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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중봉기(華山重逢記) - 작자 미상 -
각설(却說, 주로 글 따위에서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꺼낼 때나 앞서 이야기하던 내용을 그만둔다는 뜻으로 다음 이야기의 첫머리에 쓰는 말), 선옥의 나이가 이팔(二八)이라. 본디 영웅의 재주로 일찍 문무 병행하니 이두(李杜, 이백과 두보)의 문장과 손오(孫吳, 오나라의 손자)의 병법을 일신(一身) 겸비(兼備)하였으니 과연 당시 일인이라. 보는 자 저마다 동상(東床, 남의 사위를 높여 이르는 말)에 맞고자 하나 처사 그 연천(年淺, 나이가 아직 적다)함으로 허락지 아니하더니, 이때에 춘임이라 하는 매파가 나이 칠십이요, 위인이 조용하고 지인지감(知人之鑑, 사람을 잘 알아 보는 능력)이 또한 당시 제일이라. 이러므로 명문대가에 모르는 곳이 없으니, 보는 사람마다 예모(禮貌, 예절에 맞는 몸가짐)로써 용접(容接)하여 별호를 춘파라 하는지라. 이날 처사 부중에 이르러 예를 마치고 좌정한 후, 부인께 고하기를, "소파 다년 간 매작(媒妁, 중매)에 늙었사오나 귀댁 공자 같사온 선풍도골(仙風道骨, 신선의 풍채와 도인의 골격이란 뜻으로, 남달리 뛰어나고 고아(高雅)한 풍채를 이르는 말 ) 영웅호걸(英雄豪傑)은 보던 바 처음이라. 이 배필이 어디 있는가 은근히 찾았사오나 마침내 만나지 못하였더니 하늘이 지시하사 공자의 가우(佳偶, 좋은 배필)를 얻었사오니, 부인께서는 모름지기 처사 존전에 여쭈어 가기(佳期, 아름다운 기약)를 잃지 마소서." 부인이 청파에 물어 가로되, "이 어떠한 집 규수이뇨?" 춘파 대답하여 이르되, "경주 땅 이 통판 댁 소저이오니 이제 방년이 삼오(三五)라. 그 화용월태(花容月態,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과 맵시)와 유한숙덕(幽閑淑德, 인품이 조용하고 그윽하며 행실이 정숙하고 착하고 어짊)함이 고금에 처음인가 하나이다." 부인이 처사를 청하여 춘파의 전후수말을 일일이 고하고, "이 통판은 누구이니까?" 처사 대답하여 가로되, "이 통판은 어사 봉구의 아들 성일이니, 일찍 벼슬을 사례하고 초야에 한가로이 있어 풍월을 소요하매, 그 맑은 바람과 높은 덕행이 또한 당시 사림 중 영수라. 이제 그 여아가 부풍(父風)을 모습(模襲, 본받음)할진대 반드시 유한현숙할지라. 결친(結親, 사돈 관계를 맺음)함이 마땅하나, 일인의 말로 거연히(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문득, 갑자기) 의혼하기 경선(輕先, 경솔하게 앞질러 하는 성질이 있음)할지라. 부인은 지감 있는 시비로 춘파와 같이 보내 자세히 보고 오라 하소서." 부인이 즉시 향임이라 하는 시비를 이고(尼姑, '비구니'를 얕잡아 이르는 말)의 모양으로 장속(裝束, 무슨 일을 하기 위하여 몸을 꾸미거나 차림)하여 춘파와 같이 보내며 일러 왈, "이부(李府)에 가 여차여차하라." 하더라. 차시, 이 통판이 부인과 더불어 농옥(옥을 장난감으로 노는 사람 = 딸)의 쌍이 없음을 정히 차탄(嗟歎, 탄식하고 한탄함)하더니, 일일은 부인이 사창(紗窓, 비단 천을 바른, 부녀자들의 방 창문)에 의지하였더니, 문득 공중으로서 한 조각 종이 내려오거늘, 바라보니 '안동'이라는 두 글자가 뚜렷이 써 있거늘, 보기를 다하매 마음에 가장 의혹하다가 깨달으니 침상일몽이라. 몽중사를 생각하매 길흉을 알지 못할지라. 정히 침음(沈吟, 속으로 깊이 생각함)하더니 시비 고하되, "문 밖에 춘파가 어떠한 이고로 더불어 청알(請謁, 만나 뵙기를 청함)하나이다." 부인이 들어옴을 허하거늘 춘파와 이고가 정하(庭下, 뜰 아래)에 예배하매, 부인이 청상(廳上, 대청 위)에 앉히고 주찬(酒饌)을 내어 와 은근 상대하며 물어 왈, "저 여관(女官, 여자 도사)은 누구이뇨?" 춘파가 여쭈오되, "이 여관은 곧 태백산 학선관에 있는 이고로소이다. 소파가 일찍 부처께 공양하러 갔다가 저 이고를 만나매, 그 재주가 신출귀몰이라.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보면 평생 우락(憂樂)을 잠시에 분석하오매, 낭랑(귀족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께 천거하오니 낭랑은 용접하소서." "선고께서 진애(塵埃, 세상의 속된 것들)를 헤쳐 누지(陋地, 누추한 곳으로 자신이 사는 곳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에 굴림하시니 자못 감사한지라. 우리 부부는 이미 상유지말경(桑楡之末境, 노년 또는 말년)이어니와 늦게야 일개 여식을 두었으니 이는 곧 우리의 낙이라. 바라건대 선고는 한번 수고를 아끼지 말고 여아의 길흉화복을 가르침이 어떠하뇨?" "소저는 진실로 천상 선녀라. 인간의 육안으로 평론치 못하옵거니와, 일후 후비(后妃, 임금의 아내) 아니면 반드시 영웅호걸을 섬기리니 녹록(碌碌,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한 규중 처자와 같이 적은 부덕으로 의논할 바가 아니로소이다." "이상하도다. 소저가 비록 여중기골(女中奇骨, 여자로서 남다른 기풍이 있어 보이는 골격을 지님)이나 안동 김 처사 댁 공자와 방불(彷佛, 거의 비슷하다)하도다." "안동 김 처사 댁 공자는 누구뇨?" 춘파가 대답하여 왈, "문하시중 완국의 손자요, 처사 수중의 아들이라. 시년 이팔이요, 재덕이 쌍전(雙全, 둘 모두 온전하거나 완전함)하며, 준수 화려한 기골이 당시 영웅이라. 소파가 경향으로 열력(閱歷, 경력)이 많사오나 김 공자와 비할 자가 없는지라. 알지 못하겠노라, 소저가 어디 청혼을 하였나이까?" 부인이 대답하여 왈, "연광(年光, 세월)이 아직 차지 못하므로 정혼치 못하였노라." 춘파가 다시 여쭈오되, "그러하오면 이는 반드시 천생연분이니 달리 구혼치 마시고 상공께 의논하시어 김 공자와 성친(成親, 혼인)하심이 가할까 하나이다." 부인이 통판을 청하여 춘파의 말을 자세히 고하고 물어 왈, "안동 김 처사는 어떠한 사람이니까?" 통판이 대답하여 왈, "김 처사는 이전 시중 완국의 아들이라. 그 부친이 무죄하게 절도(絶島, 절해고도=귀양지)에 죽은 바 되었으매, 청운에 뜻이 없어 농부 어옹과 짝이 되어 세월을 보내니, 또한 지상의 신선이라. 내 비록 일면의 지분이 없으나 그 덕행을 짐작하매 그 아자(兒子, 아이)도 반드시 충효를 겸전(兼全, 여러 가지를 완전하게 갖춤)하였을지라. 속담에 하였으되, 호랑이가 호랑이를 낳고 개가 개를 낳는다 하였으니, 부인은 시비를 보내어 자세히 탐지하라." "춘파의 말을 들으매 진실로 반가운지라. 이제 여아의 혼사를 의논코자 하여 시비를 시켜 한 번 보고 완전히 정하고자 하니, 춘파는 한 번 걸음을 아끼지 말라." "춘파와 같이 가서 공자(公子)를 보고 오라." "이같이 신근(愼謹, 믿음직하며 조심성이 많음)하오시니 바른대로 말씀하오리이다. 저 여관이 과연 이고가 아니오라 김 처사 댁 시비 향임이라. 소저의 화용을 보러 왔사오나, 바른대로 말씀하오면 자세히 뵈올 길이 없을 듯하여 잠깐 기망(欺罔, 남을 속여 넘김)하였사오니 죄송하오이다." "사세 그러할지라, 무슨 청죄하리오?" <중략>
처사(시아버지)와 부인(시어머니)이 통판(친정아버지)과 김 부인(친정어머니)을 보내고 낭자의 회심(回心)함을 날로 기다렸으나, 수월(數月)이 되도록 방문을 나가지 아니 하니 온 집안이 모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낭자가 진정 심병(心病)이면 이제 여러 수삭(數朔)이 되었으니 반드시 위돈(蝟鲀)할 것이거늘, 그렇지 아니하고 침식이 여전하며 침선 등의 예절과 다듬이질하는 동작은 평상시와 같은지라. 이 곧 병심(炳心)은 아니요, 무슨 연고가 있도다."(가짜 선옥이 들어온 후에도 이씨는 평상시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하니, 처사와 부인이 또한 그렇게 여기고 낭자의 처소에 나아가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날은 선옥이 절에서 떠나던 날이었다. 낭자가 선옥의 의관을 붙들고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니, 처사의 부부가 그 경상을 보고 더욱 괴상히 여겨 문을 열라 하여 들어가 낭자에게 물었다. "네 어찌 부군은 모르면서 그 의관은 잡고 슬퍼하느뇨?" 낭자가 여쭈었다. "금일이 부군의 불가하던 날이오매 자연 슬픈 마을을 금하지 못하나이다." 처사가 위로하여 말하였다. "금일 비록 그러하나 너의 부군이 이미 돌아온 지 여러 달포가 되었느니(가짜 선옥이 온 것을 이름) 이제 지난 일이야 생각하여 무엇하리오? 현부는 구고(시부모)의 정경(사람이 처해 있는 모습이나 형편)을 돌아보아 차차 마음을 돌리라." 낭자가 대답하였다. "부군이 분명 돌아왔으면 무슨 일로 이같이 고심하오리까? 엎드려 살피건대 구고는 천만 살피시어 천륜을 찾게 하소서." 처사가 허허 탄식하고 말하기를, "현부가 이같이 말을 듣고 따르지 아니하니 진실로 문호의 큰 우세라. 사사로이 못할지니 법정으로 결단하리라." "관청에서 밝게 판결하실 것 같으면 존문(尊門, 남의 가문을 높여서 일컫는 말)의 대복(大福)이요, 소부의 지원(至願, 지극한 바람 또는 소원)이로소이다." ‘삼가 진정을 올리는 사유는 민(民)이 명도가 기박하여 늦게야 자식 일개를 두었사오매, 민의 나이 칠십이라. 생전 재미를 보자 하고 경주 거(居)하는 이 통판의 여식으로 혼인하여 수년이 되오매, 불초 자식이 홀연히 부모를 버리고 간 데 없더니 삼 년 만에 들어오매(선옥의 팔촌 형인 형옥이가 선옥이네 재산을 노리고 선옥과 외모가 매우 흡사한 가짜 선옥이를 데려옴.), 부모와 친척 노복이며 인리(隣里, 이웃 동네)가 모두 보며 반겨하오나 오직 홀로 부군이 아니라 하여 인륜이 장차 끊기게 되옵기로, 사사로이 결단치 못하여 밝은 간장 아래 발괄하오니(지난날, 관청을 상대로 억울한 사정을 글이나 말로 하소연하던 일), 인륜을 밝게 처분하옵시기 천만 바라나이다.’ "부자는 천성지친(天性至親)이니 어찌 천륜을 속이리오? 김 씨는 들으라. 저 누가 네 아들이며 네 종질이뇨?" 처사가 여쭈었다. "동편에 서 있는 것은 자식 선옥이요, 서편에 서 있는 것은 종질 형옥이로소이다." 부사가 수증을 자세히 보고 선옥을 또한 살펴보니 부자가 혹 닮지 아니하나 그 자부(子婦)가 이론(異論, 이의)함이 무슨 연고 있는가 하여 영(令)하여 이르기를, "너의 삼 부자는 한편이라, 한편의 말로 결송(백성들 사이에 일어난 소송 사건을 판결하여 처리함)치 못하리니, 지금 너의 가처(家妻)와 자부를 송정(송사가 이루어지는 곳)에 들게 하라."(부사는 재판을 나름 공정하게 하려고 함) "저기 섰는 자가 분명 자식인가?" 장씨 고하였다. "천륜이 지중하매 어찌 타인을 자식이라 하오며, 갓 나서부터 기른 자식을 어미가 되어 어찌 모르리까?" 부사가 이씨에게 물어 말하기를, "이제 너의 구고가 다 분명한 자식이라 하거늘, 네 어찌 홀로 부군이 아니라 하니, 비록 부부가 오륜에 들었으나 부자는 오륜의 으뜸이라. 어찌 그 부모의 정리와 같으리오? 너는 모름지기 마음을 고치고 구고의 뜻을 거역치 말라." "부부의 정리는 부모의 정리에 지나지 못하려니와, 외모에 나타난 얼굴이야 어찌 모르겠습니까?" 부사가 노하여 말하였다. "그 부모는 어려서부터 기른 자식의 얼굴을 어찌 모르고 네 홀로 안다고 하니 이것은 과연 병자의 말이로다." 이씨가 여쭈되, "병자 같사오면 아무 정신이 없사올지라, 저 놈의 욕됨을 면치 못하올 것이요, 침식과 행동거지를 어찌 평상시와 같이 하오리까? 분명 부군이 아님은 위에 있는 하늘이 굽어 살피시오니, 바라건대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은택을 입게 하시어 김씨의 인륜을 찾게 하오시고 여기에서 신(臣)의 정절을 밝히게 하소서." "이 송사는 진짜 선옥을 보기 전에는 귀신도 결단치 못할지라. 이씨가 고한 바와 같을진댄 진짜 선옥이 아닌가 하며, 김씨 부부가 고한 바를 취택하면 분명한 선옥인가 하노니, 김씨는 저 선옥을 다시 취처(娶妻, 장가드는 일)케 하여 가도(家道)를 안정시키고 이씨는 본가에 가 있어 진정한 선옥이 돌아오는 때를 기다림이 의당 마땅한 일이로다." (진짜 선옥이 돌아올 것임을 암시함) <중략> "옛말씀에 하였으되, '만승지군(萬乘之軍)은 빼앗기 쉬우나 필부필부(匹夫匹婦)의 뜻은 빼앗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제 왕명으로 죽이시면 진실로 달게 여기는 바이오나, 다만 부군을 만나지 못하고 죽사오면 미망인의 원혼은 구제할 것이 없을 것이요, 일후에 부군이 비록 돌아와도 진위를 분변할 자가 없사오니 지아비의 신세가 마침내 걸인을 면치 못할지라." "네 일개 요망한 여자가 심성이 교활하고 사악하여 아래로 김씨 문중의 천륜을 의심케 하고, 위로 천청(天聽, 임금의 귀, 곧 임금을 가리킴)을 놀라게 하여 조정과 영읍이 분란케 되었으매, 벌써 거리에 머리를 달아 여러 백성을 징계할 것이로되, 성상의 호생지덕(好生之德, 죽을 죄인을 살려주는 제왕의 덕)으로 나를 보내셔서 자세히 살피라 하시어, 내 열읍에서부터 너의 요사스럽고 교활한 심정을 이미 알았으나 성상의 너그럽고 어진 도를 본받아 형장(刑杖, 형벌을 집행하는 도구)을 쓰지 아니하고 좋은 말로 자식같이 알아듣도록 타일렀으니, 사람이 목석이 아니거늘 일향 고집하여 조정 명관(命官)을 무단히 면박하며 어지럽고 사나운 말로 송정(訟庭, 송사를 처리하는 곳)에 발악함이 가하겠는가?" "이씨를 형추(刑推, 죄인을 치며 죄를 캐어 물음) 거행하라." 하였다. 선옥이 소리를 크게 하여 나졸을 불러, "병인(病人) 이씨를 형추하라." "어사는 왕인(王人, 왕명에 의해 내려온 관리)이라, 이 곧 백성의 부모요, 상하 관속(官屬)은 모두 나의 집 하인이라." "장부가 어디에 갔다가 이제야 왔나뇨?" 이때 어사가 광경을 보니 이씨의 절개도 갸륵하거니와 그 선옥의 진위를 아는 지혜를 마음으로 더욱 탄복하고 몸소 창밖에 나아와 이씨와 선옥을 데리고 들어와 즉시 이씨로 수양딸을 정하였다. 이씨가 부녀지례(父女之禮)로 뵈니 어사가 선옥과 이씨를 가까이 앉히고 이씨더러 물었다. "여아는 어찌 가부의 진가를 알았느뇨?" 이씨가 대답하였다. "가부의 앞니에는 참깨만한 푸른 점이 있사오매 이로써 안 것이요, 다른 데는 저 놈과 과연 추호도 차이가 없도소이다." 어사가 그 영민함을 차탄하고 선옥에게 일러, "너의 부인이 나의 여아가 되었으니 너는 곧 나의 사위라. 너희 둘이 이제 만났으니 각각 정회도 펴려니와 우선 네가 절에서 떠난 연고를 자세히 하여 피차 의혹되는 마음이 없게 하라." "장부가 할 말이면 반드시 실상(實相)으로 할 것이거늘 어찌 이같이 주저하느뇨?" 선옥이 그제야 이씨를 향하여 말하였다. "내 모년월일야(某年月日夜)에 중의 의관을 바꾸어 입고 내려와 그대의 처소에 이르러 보니 그대 어떤 의관한 남자와 더불어 희롱하는 그림자가 창 밖에 비쳤으매, 매우 분노하여 들어가 그대와 그 놈을 모두 죽이고자 하다가 도로 생각하니, '만일 그러하면 누명이 나타나 나의 집안의 명성이 더러워질 것이라. 차라리 내 스스로 죽어 통한한 모양을 아니 보리라.' 하고 강변에 나아가 굴원(屈原)을 찾고자 하다가 차마 물에 들지 못하고 도로 절을 향하고 오다가 또 생각하니, '내 만일 집으로 돌아가면 그 분한 심사를 항상 풀지 아니할지라. 이러할진댄 어찌 가정을 이룬 즐거움이 있으리오? 차라리 내 몸을 숨겨 세상을 하직하고 세월을 보내리라.' 하여 그 길로 운산을 바라보고 창망히 내달려 우연히 함경도 단천 땅에 이르러 상원암이라 하는 절에 들어가 수운대사의 상좌가 되었으나, 대인(어사)을 만나 종적을 감추지 못하고 이제 이같이 만났으니 알지 못하겠도다, 그때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더뇨?" 낭자가 눈물을 흘려 의상을 적시며 이르기를, "장부가 이렇게 나의 마음을 모르나뇨? 이같이 의심할진댄 어찌 그때 바로 들어와 한을 풀지 아니하였나뇨? 그때 그 사람은 지금 송정에 있으매 장부가 보고자 하나이까?" "이 곧 그때의 의관한 남자라." "여자가 어찌 의관이 있으리오?" 낭자가 대답하였다. "첩에게 묻지 말고 옥란에게 물어보소서." "네가 육년 전 모월 모일 밤에 어떤 의관을 입었더뇨?" 옥란이 반나절이나 생각하더니 고하였다. "소비(小婢)가 그때 아이 적이라, 낭자가 공자의 도복을 지으시매 앞뒤 수품과 길이 장단이 맞는가 시험코자 하여 소비에게 입히시고 두루 보실 제, 소비가 어리고 지각이 없어 공자가 절에서 보낸 갓이 벽에 있거늘 장난으로 내려 쓰고 웃으며 낭자께 여쭈되, '소비가 공자와 어떠하나이까?' 하니, 낭자가 또한 웃으시고 꾸짖어 바삐 벗으라고 하기로 즉시 벗어 도로 걸었사오니 이밖에는 의관을 입은 적이 없사옵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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