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 결송 - 미상 -
<앞부분 줄거리> 어느 부자에게 먼 친척이 되는 악한이 찾아와 재산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이를 참다못한 부자가 그를 서울의 형조로 끌고 가서 처벌을 호소한다. 그러나 재판이 미루어지는 사이 악한은 당상관에게 온갖 뇌물로 청탁을 하였고, 그 결과 재판에서 당상관은 악한의 편을 들어준다.
부자 생각하매 이제 송사를 지니 가장 절통하고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그놈의 청으로 정작 무도한 놈은 착한 곳으로 돌아가고 나같이 어진 사람을 부도(不道)로 보내니(사필귀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비판) 그 가슴이 터질 듯하매 전후사를 고쳐 고하면 반드시 효험이 있을까 하여 다시 꿇어앉으며 고하려 한즉 호령이 서리 같아 등을 밀어 내치려 하거늘, 부자 생각하되,
'내 관전(官前, 벼슬아치를 높여 부르는 말)에서 크게 소리를 하여 전후사를 아뢰려 하면 필경 관전 발악(發惡, 온갖 짓을 다 하며 마구 악을 씀)이라 하여 뒤얽어 잡고 조율(照律, 죄의 경중에 따라 법률을 적용함.)을 할 양이면 청 듣고 송사도 지우는데(뇌물 받고 잘못된 판정도 내리는데), 무슨 일을 못하며 무지한 사령 놈들이 만일 함부로 두드리면 고향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종신(終身, 평생) 어혈(瘀血, 타박상 따위로 살 속에 피가 맺힘) 될 것이니 어찌할꼬.'
이리 생각 저리 생각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저 송사를 지고 가기는 차마 분하고 애닯음이 가슴에 가득하여 송관(송사를 맡아 다스리던 벼슬아치)을 뚫어지게 치밀어 보다가 문뜩 생각하되,
'내 송사는 지고 가거니와 이야기 한 마디를 꾸며 내어 조용히 할 것이니 만일 저놈들이 듣기 곳하면 무안이나 뵈리라.(부끄럽게나 만들리라)'
하고 다시 일어서 계하(섬돌이나 층계의 아래)에 가까이 앉으며 고하여 가로되,
"소인이 천리에 올라와 송사는 지고 가옵거니와 들음 직한 이야기 한 마디 있사오니 들으심을 원하노이다.(당상관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판결의 부당함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 <중략>
중략 부분 줄거리 : 당상관이 이 말을 듣고 우습게 여기나 평소에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여 듣기로 결정한다.
옛적에 꾀꼬리와 뻐꾹새와 따오기 세 짐승이 서로 모여 앉아 우는 소리 좋음을 다투되('최고의 목소리'라는 자부심과 명예를 얻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됨.) 여러 날이 되도록 결단치 못하였더니 일일은 꾀꼬리 이르되,
"우리 서로 싸우지 말고 송사하여 보자." / 하니, 그 중 한 짐승이 이르되,
"내 들으니 황새(뇌물을 탐하여 따우기에게 상성(上聲)의 판결을 내리는 부패한 인물. 부패한 당상관 비유-풍자의 대상)가 날짐승 중 키 크고 부리 길고 몸집이 어방져워(넓고 커서) 통량이 있으며 범사를 곧게 한다 하기로 이르기를 황장군이라 하노니(실제 황새의 인물됨과 달리 세간의 평이 좋게 나 있음.), 우리 그 황장군을 찾아 소리를 결단함이(소리의 순위를 판결함이) 어떠하뇨."
세 짐승이 옳이 여겨 그리고 완정(完定)하매(그렇게 하기로 완전히 결정하매) 그 중 따오기(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처세술에 강한 인물. 악한 친척 비유)란 짐승이 소리는 비록 참혹하나 소견은 밝은지라(어떤 일이나 사물을 살피는 능력은 뛰어난지라), 돌아와 생각하되,
"내 비록 큰 말은 하였으나 세 소리 중 내 소리 아주 초라하니 날더러 물어도 나밖에 질 놈 없는지라. 옛사람이 이르되 모사(某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이라(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성사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뜻) 하였으니 아뭏거나 청촉(請囑, 청을 넣어 위촉함)이나 하면 필연 좋으리로다." / 하고 이에 슬기자존하여(자신의 슬기에 잘난 체하여) 밤이 새도록 시냇가와 논둑이며 웅덩이, 개천 발치 휘도록 다니면서 황새의 평생 즐기는 것을 주워 모으니 갖가지 음식이라. 개구리, 우렁이, 두꺼비, 올챙이, 거머리, 구렁이, 물배암, 찰머구리, 하늘밥도둑쥐며느리, 딱정벌레, 굼벵이, 지렁이, 꽁지벌레, 집게벌레, 구더기 등을 모아 가지고 맵시 있는 붉은 박에 보기 좋게 정히 담아 황새 집으로 가져갈새.(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열한 수를 쓰는 따오기=약삭빠르게 처세할 줄 아는 인물)
중략 부분 줄거리 : 따오기가 새벽까지 문객들과 놀다가 겨우 잠이 든 황새를 깨워 뇌물을 바치자, 황새는 그것들을 보며 쓸모 있는 것들이 많다고 여긴다.
이것이 다 황새에게 긴요한 물건이라. 마음에 흐뭇하고 다행히 여겨 청지기로 하여금 잘 간수하여 두라 하고 그제야 소리를 길게 빼어(뇌물이 마음에 들어 마음이 움직이고 있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오래 듣지 못하였더니 어이 그리 허랑무정하냐. 그 사이 몸이나 성히 있으며 네 어미 잘 있느냐. 반갑고 반갑구나. 네 사생존망(死生存亡, 살아서 존재하는 것과 죽어서 없어지는 것)을 모르매 궁금하기 측량없더니 금야에 상면하니 이는 죽었던 것만나봄 같도다. 그러나 저러나 네 무단히 댁을 절적(絶跡, 발길을 끊고 왕래하지 아니함)하고 다니지 아니하니 그 무슨 일이며, 그런 무신한 도리 어디 있으리요. 네 이제 밤중에 왔으니 무슨 긴급한 일이 있느냐. 나더러 이르면 아무 일이라도 잘 어루만져 무사히 하여 제 마음에 상쾌하게 해 주리라.(뇌물을 받고 따오기에게 상황을 유리하게 판결해 줄 것을 암시)"
따오기 처음에 제 문안드린 지 여러 해 되고 또 한밤중에 남의 단잠을 깨워 괴롭게 하였으니 만일 골딱지를 내면(화를 내면) 그 긴 부리로 몹시 쪼일까 하였더니, 그렇지 아니하고 다정히 불러들여 반갑게 묻는 양을 보고 그제야 미닫이 앞에 가까이 나아가 아뢰되,
"소인이 근간 사소한 우환(憂患)도 있삽고 생계에 골몰하와 주야로 분주하옵기로 오래 문안 못 드렸더니 이제 와 문안을 아뢰오니 황공 무지하와 아뢸 말씀 없삽거니와, 다만 급한 일(자신과 꾀꼬리와 뻐꾹새가 소리 겨룸을 황새에게 판결 받기로 한 일)이 있삽기로 죄를 무릅쓰고 언뜻 왔사오니 하정(下情, 어른에게 대하여 자기 심정이나 뜻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에 외람하옴을 이기지 못하리로소이다."(따오기의 말하기 방식-먼저 소원했던 자신의 무심함에 용서를 구한 후 찾아온 이유를 밝힘.)
황새놈이 덩싯(가볍게) 웃고 이르되,
"이런 급한 일이 있기에 나를 보러 왔지, 그렇지 아니하면 어찌 왔으리요. 그러나 네 무슨 일인지 네 소회를 자세히 아뢰어라."
따오기 아뢰되,
"다른 일이 아니오라 꾀꼬리와 뻐꾸기가 소인과 세 놈이 우는 소리 겨룸하였더니 자과(自誇)를 부지(不知)라(스스로 과시하고 자랑하여 알 수 없음). 그 고하를 정치 못하옵기로 결단치 못하왔삽더니 서로 의논하되 장군께옵서 심히 명철처분하시므로(사리에 분명하게 처분하시므로) 명일에 댁에 모여 송사하려 하오니 그 중 소인의 소리 세 놈 중 참혹하여 아주 껑짜치오니(열없고 어색하여 거북하오니) 필야(틀림없이) 송사에 이기지 못하올지라. 미련하온 소견에 남 먼저 장군께 이런 사연을 아뢰어 청이나 하옵고 그 두 놈을 이기고자 하오니, 장군 만일 소인의 전정(前情, 옛정)을 잊지 아니하옵시고 명일 송사에 아래 하(下) 자를 웃 상(上) 자로 도로 집어 주옵심을 바라옵나이다.(자신이 불리하더라도 판결을 뒤집어 달라는 의미)"
뒷부분 줄거리 : 황새는 따오기의 청탁을 받아들여 꾀꼬리와 뻐꾹새, 따오기의 소리 겨룸에서 따오기의 소리가 상성(上聲)이라 판결해 준다. 이 이야기를 들은 관원들은 대답할 말이 없어 부끄러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