으면 좋으려니와 만일 오래 신고하여(어려운 일을 당하여 몹시 고생하여) 낫지 못하면 우리들의 괴로움을 어디에다 비하리오." "우리 공주 낭랑이 간밤에 한 꿈(암시의 기능)을 얻으니, 하늘에서 한 선관이 내려와 이르시되 '내일 다섯 시에 일위수재(一位秀才, 한 명의 재주가 뛰어난 사람=해룡)가 이곳에 와서 이 악귀를 잡아 없이하고 공주 낭랑을 구하여 돌아갈 터이니 염려 말라 하시고 또 이 사람은 다른 수재가 아니라 동해 용왕의 아들로서 그대와 속세 연분이 있음에 그대가 이렇게 됨이 또한 천수(天數, 하늘의 명령)라 인력으로 못하나니 천명을 부디 어기지 말고 순순이 따르라.' 당부하고 이른 말을 누설치 말라 하시더라. 그러더니 오늘 다섯 시가 되도록 소식이 없으니 그런 꿈도 허사가 아닌가 하노라." "우리(요괴의 시녀들)도 언제나 이곳을 벗어나 고국에 돌아가 부모님을 만나 뵈옵고, 우리도 팔자가 기박하여(사납고 복이 없어) 이처럼 공주 낭랑과 같이 하니 이도 또한 팔자에 매인 천수(天數)인가." "그대들은 놀라지 마라. 내 여기 들어옴이 다른 일이 아니라 악귀를 없애고자 들어왔으니 아무 의심을 두지 말고 그 악귀 있는 곳을 자세히 가리키라." "그대 덕분에 우리들을 살려 내어 공주 낭랑과 모두 살아나서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 어찌 이런 덕택이 있겠습니까?" 생이 이 형상을 보고 사후코자 하나 빈손으로 몸에 촌철(寸鐵, 작고 날카로운 쇠붙이나 무기)이 없어 할 수 없이 방황하는데, 그때 한 미인(금선 공주)이 칠보홍군(여러 가지 패물로 꾸민 다홍 치마)으로 몸도 가볍게 걸어오며, 벽상에 걸린 보검(寶劍, 보배로운 칼)을 가져다가 급히 생에게 주는 것이매, 생이 즉시 그 보검을 받아 들고 달려들어 그 요귀의 가슴을 무수히 찌르고 보니, 금 터럭 돋힌 염(수염)이 부르돋고(우뚝하고 굳세게 돋고) 그 짐승은 여러 천년을 산중에 있어 듣도하였기로 사람의 형용을 쓰고 변화무쌍한 조화를 부리던 터이라, 이에 가슴을 헤치고 본즉 문득 금령이 굴러 나오니, 생이 보고 크게 반기며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너희 수십 명이 필경 다 요귀로 변하여 사람을 속임이 아니냐?" "우리들은 하나도 요괴가 아니오. 우리 팔자가 기구하여 그릇 이놈의 요괴에게 잡히어 와서 험악한 욕을 보고 수하에 있어 사환이 되어 이처럼 부지하여 죽도 살도 못하고 어느 때를 만나야 다시 세상을 볼고 하여, 이곳에 어찌할 수 없어 억류되어 있는 급한 목숨들이로소이다. 아까 공자께 보검을 드리던 분이 곧 천자의 외따님이며, 금선 공주 낭랑이로소이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사람의 미인이 나와 채의 홍상(여러가지 빛깔과 무늬가 있는 다홍 치마)을 끌고 옥 같은 얼굴을 가리우고 외면하여 섰으니, 이는 다름 아니요 금선 공주더라. 수색(愁色)을 띠며 사례하여 말하기를, "나는 과연 공주였더니 수 년 전에 모후 낭랑을 모시고 후원에 올라 달 구경하다가 이 요괴에게 잡히어 와서 지금까지 죽지 못하고 살아있음은 시비들이 주야로 수직하여 있는고로 욕을 참고 부지하여 살아 있다가 마침 천행으로 그대의 구하여 주심을 입어 다시 고궁에 돌아가 부왕과 모후를 만나 뵈옵게 하오니 이 은혜는 각골난망이라 무엇으로 갚사오리까. 이제는 금시 죽어도 한이 없사옵니다." "이제 공주 모시고 나아가고 싶은 마음은 시각이 바쁘오나 길이 험하여 발설하기 어려울 것이니, 내 이제 잠깐 나아가 북현(北縣)에 고하고 위의를 갖춰 공주를 모시게 하올 것이니 잠깐만 기다리시옵소서." "그대 간 후에 또 무슨 변괴 있을는지 알 수 없사오니 제발 데려가 주소서." "저 금방울이 천지조화로 되었음에 재주가 무궁하고 신통이 기이하기로, 정히 요괴를 잡고 공주를 구하여 고국에 돌아가게 하였음이 다 금령의 조화로 됨이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가히 구하리니 아무 염려 마시고 잠깐만 기다리시옵소서." '황제가 이제 천하에 반포하나니, 짐이 무덕하여 일찍이 아들이 없고 다만 일위 공주를 슬하에 두고 장중보옥같이 사랑하더니 모월 모일 모야에 난데없는 몹쓸 요괴가 와서 잡아갔나니, 만일 공주를 찾아 바치는 자가 있다면 강산을 나누어 부귀를 한가지로 하고 여년을 동거하리라.' "이곳은 번화한 곳이라 말할 곳이 못 되노라." "이러한 일은 천고에 드물도다." "공자 무사히 돌아와 우리와 더불어 환국하게 하소서." "신이 이런 신고를 당하시게 하옴에 신의 불민 불충이로소이다." 이때 공주 낭랑을 모셔 별당에 머무시게 하고 객사 정결한 곳에 잔치를 배설하고 즐기며 일변 이 사연을 천자께 주문하고 공주와 해룡을 공궤(供饋)할 때 각처에 공궤지절이 성만하여 받아들인 것이 이루 헤아리지 못할 지경이더라. 이때 공주는 금령을 차마 손에 놓지 아니하시고 주야로 안고 길을 재촉하사 경성으로 올라올 때 이십여 명의 여인들도 함께 따라 오더라. 이때 천자와 왕후는 밤 사이에 공주를 잃으시고 주야로 서러워하사 침식을 전폐하고 번뇌하시며 궁금에 쌓여 만사에 경황이 없이 정사를 전혀 잊으시고 노심함을 마지 아니하시더니, 이 기별을 들으시고 도리어 반신반의(半信半疑)하사, 능히 말을 못하시다가 마침 자사의 표문(表文)을 보시고 환천 회지하실 때 만조백관이 궐문 밖에 나와 진하함을 칭하니, 궁내며 궁외와 장안 백성의 환성이 물끓듯하는지라. 상이 치하를 받으신 후 회색이 만연하시어 한편 청주 자사에게 표문을 반포하시고, 한편 철기(鐵騎) 삼천을 조발하여 공주를 보호하라 하시며 친히 가시어 영접하려 하실새, 해룡의 공로는 일세에 드문 바라. 일시가 바쁘시어 이에 어필(御筆)로 쓰시되 장군을 제수하사 공주를 배행하라 하셨더라. 해룡이 올라오다가 노상에서 천사의 조서를 받자와 북향 사배하고 이에 말에 앉아 장군 인수(印綬)를 허리 아래 비껴차고 각읍 수령 등을 거느려 행차하여 오니 위의(威儀)와 범절(凡節)이 빛나고 거룩하여 칭예치 않는 이 없더라. 주야로 배도(倍道)하여 황성에 이르니 성상이 만조를 거느리고 성 밖에 나와 맞아 환궁하실 때 성외 성내 백성들이 길에 가득하여 만세를 부르며 상하 백성이 용약(踊躍)하여 환성이 원근에 진동하더라. 바로 대전에 들으시니 이때 황후는 공주가 돌아옴을 들으시고,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다가 크게 기꺼워하시며 한편 공주를 안으시고 낯을 대하사 통곡하시며, 또한 상께서 도우시는데 공주는 울기를 그치시고 요괴에게 잡혀가서 고초를 무수히 겪던 말이며 몽중에 신선이 내려와서 이르시되, "동해 용왕의 아들이 사람으로 났으니 속세의 연분을 이루라." "하늘이 너 같은 영물을 내사 신통이 거룩하고 재주가 비상하여 또한 요괴를 잡고 공주와 시녀를 구하여 인간에 몹쓸 짐승을 없이하고 짐으로 하여금 잃었던 공주를 다시 만나 천륜이 온전케 하니 이는 다 너의 덕택이라. 이와 같은 후은(厚恩)을 무엇으로 갚으리오?" "경의 공을 논할진댄 태산이 낮고 강과 바다가 얕은지라, 그 갚을 바를 알지 못하노라." "몽사를 의논할진대 이는 공주와 천장배필이라, 경으로 공주를 싫다 말고 공주를 싫다 말고 공주 비록 덕이 없으나 족히 건질 것을 받들 것이니 경은 그리 알라." 해룡이 천은을 입사와 사은 후 물러나와 군을 총독할새, 군기와 군법을 가르치고 연습하며 주야에 게으른 마음을 먹지 아니하고 분주히 국사(國事)를 극진히 살피더니, 어언간 길일이 다다른지라. 위의를 갖추어 권내에 들어가 공주를 맞을 때 삼천 시녀가 공주를 옹위하여 금령을 시립하고 별궁으로 따라올새 향촉을 피우고 부마는 금안장 준마에 금환관 옥홀을 손에 쥐고 어악을 갖추어 큰 길로 돌아오니 풍채가 늠름하여 당세에 기남아요 국가의 동량이라. 도로에서 이를 구경하는 이 칭찬치 않는 이가 없더라. 공주와 부마가 마상에 올라 대좌함에 공주의 색태(色態) 염려(艶麗)함이 일광에 비치어 꽃이 부끄러워할 만하고 월색은 빛을 잃어 어디 한 곳 곱지 않은 곳이 없고 부마의 영월 같은 천장에 강산수기를 품었으니 일대 영웅이오 국가의 희한한 귀공이라 만조백관이 뉘 아니 칭찬하리오. 상이 황후와 더불어 별궁으로 돌아오시니 부마와 공주가 내려와 맞아 대에 오르실새 부마는 천자를 모시고 공주는 황후를 모시고 시좌(侍坐)하였으니 향연(香煙)은 요요하고 패옥(佩玉)은 쟁쟁(錚錚)하여 위의가 염연하고 화기가 애연(靄然)하더라. 다음 날 큰 잔치를 베풀고 만조 제신과 더불어 황극전에서 즐기시고 공중에서는 황후 낭랑이 제대신의 부인들과 더불어 내전에서 즐기시더라. 공주가 교착하시어 진환하는 천상 천하에 수륙 진찬이 갖추지 아니한 것이 없으며 만국의 부인들이 앉았으니 광채가 찬란하여 일색에 비치는지라. 이때 이와 같은 국은(國恩)을 입고 귀히 되었음을 생각하고 부모를 생각하여 영화를 뵈일 곳이 없어 정사를 전혀 다 잊고 공주와 더불어 화락하고 낮이면 천자를 모시고 국사를 다스리매 주야에 잊지 못하고 몸을 다하여 임군 섬기기를 다하더라. 공주가 상께 주달(奏達)하여 전일 요괴에게 잡히어 갔던 여자들을 각각 천금을 주어 제 집으로 보내게 하시니 모두 공주의 덕을 일컫지 않는자가 없더라. 이때 북방의 흉노 천달이 대원을 회복코자 하여 대병 백만과 날랜 장사 천여 명을 거느리고 호각으로 선봉을 삼고 설만춘로 구응사를 삼아 황하를 건너 물밀 듯이 나오니 온 백성들이 어찌할 줄 몰라 하더라. 이때 천달의 대군이 이르는 곳에 군현이 망풍 귀순(望風歸順)하여 수일 내에 삼십육군을 얻고 장구 대진하여 물 들어오듯 하니 북방의 열읍(列邑)이 진동 대란하는지라. 상이 이 기별을 들으시고 대경하사 만조 문무(文武)를 모으시고 의논하실새 문무 백관 중에 한 사람도 응답하는 자 없거늘 상이 탄식하시니 문득 한 사람이 일어나 말하되, "신이 나이 어리고 재주 없으나 원컨대 군사를 주시면 북노를 쓸어 버리고 성은의 만분지 일이라도 갚고자 하옵니다." "짐이 경의 재주와 마음을 알거니와 전장은 사지(死地)라, 흉지에 보내고 짐의 마음이 어찌 편하리오. 황후와 낭랑이 즐겨 허락지 아니하리라." "신이 듣자오니 국난을 당하되 어찌 편히 있으리잇까! 천자를 괘념하여 국가 대사를 그릇하오리까!" 황후가 사연을 들으시고 대경하사 원수를 불러 만류하려 하시니 벌써 발행(發行)한지라 할 수 없이 말하기를, "쉬 대공(大功)을 세우고 개가(凱歌)를 불러 돌아와 주상과 나의 마음을 저버리지 말라." "접경 밖은 경이 제지하고 접경 안은 짐이 제지할 것이니 영을 어기는 자는 선참(先斬) 후계(後戒)하라." 이때 호각이 군사를 거느리고 남창에 다달아 원수의 대군을 만나매 향령 아래 대진할 때 호각이 오색우를 몰아 전진에 서니 허리는 열 아름이요 얼굴은 수레바퀴 같고 머리칼이 누르러 검은 얼굴을 덮었으며 손에 장창을 들고 내달으니 좌에는 설만춘이요 우에는 호달이었다. 각각 신장이 구 척이요 얼굴이 흉악하고 형용은 괴이하였고 또한 진중으로부터 일원대장이 나서니 얼굴은 관운장 같고 곰의 등에 이리의 허리요 잔나비의 팔이러라. 위풍이 늠름하고 위의가 정제하여 당당한 풍도는 사람을 놀래고 헌헌한 위엄은 북해를 뒤침과 같았으며 호각이 한번 바라보고 대호(大呼)하여 말하기를, "구상유취(口尙乳臭) 어린아이가 천시를 모르고 망녕되어 전지에 나와 어른을 수욕(受辱)코자 하니 네 어찌 칼 아래 놀랜 혼백이 되려 하는고?" 원수가 대로하여 좌우를 바라보고 말하기를, "뉘 나를 위하여 능히 나아가 저 도적을 잡아 근심을 덜게 하리오?"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한 장수가 내달으니 이양춘일러라. 칼을 춤추며 나아가 바로 호각을 도와 싸울새 오십여 합에 이르도록 승부를 결치 못하더니 문득 설만춘이 거짓 패하여 달아나거늘 양춘이 승승장구하여 나가며 꾸짖기를, "적은 닫지 말고 내 칼을 받으라." 양진의 군사가 물끓듯하여 항오(行伍)를 차리지 못하니 문득 호진중으로부터 징을 치니 호각이 본진(本陣)에 돌아와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내 적장이 나이 어림에 업신여기었더니 이제 보니 그 용력을 당하기 어려운지라, 마땅히 계교를 써서 잡으리라." "오늘은 너와 자웅(雌雄)을 결하려니와 만약 내 너를 잡지 못하면 죽기를 면치 못하리라." "내 도적을 업신여기어 이곳까지 왔다가 오늘 여기 와서 죽을 줄을 어찌 뜻하였으리오." "너의 후은(厚恩)을 생각할 양이면 태산이 가볍고 강과 바다가 얕은지라 어찌 다 갚으리오." "호각이 반드시 우리 진을 칠 것이니 이제 우리는 계교 위에 계교를 쓰리라." "제군은 여차여차히 하여 약속을 잊지 말라!" "장해룡이 비록 하늘로 솟고 땅으로 숨는 재주가 있다 하나 어찌 오늘의 불길을 벗어나며 어찌 죽기를 면하였으리오. 오늘밤에 가히 원진을 치리라." "적장 호각은 나를 아느냐?" 호각이 황망한 중에 언뜻 보니 장원수라, 호각이 대경실색하며 미처 손을 놀리지 못하고 원수의 칼이 빛나는 곳에 호각의 머리가 말 아래에 떨어지는 것이었고 만춘과 호달 등 여러 장수들이 호각의 죽음을 보고 혼백이 비산(飛散)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본진을 바라보고 달아나니 본채에 이르러 보니 원진에서 기치를 세우고 장만이 내달아 한 창에 호달을 찔러 죽이고 설만춘은 달아나다가 양춘을 만나 일합에 죽인 바 되고 기타 제장과 군졸을 다 무찔러 죽이고 돌아오게 되더라. 원수는 크게 기뻐 잔치를 베풀고 삼군에게 주효를 내어 위로하고 상을 준 후 개선할 때 지내는 바 군현이 놀라서 항복하고 극진히 맞이하여 보내니 수선스럽고 못내 바쁘더라. 이때 상이 부마를 전장에 보내고 주야로 염려하사 침식이 불안하시더니 문득 원수의 첩서(捷書)를 보시고 크게 기뻐하시어 급히 떼어 보시고 희색이 만면하여 말씀하시기를, "나이 어린 대장이 이같이 크게 이기었으니 실로 천하의 명장이로다." "장해룡은 국가의 동량지재(棟梁之材)요 주석지신(柱石之臣)이라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오." "짐이 경을 전장에 보내고 주야로 침식이 불안하더니 이제 경이 승전하고 개가를 불러 돌아와 짐의 근심을 없게 하니 옛날의 장량(張良)과 공명(公明)인들 이에서 더할 바리오. 경의 공을 무엇으로 다 갚으리오." "성상(聖上)의 홍복(洪福)과 제장(諸將)의 공력(功力)이요 소장의 공이 아니로소이다." 상이 더욱 기특히 여기사 즉시 원수를 데리시고 환궁하사 제신(諸臣)을 모으시고 원수의 공로를 의논하실새, '평북장군 위국공좌승상'을 봉하시니 원수가 굳이 사양하되 상이 불윤(不允)하시고 파조(罷朝)하심에 원수가 마지못하여 사은하고 물러 나와 집으로 돌아와 내당(內堂)에 들어가 황후와 공주께 뵈오니 황후가 승상의 손을 잡고 즐겨하심을 마지 아니하시며 또 서러워하사, "간밤에 금령이 이것을 두고 간 곳이 없으니 가장 괴이하도다." 이때 막씨는 금령을 잃고 주야로 슬퍼할 뿐 아니라 장공의 부부 또한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였더니 하루는 야심토록 서로 말할새 홀연 금령이 문을 열고 들어오거늘 모두 반가움을 이기지 못하고 막씨는 뛰어나와 금령을 안고 반겨함을 어찌 다 측량하리오. 종일토록 금령을 안고 즐기다가 날이 저물며 야심하도록 이야기하다가 양부인이 일몽을 얻으매 천상으로부터 한 명의 선관이 내려와 이르되, "그대들의 액운(厄運)이 다하였으니 오래지 아니하여 아들이 이 길로 갈 것이니 때를 잃지 말라." "그대는 아마도 여아(女兒)의 얼굴을 보면 자연 알리라." "너는 인연이 다하였으며 인간에 부귀영화 극진할지라." "우리가 주었던 보배를 도로 달라." "우리 집으로 돌아가사이다." "신이 비록 나이 어리고 재주 없으나 한번 나아가 백성의 소요함을 진정케 하고 편안케 하오리다." "경이 한번 나아가 주현을 평정하고 백성을 진정하면 어찌 위왕의 덕이 아니리오." 이러구러 여러 해 되며 길이 남쪽 뜰로 지나더니 장삼의 묘하(墓下)를 지나게 되었는지라. 어사가 옛날의 일을 생각하며 가장 감창(感愴)한지라. 묘 앞에 나아가 제문을 지어 제사 지내니 눈물이 적삼을 적시더라. 제사를 끝내고 태수에게 나아가 청하기를 “장삼의 묘 앞에 비틀 세워 치산하고 송축을 많이 심으며 묘막을 수축하여 옛날에 양육(養育)하던 은정(恩情)을 표현하고자 하노라.” 하니 태수가 즉시 지휘하여 사흘 안에 치산하고, 소룡을 불러 오라 하니 이 때 소룡이 형세(形勢)가 점점 궁핍하여 촌락(村落)으로 다니며 걸식(乞食)하고 있으므로 어사가 이말 듣고 추연(惆然)함을 이기지 못하여 널리 수색하여 불러오매 변씨 모자가 이르러 당상을 우러러 보니 곧 해룡이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자못 청죄(請罪)할 뿐이어늘 어사가 저의 모자를 보고 불쌍히 여기어 친히 나려가 변씨 모자를 붙들어 올려 당상에 자리를 주고 그간의 고역(苦役)을 물으며 좋은 말로 위로하니 변씨 모자가 황공하여 눈물이 비오듯하며 능히 말을 이루지 못하더라. 어사가 조금도 옛일을 개의치 아니하며 벌써 모자가 이를 보고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여 오직 회과(悔過) 자책(自責)할 뿐이더라. 어사는 또한 본관에서 돈 만 관과 비단 백 필을 청구하여 변씨 모자를 주며 “이것이 약소하오나 십삼 년 간의 양육의 은혜를 표현하옵나니 이 땅에서 살고 매년 한번씩 찾으라.” 하며 작별(作別)한 후에 떠나니 변씨 모자 멀리 나와 전송하고 들어가 서로 어사의 후덕을 일컫고 남방의 갑부가 되어 매양 어사의 은덕을 잊지 못하니 보는 사람마다 흠앙(欽仰)치 않는 이 없더라. 이 때 어사의 행차가 경사로 향할새 길이 뇌양 고을을 지나게 되더라. 뇌양에 들어 객사에 숙소할새 본관에 들어가 본관과 더불어 담화하게 되니 자연히 친하여져서 밤 깊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본관은 하직하고 돌아가는 것이었고 어사는 자연히 심사가 어지러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깐 졸더니, 백발 노인이 막대를 들어 어사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대 비록 소년 등과하여 영걸(英傑)의 풍으로 이름이 사해에 차고 위세가 천하에 떨치었으되 부모를 곁에 두고 찾지 아니하고 이는 사람의 도리를 찾지 못함이라 내 그대를 위하여 부끄러워하노라.” 하니 어사가 이 말을 듣고 비감을 이기지 못하여 노인을 붙잡고 다시 묻고자 하다가 깨달으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더라. 크게 의혹하여 다시 자지 못하고 본관에 들어가니 본관이 하당 영접하여 말씀할새, 문득 본 즉 벽에 족자가 자기 낭중에 있는 족자와 같더라. 어사가 자세히 보고 크게 의아하여 묻기를 “족자의 그림이 무슨 뜻이 있는고?” 본관이 슬픈 듯이 말하기를 “뒤늦게야 한 자식을 낳았더니 난중에 잃은 지 십팔 년이라 사생 존망(死生存亡)을 알지 못하여 주야(晝夜)로 각골(刻骨)하더니 마침 이인(異人)을 만나 그림을 그려 주기로 걸어 두고 보고 있소이다.” 하니라 어사가 이 말을 듣고 즉시 금낭(金囊)을 열어 족자 하나를 내걸거늘 본관이 보니 두 족자가 조금도 다른 데가 없고 조금도 틈이 없는 터라. 본관과 어사가 서로 괴이히 여기어 의아하나 뚜렷한 표적이 없어서 발설치 못하고 주저하다가 본관이 어사더러 묻기를 “그 족자는 어디서 났사옵니까? 이상한 일이 있으니 추호(秋毫)라도 기휘(忌諱)치 말고 자세히 이르소서.” 하더라. 어사가 또한 신기히 여기어 자기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일일이 다 고한 후에 금령의 도움으로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귀히 된 말이며 나중에 금령이 잘 때에 이 족자를 주고 가던 사연을 낱낱이 고하매 본관이 이 말을 듣고 목이 메어 말하기를 “나도 금령의 말이 있노라.” 하고 또 말하기를 “족자도 금령이 물어온 것이요. 금령을 여러 해를 보지 못하다가 이제 와서 허물을 벗고 나니 천만 자태와 만고의 희한한 절염(絶艶)이라.” 하고 또 말하기를 “내 아이는 등에 일곱 사마귀 칠성을 두었으니 그것으로써 아노라.” 어사가 이 말을 듣고 문득 실성 통곡하더라. 본관이 또한 통곡함을 마지 아니하니 어찌 슬프고 기이하지 아니하리오. 일월이 빛이 없고 산천 초목이 슬퍼하는 듯하더라. 이 때 온 읍이 이 소식을 듣고 뉘 아니 신기히 여기며 뉘 아니 이상히 여기지 않으리오. 어사가 울음을 그치고 꿇어 앉아 말하기를 “소자가 정성이 부족하여 이제야 부모를 만나 뵈오니 그 죄는 씻을 길이 없으나 하늘이 살피사 우리에게 금령을 지시하여 이 일이 있게 하였도다.” 하고 전후 사연을 낱낱이 고하여 말하기를 “금령이 비록 환토(還土)하였으나 소자가 한 번 보고자 하나이다.” 하니 공과 부인이 그제야 비로소 정신을 차려 말하기를 “기쁘고 즐거움과 귀하고 신기함이 천고에 듣던 바 처음이라 네 금령을 보고자 함이 괴이하지 않은 일이어니와 여자의 예모(禮貌)에 너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리라.” 하더라. 어사 또한 그렇게 여기어 이 사연을 글월로 지어 경사에 보고하매 이 때 상이 어사를 보내시고 주야로 기다리시더니 문득 글월을 보고 떼어 보신 후에 크게 기뻐하여 “위왕이 천하를 두루 돌아 부모와 금령을 찾았으며 금령이 또한 환도하였다 하니 이도 인력으로 수작치 못할 일이라. 이는 반드시 하늘이 지시함이라.” 하시고 드디어 내전에 들어가시니 황후와 공주 또한 기뻐함을 마지 아니하며 “금령은 하늘이 내신 바라. 이제 응천 순인(應天順人)치 않으면 배은(背恩)하는 앙화(殃禍)를 받을지라. 금령의 혼인을 성상과 모후께서 주장하사 그 공을 갚음이 마땅할까 하나이다.” 하니 상이 옳게 여기사 궁녀 수백과 황문시랑(黃門侍郞)으로 하여금 위의를 갖추어 행장을 준비하여 그날로 떠나라 하시고 금령을 황후의 양녀로 삼아 친필로 직첩(職牒)을 금령공주라 하시고 급히 떠나라 하시며 또 막씨를 봉하되 ‘대절지효부인(大節至孝夫人)’을 봉하시고 장공 부부는 원조(元祖) 충신으로 그 마음이 굳어 벼슬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사 위왕에게 하교하시어 그 뜻으로써 돈유(敦諭)하라 하시더라. 이 때 황문시랑이 위의를 거느려 여러 날만에 뇌양에 이르러 성지(聖志)와 직첩을 드리고 바로 막씨 처소에 이르자 막씨가 크게 놀라 황황망조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거늘 이 때 금령공주는 알아채고 모친께 나아와 공순히 여쭈오되 “오늘 일행이 우리 집으로 올 것이니 모친은 정당(正堂)에 좌를 정하사 남의 웃음을 듣지 마소서.” 하더니 말을 채 마치지 않아 상궁과 시녀 등이 먼저 명첩(名帖)을 드린 후 들어와 문안하고 공주의 직첩과 부인의 직첩을 드리거늘, 공주는 향안(香案)을 배설하고 직첩을 받들어 북쪽에 네 번 절한 후에 시녀와 황문이 들어와 뵈옵고 황명으로 공주와 부인을 바삐 모셔오라 하심을 전하니 부인과 공주 지체 못할 줄 알고 모녀 즉시 금덩에 올라 집을 하직하고 길을 떠났고 지나는 바 도로에 위의 거룩함이 가히 형언할 수 없더라. 장공 부부가 또한 길을 떠날 때 위왕이 배열하여 경사로 향하니 길가에 구경하는 자 중에 칭찬치 않은 이 없더라. 여러 날만에 경사에 들어와 바로 대내에 들어가 위왕 부자는 사은하고 공주와 막씨와 부인이 또한 대대로 들어가 황후께 현알(見謁)하니 상과 황후께서 금선공주를 다리시고 못내 흠앙하며 그 손을 잡고 탐탐(耽耽)하여 골육지정(骨肉之情)이 있는지라. 상께서 하교하시기를 “예부는 택일하고 호부는 잔치를 배설하라.” 하시며 친히 전(殿)에 내려 부마를 영접하사 인사를 받으시니 고금에 이런 일이 길이 없을 것이라. 위왕이 길목을 갖추어 내전에 들어가 교배(交拜)를 마치고 돌아올새 금선공주의 친영(親迎)도 또한 그 날이더라. 구고(舅姑)께 먼저 납폐(納幣)하고 두 공주가 쌍으로 들어가 가례를 맞고 좌에 앉으니 그 빼어나고 아름다운 태도가 눈에 비치고 만좌에 두드러지더라. 공의 부부와 부인이며 좌상곤고의 즐거움이 비할 데 없더라. 또 상과 후에 전알하니 상과 후께서 한번 바라보시고 두 공주의 화려한 태도며 아름다운 색덕이 사람의 정신을 놀랜만하더라. 대단히 기뻐하사 종일토록 즐기다가 해가 서산에 저물매 등롱을 들고 왕을 인도하여 금령공주의 방으로 들어가 화촉(華燭) 동방(洞房)의 예를 갖추어 옛일을 말하며 밤 깊도록 말씀하시다가 불을 끄고 공주의 옥수를 이끌어 침상에 드시니 그 견권지정(繾綣之情)이 이루 측량치 못할러라. 익일에 양공주 구고께 신성(晨省)하매 그 구고의 애중함이 비할 데 없더라. 이에 처소를 정할새 금선공주는 응운각에 있게 하고 금령공주는 호절각에 있게 하고 시녀를 각각 분배하여 처소를 정한 후 밤이면 두 공주와 더불어 즐기고 낮이면 부모를 모시고 즐겼다. 이러구려 세월이 오래매 흥진비래(興盡悲來)는 고금의 상사더라. 장공이 홀연히 병을 얻어 백약이 무효하니 왕이 지성으로 구호하되 마침내 세상을 이별하니 공의 나이 칠십 육세더라 자녀 등의 망극지통(罔極之痛)을 이루 기록할 수 없을 정도더라. 장례를 극진히 차려 선산(先山)에 안장하고 돌아와 삼상(三喪)을 지성으로 지내고 문득 가부인이 또 돌아가시더니 더욱 천붕지통(天崩之痛)을 당하매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여 서산에 합장하고 삼년 초토를 극진히 지내더니 또 막부인이 세상을 떠나니 왕이 또한 신상을 구하여 장례를 차려 안장하더라. 이로부터 왕의 복록이 진진하고 자손이 만당하여 금선공주는 일남 일녀를 두고 금령공주는 이남 일녀를 두었으니 다 아버지를 닮아 모두가 옥인 군자(玉人君子)요 요조 숙녀(窈窕淑女)더라. 장자의 이름은 몽진이니 금령공주의 소생이요, 차자의 이름은 몽환이니 금선공주의 소생이요, 삼자의 이름은 몽기니 금령공주의 소생이더라. 장자 몽진은 이부상서로 있고 차자 몽환은 병마도독으로 있으면 삼자 몽기는 한림학사에 거하여 다 벼슬에 오르더라. 여아는 명문 거족(名門巨族)에게 사위를 맞아 각각 아들 딸을 낳으니 손이 번성하고 복록(福祿)이 진진하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