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le04_orange.gif 사또

 circle04_orange.gif 사랑니

 circle04_orange.gif 사명당 사첫방

 circle04_orange.gif 산통 깨다

 circle04_orange.gif 살림하다

 circle04_orange.gif 삼수갑산을 가다

 circle04_orange.gif 삼십육계

 circle04_orange.gif 삼천포로 빠지다

 circle04_orange.gif 삼팔 따라지

 circle04_orange.gif 삿대질

 circle04_orange.gif 샅샅이

 circle04_orange.gif 샌님

 circle04_orange.gif 서각

 circle04_orange.gif 섣달

 circle04_orange.gif 

 circle04_orange.gif 설렁탕

 circle04_orange.gif 성가시다

 circle04_orange.gif 성냥

 circle04_orange.gif 소매치기

 circle04_orange.gif 소주

 circle04_orange.gif 손 없는 날

 circle04_orange.gif 수릿날

 circle04_orange.gif 숟가락

 circle04_orange.gif 술래

 circle04_orange.gif 숨바꼭질

 circle04_orange.gif 스승

 circle04_orange.gif 시앗

 circle04_orange.gif 시집 가다

 circle04_orange.gif 시치미를 떼다

 circle04_orange.gif 신기료 장수

 circle04_orange.gif 실랑이

 circle04_orange.gif 실마리

 circle04_orange.gif 심상찮다

 circle04_orange.gif 십년감수

 circle04_orange.gif 십팔번

 circle04_orange.gif 썰매

 ◇ 사또 ◇                                                                

 각 도에 파견된 문무관리를 이르는 말로 원래 사도(使道)라고 불렀다.   이것이 나중에 변하여 '사또'가 되었다

 ◇ 사랑니 ◇                                                            

'입 속의 뒤쪽 맨 구석에 나는 작은 어금니'를 말한다.

사랑니는 대개 다른 어금니가 다 난 뒤, 성년기에 새로 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사람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을 때며, 특히 새로 어금니가 날 때 마치 첫사랑을 앓듯이 몹시 아프다고 하여 '사랑니'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사명당 사첫방 ◇                                                  

 '매우 추운 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흔히 사명대사라고 하는 사명당은 조선 선조 때의 유명한 승려로, 임진왜란 당시 사명당의 활약을 과장한 많은 일화들이 전해져 온다. 그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유명하다.

사명당이 일본과 강화를 하기 위해 일본에게 건너갔는데, 그 때 왜왕이 사명당을 태워 죽이려고 구리로 집을 지어 그 속에 가두고 사면에서 불을 피웠다. 그러나 사명당은 사벽(四壁)에 서리 상(霜)자를 써 붙이고 방석 빝에 얼음 빙(氷)자를 써 놓은 다음 팔만대장경을 외우니 방이 타기는커녕 방안에 얼음이 얼어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로부터 몹시 추운 방을 가리켜 '사명당 사첫방'이라고 하게 되었다. 사첫방의 '사처'는 '하처(下處)'가 변해서 된 말로, 점잖은 손님이 객지에서 묵는 집을 가리킨다.

같은 유래에서 나온 말로 '사명당이 월참(越站)하겠다'는 속담이 있다. 사명당이 길을 가다가 쉬지도 않고 지나쳐 버릴 정도로 방이 매우 춥고 차다는 뜻이다.

 ◇ 산통깨다 ◇                                                         

'일을 그르치게 하다'는 뜻이다.

길이 10cm 가량의 향목(香木)이나 금속 혹은 대나무를 에어 괘(卦)를 새긴 것을 산가지 또는 산대라고 한다. 그리고 이 산대를 넣는 통을 산통이라고 한다.

점을 칠 때 산통을 대여섯 번 흔든 다음 산통을 거꾸로 들면 그 구멍으로 산가지가 나온다. 이 산가지의 괘로 점을 치는 것을 산통점이라고 한다. 이 때 산가지를 집어 넣는 산통을 깨 버린다는 것이므로 어떤 일을 이루지 못하게 뒤틀어 버린다는 뜻으로 쓰게 되었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살림하다 ◇                                                         

원래 불교용어인 산림(山林)에서 나왔다. (産林이라고도 쓰기도 한다.)

산림은 절의 재산을 관리하는 일을 말하는데, 이 말이 절의 재산관리만이 아니라, 일반 여염집의 재산을 관리하고 생활을 하는 일까지를 가리키게 되었다.

 ◇ 삼수갑산을 가다 ◇                                              

'매우 힘들고 험난한 곳으로 가거나 어려운 지경에 이르다'라는 뜻이다.

삼수는 함경남도 북서쪽에 있는 고장으로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국내에서 가장 추운 지대에 속한다. 겨울에는 평균 영하 16~18도에 이르고 눈이 수척의 높이로 쌓인다고 한다. 또한 교통이 불펀하여 옛날에는 유배지로 유명했다.

갑산은 함경남도 북동쪽에 있는 고장으로 삼수와 마찬가지로 매우 춥고 교통이 불편한 지역이다. 두 지역 모두 지형이 험한 데다 유배지로 이름이 나서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 하는 곳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삼수갑산을 가다'고 하면 아주 멀고 험한 곳으로 가거나 아니면 매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삼십육계 ◇                                                         

'달아나는 것이 상책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제서>의 「왕경즉전」에 나오는 '王敬則曰 檀公三十六策 走爲上計', 즉 '단공이 말한 36가지의 책략 중에 (상대방이 너무 강해서 대적하기 힘들 때에는) 달아나는 것이 가장 나은 계책이다'라는 말이 줄어서 '삼십육계'가 되었다.

비겁하게 달아난다는 뜻을 담아서 많이 쓰고 있으나 원래는 힘이 약할 때는 일단 피했다가 힘을 기른 다음에 다시 싸우는 것이 옳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무조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병법의 하나로서 뒷날을 기약하며 일단 후퇴전술을 쓸 수도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라고 할 때의 '줄행랑'은 '주행(走行)'이 변해서 된 말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삼천포로 빠지다 ◇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거나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엉뚱하게 그르치는 경우'에 쓰는 말이다.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래가 전해진다.

첫째, 옛날에 어떤 장사꾼이 장사가 잘 되는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장사가 안 되는 삼천포로 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둘째, 진해에 해군기지가 생긴 이래 해군들에 의해 나온 말이다. 진해에서 서울로 휴가를 나왔다가 귀대하는 도중에 삼량진에서 진해 가는 기차를 갈아타지 않고 잘못하여 삼천포 가는 것을 갈아 타는 바람에 귀대 시간을 어겨 혼이 나는 병사들 때문에 생겨난 말이라는 것이다.

셋째, 부산을 출발하여 진주로 가는 기차에는 삼천포로 가는 손님과 진주로 가는 손님이 함께 탄다. 기차가 계양역에 닿게 되면 진주행과 삼천포행의 객차로 분리하여 운행한다. 이 때는 반드시 방송을 통해 진주행 손님과 삼천포행 손님은 각각 몇호차로 옮겨 탈 것을 알려 준다. 그러나 진주를 가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잠들거나 하여 엉뚱하게 진주가 아닌 삼천포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위 세 가지 유래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지금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삼팔 따라지 ◇                                                     

'별 볼일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속된 말이다.

노름판에서 세 끗과 여덟 끗을 합하면 열한 끗이 되는데, 여기서 10단위를 떼면 한 끗이 된다. 한 끗을 따라지라고 부르며, 매우 낮은 끗수에 해당되어 별 볼 일 없는 패를 잡은 셈이 된다.

해방 직후 북쪽에서 토지개혁이나 종교 문제 등으로 남쪽으로 삼팔선을 넘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빈털털이거나 의지할 데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삼팔선을 넘어온 이들의 신세를 노름판에서 말하는 가장 낮은 끗수인 따라지에 빗대어 '삼팔 따라지'라고 하게 되었다.

흔히 키와 몸이 작아 보잘 것 없는 사람이나 따분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따라지라고 하며, 남에게 매여 자유없이 사는 목숨을 '따라지 목숨'이라고도 한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삿대질 ◇                                                            

'말다툼을 할 때 주먹, 손가락, 막대기 따위로 상대방의 얼굴을 향해 내지르는 짓'을 말한다.

삿대는 상앗대의 준말이며 상앗대는 물가에서 배를 떼거나, 또는 물이 얕은 곳에서 밀어 갈 때에 쓰는 장대를 말한다. 따라서 삿대질은 원래 상앗대로 배질을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말다툼을 할 때에 주먹이나 손가락 또는 막대 등을 상대편의 얼굴 쪽으로 내지르는 짓이 마치 상앗대로 배질을 하는 것과 같다 하여 생긴 말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샅샅이 ◇                                                             

 샅은 두 다리의 사이나 두 물건 사이의 틈을 가리킨다. "샅샅이"는 조금이라도 틈이 있는 모든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석구석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 샌님 ◇                                                                

'매우 얌전하며,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샌님은 원래 '생원(生員)님'이 줄어서 된 말이다. 생원은 조선 시대 과거 시험을 볼 때 소과 종장(終場)의 경의(經義)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며, 뒤에 흔히 나이 많은 선비를 대접하느라 그 성 밑에 붙여서 부르곤 했다.

따라서 생원이라고 하면 대개 공부도 많이 하고 행실도 점잖은 선비에 속했다. 이로부터 선비처럼 얌전한 사람을 일컬어 '생원님', 즉 '샌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여자처럼 숫기가 없고 활발하지 못한 성격의 남자를 비아냥대는 말로 쓰인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서각(西閣) ◇                                                       

 '뒷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개성이나 황해도 지방에서는 뒷간을 '서각'이라고 한다. 옛날 이성계가 무력으로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 왕조를 세웠을 때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 살던 사람들이 이성계를 증오하여 뒷간을 서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서각은 이성계의 왕좌가 있던 곳의 서쪽에 있던 누각이다.

 ◇ 섣달 ◇                                                               

 '음력 12월'을 가리킨다.

섣달이란 설이 드는 달이란 뜻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은 설이 음력 1월에 해당하지만 수천 년 전부터 지금에 이르는 동안 한 해의 출발을 어떤 달로 삼았는가 하는 것은 여러 번 바뀌었다.

그 중에는 음력 동지달, 즉 11월을 첫달로 잡은 적도 있다. 동지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고 하는 말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도 그런 생활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다.

12월 1일을 설로 쇤 적도 있는데 사람들은 이 달을 설이 드는 달이라고 하여 '섣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설달'이 '섣달'로 된 것은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된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은 1월 1일로 설이 바뀌었지만 섣달이라는 말은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                                                                  

 '설날'의 '설'은 '새로운'의 뜻이다. '설날'은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하는 날'의 의미가 될 것이며,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도 '설'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설'은 모음교체가 되어 나이를 나타내는 '살'로 쓰인다. 즉, '설'이 되면 한 '살' 더 먹는 것이다.

 ◇ 설렁탕 ◇                                                             

 소의 머리·내장·족·무릎도가니…… 따위가 폭 고아진 국물에다 그 고깃조각들이 섞인 국밥을 가리키는 말이다.

요즘은 모든 간판이 한글로 되면서 눈에 안 띄게 되었지만, 그 전에는 "雪濃湯"이라 쓴 간판하며 차림표가 걸려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雪濃湯"이라니 무슨 뜻인가 생각했다가 그 국물이 뽀얗게 짙어서 그럴싸한 한자 맞춤자였구나고 뒤늦게 깨닫기도 한 설렁탕이었다. 지난날에야 "雪濃湯"·"雪農湯"이었건 "선롱탕"·"설농탕"·"설롱탕"이었건, 지금의 표준말로는 "설렁탕"이다.

서울 용두동쪽 서울대학교 사범 대학 터에 선농단(先農壇)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있지만, 농사짓는 법을 가르친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後織氏)를 제사 지냈던 곳이었으니 농경민(農耕民)다운 습속을 이어받은 때문이었다고 할 일이다. 해마다 절기가 봄으로 접어들 때, 즉 경칩(驚蟄)이 지난 돼지날(亥日)을 가려 지낸 이 제사에서는, 적전지례(積田之禮:임금이 친히 밭을 가는 의례)을 행했으며, 비가 안 오면서 가물어대는 해에는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던 조선 왕조 성종(成宗) 6년(1475) 정월에, 임금께서 이곳에 납시었다. 종친 월산 대군(月山大君)에 재상 신숙주(申叔舟)도 끼었으며, 거기에 서민이 합세하여 밭을 갈았다. 그러고서 백성을 위로하여 국말이밥과 술을 내렸는데, 이때 선농단(先農壇)에서 먹게 된 국밥 을 "선농탕"(先農湯)이라 이름지어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게 된 "설렁탕"이라는 말로 된다는 것이 "설렁탕"에 대한 일반적인 어원론으로 되고 있다.

"곤난"(困難)이 "곤란→골란"으로 발음됨은, 이른바 닿소리의 이어바꿈(子音接變) 현상이다. 우리말은, "ㄴ"과 "ㄴ"이 이어질 때 "ㄹ+ㄹ"로 발음되는 것이어서, "한남동"이 "할람동", "논난(論難)"이 "놀란"으로 된다. 그런 발음 현상 따라 "선농탕"을 "설롱탕"이라 말하는 동안, 그 한자인 "先"자를 "雪"자로 갈아 끼워 봤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때, "雪"과 "濃"의 두 한자에서 말의 뜻을 찾으려함은 애당초 잘못이었다고 하겠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나와서 말이지만, 오늘날의 "설렁탕"과 "先農壇"과는 아예 관련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굳이 말밑을 캐다 보니, 그쪽으로 기울어 해석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先農壇"의 "先農"과, 여항에서 말하는 "설롱탕" 혹은 "설렁탕"의 "설렁"이 비슷한 음이어서 갖다붙여 본 것일 수도 있지 않겠냐 함인데, 어쨌거나 "설렁탕"의 유래를 "先農壇"에 갖다댄 것은, 농경민이었던 우리네 조상의 냄새를 그대로 풍겨 준다는 뜻에서도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다. 학자 가운데는 몽골말 sil (n)-실루(실룬)에서 차용한 말이라는 설을 내세우는 이도 있다. 그렇게 말한다면 고깃국물을 뜻하는 만주어(滿洲語)인 sile(실레)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설사 뿌리가 거기였다 해도 너무 멀리만 느껴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출처:<박갑천의 재미있는 어원이야기>

 ◇ 성가시다 ◇                                                         

 우리가 늘 사용하는 단어 중에 '성가시다'는 말이 있지요. '귀찮다, 괴롭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래는 '파리하다, 초췌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이 성가시다'(현대 철자법으로 고쳤습니다)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으면 모든 것이 귀찮아지겠지요.

                                                             *출처 : 홍윤표

 ◇ 성냥 ◇                                                               

 불을 켜는데 썼던 `성냥`은 마치 고유어인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한자어였습니다. 즉 `셕뉴황`이 음운변화를 겪어서 `성냥`이 된 것입니다.

                                                             *출처 : <우리말 어원>

 ◇ 소매치기 ◇                                                         

'혼잡한 곳에서 남의 물건을 슬쩍 훔치는 사람'이다

옛날 사람들이 입고 다니던 두루마기 따위 웃옷의 좌우에 있는 옷소매는 품이 크고 넓어서 흔히 그 안에 돈이나 다른 귀중한 물건들을 넣어 가지고 다녔다. 그 옷소매 안에 있는 돈이나 물건을 훔친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소주 ◇                                                                

 알코올류인 소주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후기로서 원나라에서 처음 수입되었다. 알코올의 증류법은 원래 아랍의 명의인 아비케나가 발명했는데 원나라에서는 이 증류법을 이용하여 소주를 만들었다.

소주라는 말은 고려 공민왕 때의 <최영 장군전>에 그 이름이 처음 보인다. 조선에 들어서는 1393년 12월에 태조의 맏아들 방우가 소주를 매일 마셔 병들어 죽었다고 적혀 있다.

                                                              *출처:<우리말의 나이를 아십니까>

 ◇ 손 없는 날 ◇                                                       

'손을 타지 않는 길일(吉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사를 하거나 무슨 큰 행사가 있을 때, 어른들이 '손 없는 날'을 골라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여기서 '손'은 날수(日數)에 따라 4방위로 돌아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귀신을 일컫는 말이다.

손은 음력으로 1이나 2가 들어가는 날은 동쪽에 있고, 3이나 4가 들어 가는 날은 서쪽에 있다. 그리고 5나 6이 들어가는 날은 남쪽에 있고, 7이나 8이 들어가는 날은 북쪽에 있다. 9와 10이 들어가는 날은 하늘로 올라가 있으므로 귀신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아무 손도 타지 않는다는 9일과 10일이 길일이 되는 것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수릿날 ◇                                                             

'단오 명절'을 달리 가리키는 순 우리말이다.

음력 5월 5일, 즉 단오를 나타내는 우리말인 수릿날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쑥으로 수레 모양의 떡을 해서 먹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라고 하는가 하면, 이 날은 전통적으로 수리치로 떡을 해 먹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날은 해가 머리 정수리에 오는 날이라는 뜻을 나타낸 말이다. 단오는 단양(端陽)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고도 하며, 이 말 자체가 정수리 바로 위에 있는 태양을 뜻하는 것임에서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농경생활을 해 오는 동안 열매를 맺게 하는 원동력인 태양을 중히 여기고 기리는 마음에서 여름 햇살이 정수리에 내리 쬐이는 낭릉 명절로 삼게 된 것이다. 수릿날 정오에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다든지, 쑥을 머리 위에 꽂던 풍속이 다 이런 까닭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수리치로 떡을 해 먹지만 옛날에는 쑥으로 떡을 해 먹었다. 옛날에는 구설초 또는 술의초라 하여 수리치와 구별하지 않고 같은 이름으로 사용했다. 단오니 단양이니 하는 것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붙인 이름이니 지금이라도 수릿날이라는 우리 이름을 되살려서 써 봄직하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숟가락 ◇                                                            

 숫자, 샛강, 젓가락 등은 모두 사이시옷이 들어간 것이지만, `숟가락`은 `술+가락`이 `숟가락`으로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숫가락으로 쓰지 않습니다.

<한글맞춤법 제 29항>
: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적에 `ㄹ` 소리가 나는 것은 `ㄷ`으로 적는다.
     보기>
        반짇고리(바느질~) 사흗날(사흘~) 삼짇날(삼질~) 섣달(설~) 숟가락(술~) 이튿날(이틀~)

     잗주름(잘~) 푿소(풀~) 섣부르다(설~) 잗다듬다(잘~) 잗다랗다(잘~)

   `숟가락`의 어원을 자세히 살펴보면

'숟'은 `쇠(鐵)`의 옛말인 '솓'이 '술'로 모음이 바뀐 뒤에 `가락`과 붙으면서 숟이 된 것입니다.'가락'은 `손(手)`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숟가락은 `쇠로 된 손`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나라의 숟가락은 청동기시대(서기전 1000년쯤)의 유적에서 출토되었습니다. 당시의 숟가락은 뼈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반면 젓가락은 우리 나라에서는 공주 무녕왕릉에서 출토되었고,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서기전 403년~221년)에 비로소 기록이 나오므로 숟가락에 비해 늦게 발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수저를 함께 쓰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였으며 중국, 일본에서도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함께 써왔습니다. 그러다가 중국, 일본에서는 점차 숟가락의 쓰임이 줄어들고 젓가락이 중심이 되었지만,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쓰는 관습은 우리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식생활(국 문화)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숟가락과 달리 젖가락은 `저+ㅅ+가락`의 구조이고 이때 `ㅅ`은 사이시옷입니다. 우리말은 한 글자의 한자말을 피하는 경우가 있어서 `저`에 `가락`을 붙여서 `숟가락`과 같은 짜임새-뒤에 `가락`을 붙여서 늘 함께 쓰이는 식기를 하나로 묶음-로 만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우리는 숟가락 문화가 발달해서 숟가락을 중심으로 젓가락이 파생된 것 같습니다.

                                                             *출처:<우리말 배움터>

 ◇ 술래 ◇                                                                

 '술래잡기' 놀이에서 숨은 아이를 찾아내는 차례를 당한 아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조선 시대에 도둑이나 화재 등을 경계하기 위해 밤에 궁중과 서울 둘레를 순시하던 군인을 순라(巡邏), 또는 순라군이라고 했다. 순라가 변해 술래가 되었으며, 찾으러 다닌다는 행위의 유사성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뜻을 지니게 되었다.

 ◇ 숨바꼭질 ◇                                                         

 "숨바꼭질"은 표준말이지만, 지방에 따라서는 "숨바꿈질"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소꿉놀이"를 "바꿈살이"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숨바꼭질"을 "숨는 놀이하는 바꿈살이"라는 뜻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숨바꼭질"은, "순바꿈질"에서 바뀌어간 말이라 봄이 옳을 것 같다. 즉 순(巡)을 바꾸어 나가는 놀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놀이는 달리 또 "술래잡기"라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술래"라는 숨은 아이를 찾아내는 역을 맡은 아이가 있는 것에서 살펴 "술래"와도 관계가 지어진다.

순(巡)을 바꾸어 나간다는 "순"과 "술래"와도 관계가 있다. 술래는 "순라"(巡邏)에서 왔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순라"가 글자로는 "순라"지만, 말하고 읽기로는 "술라"로 되는 것이고 그 "순라"가 다시 "술래"로 되었다고 하겠다.

그래서, 지난날의 순라꾼과 관계되게 되는 숨바꼭질이며 술래잡기이다. "순라잡기"가 "술라잡기→술래잡기"로 되어 간 것이다("질"이라는 뒷가지는 이름씨 아래 붙어서 "노릇"이나 "짓"이라는 뜻을 가지고 쓰이고 "손질"·"발질"·"서방질" 같은 그 "질"이다).

봄·여름에는 오후 여덟 시, 가을·겨울에는 오후 일곱 시에 종로의 보신각(普信閣)에서 종을 치게 되고, 그를 신호 삼아 사대문(四大門)을 닫으면서 통행 금지가 시작되던 조선 왕조 사회였다. 이는 오전 0시 직후에 다시 종을 쳐서 통금을 해제했던 것인데, 밤 종소리가 나면서부터 치안을 맡은 좌우포청(左右捕廳)의 엄중한 경계는 시작되었다.

포교(捕校)와 나졸(邏卒)들이 장안을 샅샅이 순회했는데, 이 순회를 "순라"라 하고 이 순라하는 사람들을 "순라꾼"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은, 이러한 순라꾼이 도둑 잡는 일에 빗대어진 것으로서 "순라"가 "술라 →술래"로 된 내력을 알 만해진다.

                                                             *출처:<박갑천의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 스승 ◇                                                                

'스승'의 어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무격'이란 한자어가 있지요. '무'는 '여자 무당'을, '격'은 '남자 무당'을 말합니다. 그런데 옛 문헌을 보면 '무'를 '스승 무' '격'을 '화랑이 격'이라 되어 있습니다. 결국 '스승'이란 '여자 무당'을 말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여자 무당'은 고대 사회의 모계 사회에서 대단한 지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인디안 영화나 아프리카 영화를 보면 추장보다도 더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추장은 제사장에게 모든 것을 상의하지요. 결국 '스승'은 임금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임금님의 선생님을 한자어로는 '사부'라고 하는데, '사'자도 '스승 사', '부' 자도 '스승 부'입니다. 결코 '선생 사, 선생 부'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자 무당'이 '임금의 선생님'으로 그 의미가 변화하였고, 이것이 오늘날 일반화되어 '스승'이 되었습니다.

덧붙여, 남자 무당인 '화랑이 격'에서는 '화냥년'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출처:<우리말 어원>

 ◇ 시앗 ◇                                                                

 요즘은 잘 쓰이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그렇게 낯설지 않은 속담이 있다.

(1) 시앗 싸움에 요강 장수: 두 사람의 싸움에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본다는 말.
(2)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 부처같이 어진 부인도 시앗을 보면 마음이 변하여 시기하고 증오한다는 말.
(3) 시앗이 시앗 꼴을 못 본다. : 시앗이 제 시앗을 더 못 본다는 말.
(4) 시앗 죽은 눈물만큼: 몹시 적다는 말.

 

이들 속담 속의 핵심 단어는 ‘시앗’이다. `시앗`은 `첩(妾)`을 뜻하는 순수 우리말이어서, 앞의 속담 속의 ‘시앗’을 ‘첩’이라는 한자어로 대체해도 무리가 없다. 그런데 ‘시앗’이라는 고유어는 한자어 ‘첩’에 밀려서 잘 쓰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 ‘시앗’에 대해서는 별로 큰 관심을 두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말 친족 어휘에 빈번히 결합되어 나타나는 ‘시’의 어원을 풀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시앗`은 16세기의 "순천김씨묘출토간찰"에 처음 보인다. 여기에서는 ‘시앗’이 아니라 ‘싀앗’으로 나온다. `싀앗`의 `싀`는 `싀집>시집`, `싀아비>시아비`, `싀어미>시어미’ 등에 보이는 선행 요소 ‘싀’와 성격이 같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라고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다. 반면, `앗`의 경우는 별 어려움 없이 그 의미를 추정할 수 있다. `처(妻)`을 뜻하는 `갓`이라는 단어가 `싀`의 `ㅣ`에 영향을 받아 변형된 어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의 `시앗`은 16세기의 `싀앗`으로, 16세기의 `싀앗`은 그 이전의 `*싀갓`으로 소급한다고 볼 수 있다. `*싀갓`에서 `싀앗`으로, 또 `싀앗`에서 `시앗`으로 변하는 과정은 음운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배고개`가 `배오개`가 되듯이 선행하는 `ㅣ` 모음 뒤에서 `ㄱ`이 `ㅇ`으로 교체되거나, `믭다`가 `밉다`로 변하듯이 `ㅢ`가 `ㅣ`로 변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음운 현상이었다. `시앗`이 `*싀갓`으로 소급되고 `갓`이 `처`를 뜻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싀`의 정체만 밝혀지면 `시앗`의 어원은 쉽게 드러난다.

`싀갓`이 `본처(本妻)`와 대립되고 `갓`이 `처`와 일치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싀`는 `본(本)`과 대립함을 알 수 있다. `본`과 대립하는 의미는 `부차적, 간접적, 소원한` 등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싀`는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은, 관계가 소원한` 정도로 해석된다. 이에 따르면 `*싀갓`은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은 처`가 된다. `본처`와 비교해 보았을 때 `첩`은 `본처`보다는 관계가 직접적이지 않고 또 부차적인 처이기에 이러한 해석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출처:조항범, 충북대학교

 ◇ 시집 가다 ◇                                                        

 '여자가 혼인을 하다'

시집은 시댁(媤宅), 즉 결혼한 남자의 집을 말한다. 결혼을 하면 여자가 남자의 집에 들어가 산다고 하여 여자가 혼인하는 것을 '시집 간다'고 표현하게 되었다.

시집은 여자가 새로운 어른들을 섬기며 사는 새로운 가문을 뜻하는 '새로운 집'을 의미하며, '새집(아래 아)→싀집→시집'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시집을 한자로 표기하기 위해, 여인이 늘 마음을 써 섬겨야 한다는 뜻을 살려 '시(媤)'자를 만들어서 시댁(媤宅)이라고 쓰게 되었다. '媤'자는 원래 중국에서부터 있었던 한자가 아니고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 낸 국산 한자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시치미를 떼다 ◇                                                  

 '알고도 짐짓 모르는 체하다.'의 뜻이다.

백제시대부터 시작된 매 사냥이 고려조 충렬왕 때인 1275년에는 궁중 안에 응방(鷹坊)이란 기구를 두고, 그 후 응방도감이라는 높은 벼슬아치를 둘 정도로 적극 장려함으로써 매우 성행했다.

당시에 웬만한 벼슬아치나 한량이라면 거개가 매 사냥을 즐겼다. 그러다 사냥을 시키기 위해 길들인 매를 다른 사람들이 탐을 내는 일이 생기게 되었고, 매가 마치 요즈음의 사냥개 이상으로 귀하게 대접을 받았다. 이에 따라 매를 도둑맞거나 서로 뒤바뀌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매의 주인을 밝히기 위한 특별한 표지가 필요했다.

이런 표지로 매의 꼬리 위의 털 속에다 소뿔로 얇게 만든 명패를 매달았는데, 이것을 '시치미'라고 한다. 따라서 시치미를 떼면 누구의 매인지 알 수 없게 된다는 사실로부터 지금과 같은 뜻이 생겨났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딱 잡아 뗄 거야?"라고 할 때의 '잡아 떼다'라는 말도 원래는 '시치미를 잡아 떼다'는 말에서 '시치미'가 생략된 형태의 말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신기료 장수 ◇                                                     

'신을 깁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개 떠돌이 장사치나 기술자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와 직업을 알리기 위해 특이한 발음이나 억양을 사용하여 소리를 외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소리만 듣고는 언뜻 무슨 말인지 알아 듣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신기료 장수도 신을 기우겠냐는 뜻으로, "신 기리오?"하고 외치고 다니던 데서 온 말이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실랑이 ◇                                                             

'옳으니 그르니 하며 남을 못 견디게 구는 짓'을 가리킨다.

과거 시험을 보고 나서 합격자가 발표되면 예복을 갖춰 입고 증서를 타러 가야 한다. 이 때 부르는 구령인 '신래(新來)위'에서 온 말이다.

흔히 '신래 불리다'라고 하는 이 절차를 밟을 때 선배들이 짓궂은 장난을 했다. 희묵(戱墨)이라고 하여 얼굴에다 먹으로 앙괭이를 그리고 옷가지를 찢으며 '이리워, 저리워'하며 앞뒤로 오랬다 가랬다 하면서 몹시 놀려댔던 것이다. 기강을 세운답시고 신임례를 거창하게 치르던 데서 비롯한 말이다.

 #앙괭이 : 정월 초하룻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와 자는 아이의 신발 중에서 제 발에 맞는 신을 신고 간다는 귀신. 신을 잃어 버리면 그 해의 운수가 불길하다는 속설이 있었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실마리 ◇                                                            

 '일의 사건의 첫머리, 단서'를 뜻하는 말이다.

실마리는 실의 첫머리를 말한다. 감았거나 엉클어진 실뭉치를 풀 때 실의 첫부분을 찾으면 그 뒤부터 쉽게 풀어 나갈 수 있다는 뜻에서 어떤 일이나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뜻하게 되었다.

 ◇ 심상찮다 ◇                                                            

'예사롭지 아니하다'. 「심상하지 않다」가 줄어 하나의 형용사로 굳어진 말이다. 따라서「심상하다」는「예사롭다」의 뜻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심상하다」를 활용해 쓴 글은 보기 어렵고 대부분「심상찮다」의 꼴로만 쓰인다. 그렇다면「심상하다」는 왜 「예사롭다」는 뜻이 되었을까.

「심상하다」의 어근인「심상(尋常)」은 원래 길이의 단위였다.「尋(심)」은 8척(尺),「常(상)」은 16척이므로, 지금 단위로 환산하면 242~484cm쯤 되는 셈이다. 그런데 춘추전국시대 제후들은 쟁패(爭覇)에 혈안이 된 나머지 이 한 평 남짓 되는 땅, 즉「심상의 땅」을 빼앗기 위해 싸웠다 해서 훗날 「미미하고 보잘 것 없음」을 가리킬 때 「심상」이라 했다고 한다.

                                                                    *출처:<이젠 국어 사전을 버려라> -장진한-편저

 ◇ 십년 감수 ◇                                                        

 '몹시 놀라거나 위태로운 일을 겪었을 때'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유성기가 들어 왔을 당시의 일이다. 고종 황제가 일본에 와 있던 빅터 회사의 기사인 코란을 초청하여 어전에서 원통식 녹음기를 설치하도록 하였다.

그 당시 명창이던 박춘재가 뽑혀 나와, 나팔통에 입을 대고 원시적인 녹음을 했다. 나중에 원통식 납관에서 박춘재의 판소리가 다시 흘러 나오자 고종은 깜짝 놀라며 "춘재야, 네 수명이 십 년은 감했겠구나"라고 했다. 박춘재의 정기가 녹음기에 빼앗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로부터 십년감수라는 말이 생겼다.

                                                                *출처:<우리말 유래 사전>

 ◇ 십팔 번 ◇                                                            

 "십팔번"이라는 말은 그 사람이 가진 레퍼터리 중의 으뜸을 가리키면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사실은 일본말인 "주하치반"(十八番)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알면, 도도해진 기분이 깨질 만큼 야릇한 마음이 안들런지?

일본의 에도(江戶) 전기의 "가부키"(歌舞伎) 배우에 이치카와 단주로(市川團十郞) 1세라는 사람이 있었다. 무대 위에서 원한 품은 한 자객(刺客)의 칼에 맞아 죽은, 하여간 그 당시의 대표적 배우였다. 이치카와 9세까지 내려오는 동안 그 집안에 전해져 오는 열여덟 가지의 내로라 하는 교겐(狂言 : 서민의 일상 생활에서 제재를 딴 얘기로서의 희극)을 일러 "주하치반"이라 했다(2세에서 대부분 완성). 여기서 일본 사람들이 "가장 장기로 하는 예(藝)"를 이르게 된 것이 그대로 우리에게 심어져, "가장 자랑으로 여기는 것이나 일"(「국어대사전」)의 뜻으로 되었다.

                                                             *출처:<박갑천의 재미있는 어원이야기>

 ◇ 썰매 ◇                                                                

 겨울이 되면 썰매를 타고 놀곤 하던 생각이 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지금은 시골의 깊은 산촌에나 가야 어쩌다 발견하는 것이어서 젊은 사람들 중에는 이 "썰매"를 구경도 못한 사람이 꽤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어느 텔레비전에서 국민학교 학생에게 "인두"를 보이며 이것이 무엇에 썼던 것인 것 같으냐고 물으니까, 한참 들여다 보다가 "화살촉"이 아니냐고 되묻는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어린이들에게 "썰매"를 보이면, "나무깔판"이 아니냐고 되물을 것 같습니다.

"썰매"는 엉뚱하게도 한자어입니다. 즉 "설마"(雪馬)의 음이 변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눈위에서 달리는 말"이란 뜻이지요. 어떻습니까? 그럴 듯하게 이름을 붙였지요?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슬기롭게 이름을 붙였었습니다.

                                                             *출처:<우리말 이야기>