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백전                                        -작자 미상-

 

 

[요약본]

명나라 헌종 때 남양 땅에 양현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해 온 명문거족의 아들이었고, 양현 역시 일찍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이부상서에 올랐다. 양현은 또한 사람이 너그럽고 고결하고 뜻이 굳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다. 벼슬이 올라가면 갈수록 마음은 언제나 겸손하여 선배와 동료들에게 예의가 발라 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임금에 대한 충성심도 대단해서 임금의 은총이 또한 각별하였다. 그야말로 양현은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부귀영화가 골고루 갖추어져 온 명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양현의 부인 왕씨 역시 그에 못지 않은 훌륭한 부인이었다. 학문과 도덕이 남달리 뛰어났고, 마음이 인자하고 현숙해서 주위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렇게 행복한 두 부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 보였지만 다만 한 가지, 슬하에 한 점 혈육이 없었다. 자식이 없는 비애와 불행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점점 나이가 들어 50에 가깝고 보니 그 안타까움은 더했다. 그래서 부부는 한 점 혈육을 얻으려는 마음으로 밤낮으로 천지신명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양현 부부는 참으로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 이상한 세계에서 한 동자를 만났는데, 그 동자가 양현 앞으로 오더니 자신은 천상의 선동인데, 죄를 지어 인간세상으로 내려오게 되었으며 갈 곳이 없어서 방황하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꾼 후로 마침내 부부가 아기를 갖게 되었고, 열 달 후 부인은 선녀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아들을 낳게 되었다. 아들을 얻은 양현 부부의 기쁨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양현은 아들의 이름을 산백이라고 지었는데, 산백은 자라면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갑절이나 크고 숙성했다. 산백은 아무런 병도 없이 잘 자라 어느덧 열네 살이 되었다. 이제 더욱 학문에 정진하기 위해 운향사라는 절로 들어가게 되었다. 산백은 시중을 들 서동을 한 명 데리고 운향사로 떠났다. 그런데 산백은 운향사 입구에서 마침 자신처럼 공부를 하러 오는 추양대를 만나게 되었다. 둘은 만나는 순간부터 마음이 서로 통해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에 추양대의 집안도 양산백의 집안만큼 부유하고 그 아버지도 높은 벼슬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양산백과 추양대는 공부하기에 너무나 좋은 환경 속에서 학업에 정진했다.

그러면서 어느덧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그 세월 동안 산백을 궁금하게 하는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추양대가 여자가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평소 추양대의 태도라든지 아름다운 얼굴 모습이 아무리 보아도 여자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양산백은 추양대의 비밀을 밝혀보기로 결심했다. 한 방에서 지내는 산백과 양대는 그날도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양대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한 산백은 잠버릇인 양하고 양대가 자고 있는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이상한 낌새를 챈 추양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비밀을 밝히려는 노력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며칠 후 산백은 다시 같은 시도를 했다. 추양대의 이불 속으로 자기 몸을 바짝 붙여놓고 추양대의 가슴을 더듬었다. 순간 그는 승리의 환성을 마음속으로 질렀다. 바로 여자였던 것이다. 다음 순간 추양대는 잠에서 깨어났고 욕정을 억제 못한 양산백은 양대에게 결혼하자면서 밤을 함께 보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추양대는 흥분한 산백을 진정시키며 훗날 부모님께 알리고 정식으로 혼인의 예를 갖출 것을 청했다. 그 약속을 믿고 산백은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음날 일어나 보니 추양대는 이미 떠난 뒤였다.

추양대가 떠난 후 하루하루를 괴롭게 보내던 양산백은 그로부터 두 달 후 자신도 짐을 꾸려 운향사를 떠났다. 평강의 추양대 집에 당도한 것은 길을 떠난 뒤 여러 날이 지나서였다.

추상서의 집은 매우 크고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산백은 하인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추 소저를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하인들은 냉랭하게 산백을 대했다. 알고 보니 그날은 추양대가 혼례를 치르기 불과 며칠 전이었던 것이다. 신랑은 성주 땅에 있는 심천이라는 이름난 재상의 외아들이었다. 혼례만 올리면 추양대의 부귀와 영화로운 삶은 보장된 것이었다. 그러나 추양대는 양산백을 잊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께 혼례를 올리지 못한다고 아뢰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눈물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양산백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다시 만난 사랑하는 두 남녀는 서로의 품으로 달려들어 눈물을 흘렸다.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원하고 사랑하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몰래 만난 잠시 동안의 회한을 나눈 두 사람은 누가 보기 전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 남녀는 다시 만나기로 하고 눈물로 이별했다.

집으로 돌아온 양산백은 자신을 반기는 부모님의 기쁨도 뒤로 한 채 그날부터 앓아누워 버렸다. 아들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양현과 왕씨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아버지 양현은 직접 추양대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아들과의 혼담을 이루어 내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양현이 찾아간 그날은 마침 추양대가 혼례를 치른 날이었다. 실망을 한 양현은 돌아와 아들에게 "너희들은 이미 인연이 아니니 더 이상 부모의 간장을 태우지 말고 몸을 추스르거라" 라고 말했다. 그러나 양산백은 추양대를 잊지 못하여 스스로 감기지 않는 눈을 억지로 감아 버렸다.

한편, 추양대는 오직 양산백을 남편으로 모시려는 결심으로 신랑이 옆에 오는 것도 꾀를 내어 피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가 신랑을 따라 시댁으로 들어가는 길을 나섰다. 부모님께는 다시는 만나 뵙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언제든지 기회만 되면 죽음으로써 정조를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을 가던 중에 추양대는 양산백이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를 들고 온 노복을 만나게 되었다. 자신을 향한 처절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양산백의 편지를 읽으며 그녀는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양산백의 무덤으로 달려가 그 앞에 쓰러져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런 신부의 모습을 보는 신랑은 화가 났지만 신부는 막무가내였다.

추양대는 산백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불행한 신부가 눈물을 뿌리며 축문을 읽고 났을 때 난데없이 오색 구름이 무덤에서 뭉게뭉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음 순간 무덤 꼭대기에서 한 가닥 찬란한 무지개가 비쳐 올랐다. 그러더니 별안간 쾅 하고 천지가 뒤흔들리며 산백의 무덤이 쫙 갈라져 버렸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도망을 갔을 때 신부는 그 갈라진 무덤 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져 버렸다. 놀란 신랑이 신부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미 무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본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졸지에 새 신부를 잃은 심의랑은 질투를 이기지 못해 다시 그 무덤을 찾았다. 무덤은 칡덩쿨로 덮여 있었다. 심의랑은 노복을 시켜 칡덩굴을 잘라내고 무덤을 파헤치게 했다. 두 사람의 시체는 서로 끌어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심의랑은 증오심과 복수심, 그리고 질투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두 시체를 떼어놓은 다음 두 개의 무덤을 만들었다. 두 무덤 사이에는 자신이 후에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겨우 조금 감정을 가라앉힌 심의랑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며칠 뒤 다시 찾아간 무덤에서는 다시 칡덩굴이 뻗어나와 서로 엉겨붙으려고 하고 있었다. 더욱 화가 난 심의랑은 이번에는 한 무덤을 고개 너머로 옮겨놓았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더욱 격분한 심의랑은 무덤에 불까지 질렀지만 결국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편, 이미 저승으로 가 버린 한 쌍의 남녀를 불쌍히 여긴 태을선인과 태상노군 등은 그들을 다시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기로 했다. 양산백과 추양대는 같은 시간에 무덤에서 솟아 나와 환생의 기쁨을 누렸다. 두 사람은 먼저 추양대의 집으로 갔다. 그들을 본 사람들은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둘은 우선 혼례를 올리고 양산백의 본가로 향했다. 양현 내외의 기쁨도 그 어디에도 비길 것 없이 컸다. 그들 또한 삼 일 잔치를 베풀었다. 양산백의 이야기는 동네에서 동네로 번져 온 세상으로 퍼져갔다. 그들의 신혼생활은 다시 없이 행복했다.

한편, 당시 명나라 주변에는 오랑캐들이 강성해져서 자주 변방에 쳐들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평화가 계속되어 온 명나라는 이에 대비가 안 되어 있었고, 특히 인재가 없었다. 곧 과거 소식이 전해졌다. 오래 전부터 기회를 기다려온 양산백은 과거에 응시했고, 문과와 무과에서 모두 장원급제를 하게 되었다. 문무를 겸비한 이 영예로운 천재에게 천자는 전례를 깨고 한림학사 겸 표기장군을 내리시고 특별히 말 한 필도 하사하셨다.

북방 오랑캐들의 침략은 점점 거세어졌다. 명나라는 위대한 장수가 절실히 필요했다. 천자는 문무를 겸비한 양산백에게 천하병마 대장군의 중임을 맡겼다. 양산백은 백만의 대군을 이끌고 나아가 오랑캐를 무찔렀다. 천자와 제신들은 멀리 나와 그를 환영하고 백성들은 감격에 겨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천자는 이 위대한 영웅을 치하하시며, 그를 북평후에 봉하시고, 그의 아버지를 초봉에 봉하시었다. 그리고 이들 일가를 황성으로 불로 치하하셨다. 양산백은 슬하에 일녀를 두고 사랑하는 아내와 팔순을 누려 온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