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경전 - 작자 미상-
<앞부분 줄거리> 윤 승상의 아들 지경과 최 참판의 딸 연화는 연애 끝에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윤지경을 사윗감으로 눈여겨 본 귀인 박씨의 청으로, 중종은 윤지경을 부마로 간택하고 연성 옹주와 혼인하게 한다.
최 공(최참판, 최홍일)이 나와 친히 뜰에 내려 부마(윤지경)를 묶은 밧줄을 끄르고, 손수 이끌어 내실에 들어가 물어 가로되,
"네 언제 이르렀느뇨?"(언제부터 밤에 몰래 담을 넘어 연화와 만났는가?)
생(윤지경)이 가로되,
"빙부가 종시 허치 아니하시니, 아내 그리워 견디지 못하와 8월부터 월장할 계교를 내어, 날마다 다녀 스스로 금치 못하다가 오늘 이 욕을 보오니 빙부의 고집 탓이오이다."
공이 애련하여(측은하고 불쌍하여) 등을 쓰다듬어 가로되,
"네 어찌 그리 미혹한가(어리석은가). 옹주가 중대하여 자녀를 낳고 살며 옹주를 개유하면(잘 알아듣도록 타이르면), 네 부친과 내 주상께 이런 절박한 사연(옹주와 결혼하기 전에 연화와 혼약한 일)을 고할 것인즉, 주상은 인군(인군, 어진 군주)이시라 허하시리니, 그때 빛나게 해로하기는 생각지 아니하고, 갈수록 옹주를 박대하며 귀인(경빈 박씨, 옹주와 복성군의 어머니)의 험담을 이르고 복성군을 미워하며, 밤을 타 도망하여 날마다 내 집에 오니, 옹주가 알면 화가 적지 아니하리니 끝을 어이할꼬."
부마가 가로되,
"낸들 어찌 모르리이까마는 옹주는 천하 괴물 박색(매우 못생김)이고, 귀인은 간악이 무비(無比)하고(비교할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복성군은 남 헐기(험담) 심한데, 홍명화 · 홍상이 박 빈을 체결하여(결탁하여) 필연 그윽한 흉계를 지을지라, 옹주를 후대하고 그 당(경빈 박씨의 무리)에 들었다가 멸문지환(가문이 모두 화를 당함)을 면치 못하리니, 아내(연화 소저)를 애중하고 옹주를 박대하면 빙부와 부친의 죄가 큰즉 정배(定配, 귀양)요, 작은즉 삭직(削職, 벼슬을 박탈당함)이요, 소저는 귀약밖에 더 가리이까. 싫은 것을 강인하고(애써 참고) 그른 것을 어이 견디리이까?"
공이 말이 없다가,
"어찌하든 밤이 깊었으니 들어가 자라."
공이 이후로는 밤낮으로 찾아오니, 최 참판과 연화 소저가 민망하여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아니하더니, 윤 승상이 알고 지경을 불러 꾸짖고 옹주궁을 떠나지 못하게 하나, 산 사람을 동여 두지 못하는 법인지라. 지경이 날마다 최씨에게 가니 옹주 어찌 모르리오. 부마(임금의 사위) 내당에 들어간 때 옹주 가로되,
"내 비록 용렬하나 임금의 딸이요, 빙례(聘禮, 혼례)로 부마의 아내가 되었거늘 업신여겨 천대하기 심하도다. 최씨를 얻어 고혹(蠱惑, 아름다움이나 매력 같은 것에 홀려서 정신을 못 차림)되었으되 벼슬아치는 두 아내 두는 법이 없거늘, 부마 어찌 두 아내 있으리오. 최홍일은 어떠한 사람이건대 부마에게 재취를 주어 주상과 첩을 업신여김이 심하뇨."
지경이 정색하여 가로되,
"내 할 말을 옹주 하시는도다. 내 어찌 조강지처를 버리고 부귀를 탐하여 옹주와 화락하리오. 옹주 만일 최씨를 청하여 한 집에서 화목하기를 아황과 여영(순 임금의 두 아내)을 본받을진대, 최씨와 같이 공경하고 화락하려니와, 투기하여 나를 원망한즉 평생 박명을 면치 못하리로다."
옹주 웃으며 가로되,
"당초에 조강지처 있는지 없는지 내 깊은 궁에서 지내던 처녀로 어찌 알았으리오. 임금의 명으로 부마의 아내가 되어 나온 지 일 년이나, 천대가 심하여 내 앞날이 불을 보는 듯하니, 어찌 통한치 아니하리오."
지경이 웃으며 가로되,
"여염 사람(윤지경이 스스로를 낮추어 칭하는 말)이 부부간에 인사를 드리는 것도 그런데 하물며 내가 옹주를 너무 공경하여(반어법) 하루에 두어 번 들어가 앉기로 편치 못하고 꿇어앉으니 이밖에 더 공경하리오. 주상이 현명하시니 나를 그르다 아니 하실지라. 본대 간악한 후궁(경빈 박씨)은 두려워 아니 하나니라."(윤지경이 옹주의 불평에 비아냥으로 대응함)
하고 크게 웃고 소매를 떨치고 나오더라.
옹주 종일토록 울더니, 그 후 입궐하여 박씨에게 일일이 고하고 설워하니, 박씨 크게 노하여 상께 이대로 아뢰어,
"최씨를 없애고 부마를 죄 주어 주오이다."
청하니, 상이 윤지경을 불러 책망하여 가로되,
"네 아낸즉 옹주요, 여염 필부와 달라 금지옥엽이어늘, 네게 최씨와 혼인을 물리라 한 명을 거역하고 위법하는가. 또한 사위의 도리가 있고 장인 장모도 처부모라 하였으니, 어버이를 훼방하는 자식이 어디 있으리오."
지경이 머리를 땅에 닿아 사죄하여 가로되,
"하교(임금의 명령) 이러하시니 황공하여이다. 신이 외람하오나 평소 품은 생각을 세세히 전달하리이다. 참판 최홍일은 신의 아비 종매부라. 어려서부터 아비의 형제지의로 신이 부형같이 공경하고 홍일이 신을 자식같이 사랑하옵더니 조강지처 윤씨 죽고 후처 이씨 들어와 딸을 낳으니, 자못 총명하고 자색이 빼어나오니, 아비와 홍일이 서로 약속하여 피차 서로 소신은 최가 사위 될 줄 알고, 최씨도 소신의 아내 될 줄 아옵더니, 전년 봄에 혼인날을 정하와 신이 최가에 가 전안(奠雁, 혼례 때 신랑이 기러기를 가지고 신부 집에 가서 상 위에 놓고 절하는 예)하옵고 배례를 겨우 하였으나, 신이 벼슬을 급히 받는 바람에 신방에 들지 못하고 궁에 들어오니 부마위를 주시고 연성 옹주를 맡기시니 신이 과연 옹주의 탓이 아닌 줄 아오나, 최씨는 어려서부터 서로 보아 사랑하옵던 마음이 깊었사오니 어찌 비상지원(飛霜之怨,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없지 아니하오리까. 옹주를 대접하고 최씨를 다른 데 출가하라 하신들 언약이 깊고 예를 치렀으니, 어찌 다른 데로 신의를 버리고 갈 생각을 하리이까?"
상이 탄식하여 가로되,
"네 나이 어리되 소견이 높아 급암(중국 전한 무제 때 충언을 잘 한 직간신)의 직간(直諫)을 가졌도다. 그러나 옹주는 내 딸이라. 조금도 박대하지 말라."
하고 즉시 복성군을 불러 크게 책망하시고, 김송환을 귀향에서 푸시고 은빈을 사하여 서장에 허락하시니, 박씨 크게 노하여 지경을 보고 꾸짖어 가로되,
"네 어찌 내 딸을 박대하고 내 허물을 지어 내고 복성군을 궁흉한 데 몰아넣어 우리 모자를 없애고 최녀로 동락할 계교를 하느뇨?"
지경이 뜰에 꿇어 사죄하니, 임금이 박씨를 꾸짖어 물리치시더라.
<뒷부분 줄거리> 최홍일과 윤 공은 윤지경과 연화를 갈라놓기 위하여 거짓 장례도 치르나 결국 둘은 또 만나게 된다. 이에 왕은 옹주를 박대한 죄를 물어 두 사람을 유배 보낸다. 이후 간신들에 의한 반란이 일어나게 되어 경빈 박씨는 처형되고, 복성군과 옹주 등은 유배를 당한다. 그러나 윤지경은 옹주를 풀어 달라고 청한 후 옹주, 연화와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